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가 찰나가 되기를 바라며...
나는 한국에서 인스타그램이 잘 알려지기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으니 나의 Online superficial 경력은 벌써 10년이 넘고, 내 피드에는 1200개가 넘는 게시물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스토리'라는 기능이 생긴 뒤로, 인스타그램은 이름값을 하며 사람들을 더욱더 인스타스러운 순간들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별 것 아닌 사진들이라 피드에 올리기는 부담스럽지만 여전히 과시하고는 싶은 순간들, 또는 “소통”을 느끼고 싶은 순간들에, '스토리'는 완벽한 기능이 되었다. 내 스토리도 얼마 전 발리 여행에서 한 땀 한 땀 정성 들인 바느질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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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은 빠진 스토리 박음질의 모습.
너무 지나치게 포스팅을 해서 게시물 개수만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던 때에, 스토리의 등장은 완벽했다. 무엇보다 올린 지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점에서 MZ들의 니즈를 꿰뚫은 기능...! 그러나 꽤 오래전부터는 그 스토리들마저 자신의 피드에 앨범처럼 올려놓을 수 있어서 ‘instant’의 의미가 상실되었다.
나는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기 전을 기억한다. 인스타그램에는 광고가 없었다. 정말 순수한 의도로 사진을 올리고, 많은 말을 적지 않아도 그저 사진 한 장으로 소통하는 굉장히 심플한 플랫폼이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인수한 후 인스타그램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고, 이제는 포스팅 한 개 당 광고 하나가 따라붙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광고도 많다. 물론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과연 인스타그램이 지금처럼 큰 기업가치를 갖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기 때문에 모든 것에는 다 이면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외국에 오래 살았고 또 세계 여기저기에 친구들이 많은 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멀리 떨어진 친구들의 삶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러면 오랜만에 만나도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부담 없이 친구의 스토리에 리액션 하트나 웃음 이모지를 보내면서 '우린 여전히 친구다'라는 것을 증명하기에도 편한 앱이 인스타그램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그저 핑계였다. 쓸데없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팔로우하고 보이기 위해 올린 그들의 사진을, 그 사실을 알면서도 부러워하고, 모두 다 행복한 것만 올리는 인스타그램 세상 속을 새벽 두세 시에 유영하고 있다 보면, 외로움의 심연으로 더 깊이 빨려 들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잠 못 드는 가장 야심한 시각에, 나는 남의 피드가 아닌 나의 피드들을 보는데 한 시간 이상을 쏟곤 했다. 나의 예전 사진들을 보며 '저때 나 참 어렸지', '저때 나 참 예뻤구나.', '저때가 참 재밌었지' 등,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과거의 내가 찰나의 순간 속에 올렸던 사진들의 블랙홀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자진해서 과거로 다이빙을 하여 너무 깊이 들어간 나머지 현재 속에선 익사 중인 꼴이었다.
그러던 며칠 전, 어떤 사람을 알게 됐는데, 그는 소셜미디어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Meta' 면접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면접 준비를 하며 Meta에 관한 공부를 엄청하면서 소셜미디어를 하는 것이 엄청난 위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소셜미디어에 내맡겨 버리는 위험.
빅데이터라는 어장 속에 갇힌 자유가 없는 물고기 한 마리가 되는 것.
다신 돌아오지 않을 현재를 그 회사의 수익을 위해 갖다 바치는 비공정무역.
심지어 그는 왓츠앱(외국버전 카카오톡)에 프로필 사진도 없었다. 그것조차 위험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나는 새벽 1시에 잠이 깨서 맥주를 마시다가, 그것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그리고 몇 분 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런 시시콜콜한 나의 일상까지 공유하는 지경이 되었지?' '그렇게 개인정보보호를 들먹이면서 나는 왜 나의 개인정보를 소셜미디어에 자진해서 팔고 있는 거지?'
마침 그때, 스웨덴 친구가 웃기는 영상을 하나 보냈다. Yogi로 보이는 한 여자가 어떤 카페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데, 한 손으로는 Gyan Mudra(명상할 때 하는 손 제스처로, Okay사인처럼 보이는 손동작)를 하고, 한 손으로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자신의 명상하는 모습을 셀피 영상으로 찍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시점에서 그 전체 모습을 영상으로 찍은 것이었다. 영상을 찍은 시점의 사람의 비웃음이 영상 속에서 느껴졌다. 나는 비웃음 당하는 그녀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스토리를 지우고, 처음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일시정지시켰다. 나의 인생앨범을 소각시키는 것 같아 차마 탈퇴는 하지 못하고, 일단 내가 인스타그램 없이 얼마나 살 수 있나 지켜보기로 했다.
잠시 소셜미디어와의 작별. 내가 정말 현명하게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될 때까지, 차라리 아예 모르려고 한다. 오늘 하루 여러 번 핸드폰을 열었는데, 인스타그램이 없으니 머쓱하니 핸드폰을 여러 번 내려놓았다. 소셜미디어가 있기 전에도 난 잘 살지 않았던가. 물론 이 일시정지가 얼마나 오래 갈진 모르겠다. 그러나 최대한 되는 데 까지 해보고 싶다.
나는 이제는 정말로 매 순간, 나 자신과 함께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