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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지하다 Feb 23. 2023

 Are you a Dick?

귀여운 토끼 미피, 그를 창조한 사람은 Dick이었다?

출처: https://www.oallery.com/en/blogs/blog/exloring-dick-bruna/


내가 중학생 시절, 향기 나는 미피펜은 많은 인기를 끌었다. 색깔도 여러 가지, 형광색 펜이라는 것도 신기한데 거기다 향기까지 났으니 중학생 소녀 감성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성인이 되어 네덜란드를 여행하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실 이 미피, Miffy의 고향은 네덜란드였으며, 더욱 최근에 네덜란드 회사에서 일을 하며 알게 된 것은 그의 원래 이름은 모두가 발음하기 쉬운 '미피'가 아니라 'Nijntje(녜인쳐)'로, 토끼를 뜻하는 네덜란드어인 Konijn(꼬녜인)에서 귀엽게 Ko를 뗀 뒤, Nijn-이라는 어간에 '귀여운 뉘앙스를 첨가하는 네덜란드 축소사인' tje(쳐)를 붙여 'Little Bunny, 작은 토끼'의 뜻이 되는 'Nijntje'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토끼를 '토깽이' 정도로 바꾼 거라고나 할까?


미피는 1955년에 Dick Bruna라는 네덜란드 Utrecht(위트레흐트) 출신 남성 작가가 탄생시킨 캐릭터로, 네덜란드 영토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이 위트레흐트라는 도시에 가면 '미피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Utrecht에서 자랑스레 생각하는 캐릭터이다. 실제로 이 Dick Bruna라는 작가는 1927년 위트렠ㅎ(위트레흐트라고 읽는 것보다 난 이게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ㅎ를 가래 뱉듯이 소리내야 한다.)에서 태어났고, 2017년 위트렠ㅎ에서 돌아가셨으니 위트렠ㅎ이 낳은 자랑스러운 작가인 것이다.




이번 암스테르담 레이오버에서는, 네덜란드 친구를 만나러 위트렠ㅎ에 처음 방문했다. 위트렠ㅎ은 대학도시의 바이브가 강하게 펼쳐지는, 젊은 인구가 많은 아기자기하고 예쁜, 네덜란드에서 5번째로 큰 도시였다. 물론 네덜란드의 겨울답게 날씨는 예쁘지 않았다. 8년 전 포르투갈을 여행하다가 만난 이 네덜란드 친구는 위트렠ㅎ에서 대학을 나오고, 현재는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리스본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스페인 남부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계기로 친해졌고, 나중엔 신기하게도 둘 다 다시 스페인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때 스페인에서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로컬 친구가 사는 도시인만큼 친구는 나에게 위트렠ㅎ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헤어질 즈음에, 멀리 토끼 조각상이 보였는데 친구가 "저기 미피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피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나는 의아해하며 "근데 왜 할아버지 얼굴이지?"라고 물었더니 그는, 저 얼굴은 미피를 만든 작가 Dick Bruna라고 알려주었다.


위트레흐트가 낳은 작가, 미피의 창조주, Dick Bruna를 기리는 조각상


나는 그의 이름이 Dick이라는 사실에 장난기가 발동하여 친구에게 말했다. "So, he is a Dick".

영어에서 'Dick'은, 우리 아빠가 그것을 멀쩡히 소유하고 있었기에 내가 탄생할 수 있었던, 남자의 아름다운 부분을 뜻하는 영어의 속된 말로, 주로 욕으로 많이 쓰기도 한다. You are such a dick. 또는 He is a total dickhead... (굳이 직역하자면, 걔 완전 귀두야...) 이런 표현이 욕이 된다니 어떻게 보면 서양 사람들의 욕은 참 웃길 때가 많다.


아무튼 친구가 내 말에 웃길래, 나는 실제로 Dick이라는 이름을 가진 더치 파일럿과 비행하게 된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주었다. 나는 그날 비즈니스클래스에서 일을 해야 했기에 조종석 케어를 담당해야 했고, 4명의 파일럿들의 이름을 외우려는데 그중 한 명이 Dick이었다. 남의 이름 가지고 놀리면 안 되지만 그의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엔 굳이 그럴 필요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 조심스러운 태도가 더 이상했을 수도 있다.) "내가 너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Dick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니?", 그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한 가장 최고의 시나리오인, 그가 자신의 이름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해피엔딩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비행 내내 차마 그의 이름을 부를 순 없었다. 친구 말에 의하면 네덜란드에서 Dick은 꽤나 흔한 남자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중년 남성들 사이에선 흔한 이름이라고 했다. 그 파일럿도 자신의 이름이 영어에서 놀림거리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흔한 소영이란 이름 스펠링이 So young으로, '네가 할머니가 돼도 You are so young'이라고 장난치는 외국인들도 보았고, 남자 이름인 '유석'은 You suck(너 정말 구려)이 되기도 하는 걸 본 나는, Dick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과연 자기 이름에 대해 불만은 없을지 궁금했다. 혹시 어려서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았을까? 분명 그 파일럿이 태어났을 50년 전쯤에도 더치들은 영어를 잘했을 테고, 그의 부모님이 Dick이라는 이름의 영어 뜻을 모르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혹시 앞으로 또 다른 Dick들과 비행을 하게 된다면, 어색하게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저 그 이름을 부르기로... 행여 그 파일럿이 거만한 사람이라면, 나는 더 열심히 그의 이름을 부르기로. 아름다운 김춘수 님의 시를 각색하며 오늘의 글을 마치고 싶다.


ㅊ/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Dick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Dick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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