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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Oct 01. 2021

개가 살지 않는 집(3)

제니 이야기(1)

 이사를 한 달 남겨 놓고 제니가 죽었다. 

 제니는 몰티즈 암컷으로 15년을 살았으니 제 수명을 다하고 죽었다. 

 개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마당에서 잡종 견만 키우다 보면 소위 말하는 '서양 애견'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하지만 70년대만 하더라도 그건 미국 어느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지 우리나라에선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80년대에 들어서자 갑자기 애견 산업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개에 대해 양가감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과 그 개가 죽으면 슬플 거라는 것. 비로소 개의 죽음에 감정을 실어보는 것이다. 그전까지 개의 죽음에 대해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직 죽음을 목도한 것도 아닌데 미리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일단 키워보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했다. 삶은 늘 욕망한다. 그 끝이 비록 죽음일지라도. 죽음을 생각해 살아있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그렇게 욕망의 승리를 목도하는 건 의외로 쉬웠다. 

 어느 날 엄마가 외출했다 어느 낯선 남자와 함께 돌아왔는데 그의 품에 개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몰티즈 수컷이었고 다 자란 성견이었다. 이미 다 자랐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고 엄마는 어디서 이런 개를 데리고 들어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 가족은 꿈이 이루어졌다고 좋아라 했다. 남자는 푸른 잔디가 깔린 마당에 그 개를 내려놨는데 움직일 때마다 하얗고 긴 털이 찰랑찰랑 날리는데 신선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털이 아주 길었던 것은 아니고 그 남자 말에 의하면 B급이라고 했다. 그렇게 알려준 남자는 그 개의 주인겸 애견사 사장이었다. 그는 그 개를 당연히 팔 요량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팔리지 않아 계속 키우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엄마를 만나 싼 값에 팔아넘긴 것이다. 개는 새끼 때가 가장 값이 잘 나가는데 이 개는 모르긴 해도 5년은 족히 넘어 보였다.

 나는 엄마한테 약간 속은 느낌도 들었다. 개는 아버지가 좋아했지 엄마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옛날부터 아버지가 가끔씩 이제 막 걸음 떼기 시작한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오면 싫어서 툴툴거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예쁘고 귀엽지만 다 크면 신경 쓰이고 귀찮다는 것이다. 그런 엄마가 이번엔 먼저 개를 키우겠다고 하니 얼떨떨할 밖에. 아버지와도 이미 얘기가 끝난 걸까 저녁에 퇴근해 들어오셨는데 좋다 싫다 말이 없으셨다. 그러면 좋은 것이다. 우린 그 개에게 미키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그 개는 생긴 것과 달리 성격은 좀 고약한 편이었다. 처음 우리 집에 와서도 어찌나 당당한지 아무리 개라고는 하지만 좀 건방지고 제 멋대로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미키는 나와 잘 사귀지 못했다. 지금까지 개는 마당에서 키웠으니 특별히 변 훈련이 필요 없지만 미키는 안에서 키울 거라 변 훈련이 필요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안 팔렸을까. 똥오줌을 아무 데나 싸길래 초반에 기선을 잡는다고 야단을 쳤더니 깨무는 것이다. 나는 나름 당근과 채찍을 쓴다고 썼는데, 녀석은 내가 회초리를 들고 야단을 치면 소파 밑으로 숨었다. 그래서 막상 제대로 때리지도 못하고 겁만 줬는데 나중에 달래줄 겸 나오라고 잡아끌면 그때 여지없이 물었다. 평소 귀엽다고 쓰다듬어줘도 물고. 원래 몰티즈가 생긴 것과 달리 사납고 무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식구들 중에 나만 유독 무니 정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알아낸 건 미키가 마당에 나가서는 변을 본다는 것이다. 다른 계절은 그런다고 쳐도 겨울에 그것도 해 떨어져 녀석을 마당으로 데리고 나간다는 건 정말 죽을 맛이다. 그나마 한 밤중엔 아버지가 그 일을 맡았주니 망정이지 과연 이래 가지고 서야 개를 온전히 키울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미키를 키우니 한 마리 정도는 더 키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끼를 내 보는 것이다. 우리의 이런 생각을 누가 알았는지 어디선가 암캐가 들왔다. 하지만 미키와 같은 종자는 아니었다. 암캐라 그런지 몸도 기름하고 생긴 것도 오종종한 것이 나름 예쁘게 생겼다. 털이 길 긴 했지만 그렇다고 미키처럼 길거나 풍성한 것도 아니어서 살이 다 비쳤다. 특이한 건 양쪽 귀만 까맸는데 그게 곱상하게 생긴 할머니 같기도 하고 아무튼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름을 뭐라고 지은 것 같긴 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꽃분이'라고 해 두자.

 그때 우리 집엔 이층에 다락방이 있었다. 다락방이 다 그렇듯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올려놓은지라 좀 어수선했다. 나무 계단이 좀 가팔라서 웬만해서 잘 올라가지 않는데 당시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엄마는 항상 그곳에서 기도를 하곤 했다. 그러면 꽃분이는 어느 새 엄마 뒤를 쫓아 거기에 올라갔고 기도를 마치면 같이 내려오곤 했다. 나는 꽃분이가 엄마의 기도를 방해할 것 같아 계단 밑에서 내려오라고 몇 번이나 다그치곤 했는데 그러면 녀석은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끄러미 내려다보곤 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또한 꽃분이는 엄마의 등을 좋아해 자주 업어 달라고 앞발을 등에 올리곤 했는데 그러면 엄마는 거절하지 못하고 어디 선가 허리띠를 찾아내 업고 집안일을 하곤 했다. 하지만 녀석은 정작 미키와는 덤덤했다. 


 그러던 어느 날 꽃분이가 드디어 암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이제 조만간 미키와 흘레를 하겠구나 했다. 개가 흘레하는 장면이야 어려서부터 심심찮게 봐 오던 터라 그러려니 했고 둘이 잘하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친하지 않으니 서로 서두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문제는 마당에 묶어 놓은 점박이 개다. 이 개 역시도 딱히 이름이 없었는데 어떻게 암내를 맡은 건지 꽃분이를 보자 흥분했다. 그래도 꽃분이는 안에 있고 녀석은 마당에 묶여 있으니 무슨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 그건 인간의 통제 밖의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열어 놓은 현관문 사이로 어느 틈엔가 마당으로 나와 녀석과 흘레를 했던 것이다. 꽃분이가 당황했는지 소리를 쳐 그나마 오래 하지도 않았다. 근데 이 모습을 미키가 보자 그제야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야 비로소 둘이 맘껏 할 수 있도록 방으로 몰아넣어 줬다.  

 그러자 이번엔 사람이 문제였다. 정숙한 엄마가 그것을 곱게 봐주지 못했다. 내내 좋다고 개를 끌어들일 때는 언제고. 어느 날 갑자기 두 녀석을 동시에 우리 집에서 치워버렸다. 그러자 집안은 침울하다 못해 초상집이 되었다. 개를 그렇게 좋아하던 아버지는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속이 상해 소준지 맥주를 들이켰고, 나는 어떻게 두 마리를 다 치울 수 있냐며 미키는 그렇다고 해도 꽃분이만은 다시 데려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키는 아무래도 나와는 별로 좋은 사이는 아니니. 특히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해 마음을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엄마도 아버지가 눈치가 보였는지 아니면 두 마리를 다 치운 게 좀 그랬다 싶은지 못 이기는 척 꽃분이만 다시 데려오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꽃분이는 곧 새끼를 낳을 것이다. 엄마는 가평에 사는 큰 사촌 고모한테 보냈는데 큰 사촌 고모는 사정 이야기를 듣자 득달 같이 꽃분이를 데려다 놓았다.

 꽃분이가 온 것만으로도 집안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개가 있고 없고 가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그동안의 해프닝이 좀 우습기도 했다. 미키는 그 고모집에서 잘 내려니 했다. (하지만 한참 지나서 엄마가 그 고모에게 물으니 잡아먹었다고 그제야 실토했다. 아, 불쌍한 미키)

 몇 달이 지나자 정말 꽃분이는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둘 다 암컷이었다. 하지만 한 마리는 밤색 점박이였고, 하나는 미키를 닮아 흰색이었다. 수놈 두 마리가 거의 동시에 접붙었으니 그런 건 이해하겠는데 점박이는 왜 까만색이 아니고 갈색이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미키의 우윳빛 유전자가 색깔을 옅게 했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 문제는 그러면 회색이어야지 왜 갈색이냐는 것이다. 결국 이 녀석은 코도 살색인 것이 우리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잠깐 키우다 다른 집으로 입양을 보냈고, 우린 미키의 혈통을 이어받은 하얀 녀석을 키우기로 했는데 그게 바로 제니였다. 

 꽃분이는 얼마 안 있다 갑자기 병이 나 병원을 데려갔는데 그 길로 다시 집에 오지 못했다. 엄마가 데리고 갔는데 무슨 병인지 의사는 그 병은 워낙 치명적이어서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 없으니 그냥 두고 가라고 해서 혼자 왔다. 우리 집은 오래전부터 개를 잃는 것에 대해 슬퍼하면 안 된다고 은연중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꽃분이가 그렇게 된 것에 대해선 좀 놀라고 아쉽긴 했지만 많이 슬퍼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제니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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