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지하다 Feb 26. 2023

1명의 강제추방자와 5명의 에스코트

과연 그는 얼마나 흉악범이었길래?

인천에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던 비행의 브리핑에서 더치 사무장이 말했다.

"오늘 우리 비행에 1명의 DEPA가 탈 것이고, 5명의 에스코트가 함께 탈 거야. 에스코트가 5명이나 되니 별 문제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유념하길 바랄게."


DEPA란 DEPortee Accompanied의 약자로, 에스코트가 동행하는 강제추방 외국인을 말한다. 에스코트는 대체로 경찰, 또는 이민국 직원이다. DEPU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Deportee Unaccompanied의 약자로, 강제 추방자인 것은 동일하나 에스코트가 동승하지 않는, 주로 도주의 우려가 없거나 기내에서 소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 강제추방자 혼자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추방하는 나라의 정부에서 고국으로의 비행기 값을 대주며, 주로 이들은 이코노미의 제일 마지막 줄에 앉게 된다. 보딩 시에 가장 먼저 탑승하고, 하기 시에는 제일 마지막에 내리는 것이 절차다. 이 승객들에게는(에스코트 포함) 주류 서빙이 금지되며, 모든 승무원은 이 승객의 좌석번호와 얼굴을 알고 있어야 한다. 최악의 경우 변장을 할 수도 있기에 얼굴을 외우는 것이다. DEPA의 여권은 에스코트가 가지고 있으며, DEPU의 여권은 사무장이 맡고 있다가, 하기 시에 지상직원에게 전달한다(도주 방지를 위함).


별개로 INAD라는 약자도 있는데 이것은 'Inadmission' 즉, 입국불허. 입국심사를 통과하지 못하여 도착한 나라의 길거리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다시 돌려보내지는 사람을 말하는데, 적절한 비자나 입국심사에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일반인들이고, 이들은 주로 강제추방자들보다 비행기에서 더 슬퍼하고 우울해한다. 강제추방자들이 이미 추방국에서 분노와 절망을 체험한 뒤 체념, 심지어 초탈의 심리로 탑승한다면, 입국불허자들은 다시 가장 빠른 비행 편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분노와 슬픔을 수용할 여유도 없이, 체념과 초월의 심리로 수렴할 시간도 없이 탑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인이 범죄자도 아닌데 그 나라에 입국조차 못했다는 충격과 제대로 입국심사를 준비 못했다는 자책감도 한몫할 것이다. (나 또한 런던 공항 입국심사에서 리턴티켓이 없다는 이유로 '의심자'로 분류되어 대기실에서 4시간 동안 두려움에 떨며 대기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입국시켜 주었기에 망정이지, 내 생에 첫 유럽 입성의 꿈을 진압당한 채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내졌다면 어땠을까, 끔찍하다.) 이런 입국불허자들의 경우 슬픔과 억울함으로 인해 기내에서 하염없이 우는 경우도 있다. 똑똑한 '김영하' 작가도 상하이에서 INAD가 되어 다시 돌아온 적이 있다고 읽었으니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아무튼, 이 항공사 입사 후로 처음 맞는 강제추방자였고, 에스코트가 동승할 경우 승무원들은 크게 신경 쓸 것이 없기에 부담이 덜했으나, 나는 도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5명이나 되는 에스코트가 동승하는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심지어 이코노미 마지막 줄은 오늘 나의 담당 구역이었다. 아이패드로 승객의 정보를 보아하니, 그 승객은 최종 목적지가 Lima인 것과 이름으로 보아 페루 사람 같았다. 보딩 시작과 함께 그 페루인은 5명의 일본 에스코트와 탑승했다. 한국에서 강제추방된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강제추방 당했고, 우리 비행기는 일본에서 출발하여 한국을 찍고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였으니 그는 이미 일본에서부터 '추방당하는'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암스테르담에서 또 리마로 가는 비행기를 10시간 넘게 타야 할 테니 정말 지겹도록 오랫동안 비행기 안에 머무를 터였고, 일본인 에스코트들 또한 피곤하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페루 사람에게 스페인어로 "¡Hola! Encantada. Hablo español, pues si necesita algo, avíseme(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제가 스페인어 하니까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편하게 알려주세요, (속마음: 도주에 협조하라는 것만 빼고요...)"라고 말했고 그 강제추방자는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인상으로 보아 흉악범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일로 강제추방을 당한 걸까 궁금함은 여전했다.


또 하나의 충격은, DEPA가 소동을 부릴 경우 멋지게 제압할, 팔뚝이 두껍고 인상 팍ㅡ 쓸 줄 아는 우락부락한 체구의 에스코트들일 것이라는 내 상상과 달리 일본인 에스코트들은 전형적인 일본 남자의 체형을 가지고 있어서('키가 작고 왜소해서'라고 번역), 나는 '저 강제추방자가 혹여 난동을 부릴 경우 잘 제압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인해전술로 5명이나 태운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다이아그램으로 표시한 DEPA의 자리 배치>

OOO복ㅁㅁㅁ복OOO

OOO도ㅁ■ㅁ도OOO

기내 레이아웃이 3x3x3이었던 기종에서 그들은 저렇게 자리했다. O은 일반 승객. 검정네모가 강제추방자, 빈 네모가 5명의 에스코트. 강제 추방자의 좌석이 제일 마지막 좌석이라 뒷벽과 에스코트 5명이 강제추방자를 단단한 요새처럼 에워싼, (그렇다면, 복도는 해자가 되는 것인가?)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전술이었다.

그 페루 승객이 화장실을 갈 때는 에스코트 두 명이 화장실 앞을 지키기까지 하는 걸 본 나의 궁금함은 점점 더 깊어져갔다.


저녁 식사 서비스를 마치고, 절반의 크루들이 자러 벙커에 올라가고 나 혼자 뒷갤리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는데, 잠이 안 오는지, 자면 안 되는 것인지, 일본인 에스코트 한 명이 갤리를 기웃거리며 음료를 요청했다. 영어를 꽤나 하길래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저 사람 왜 추방당한 거야?"...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나는 잠시 생각을 해야 했다.


하...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아주 짧지만 강렬했던 한 단어...


'오버루스테이'...


하? Overstay? 불법체류?? 나는 내가 아는 overstay의 의미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You mean, NO VISA?"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무엇을 예상한 걸까?

살인범? 성범죄자? 금융사기꾼?


흉악범이 아니라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일본의 철두철미함에 감탄했다.

고작 불법체류자 한 명 돌려보내는 데, 5명의 공무원을 쓴다니. 이민국 예산이 상당히 많거나, 공무원 숫자가 남아돌거나?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5명이나 동승하길래 흉악범은 아닐까 생각했다고.

그랬더니 비행기를 굉장히 오래 타야 하기 때문에 돌아가며 잠도 자야 해서 일본 정부는 불법체류자여도 돌려보낼 때 항상 동승 5명을 태운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들은 일본에서 페루까지 비행기에서만 거의 30시간을 보내고, 환승 및 대기 시간까지 합치면 족히 35시간이 훌쩍 넘는다고 생각하니 공무원을 위한 일본 정부의 배려가 인간적으로까지 느껴졌다.


그 페루 승객도 잠을 잘 못 자길래 나는 두어 번 음료를 권했고, 그는 환한 미소로 음료를 주문했고 나는 그에게 계속 스페인어로 아침 식사를 서빙했고 그렇게 긴 비행이 끝났다. 그는 불법체류가 적발된 뒤에 오히려 체념하여 마음을 편하게 먹었는지, 아니면 돌아가도 될 만큼 일본에서 돈을 충분히 모았는지 모르겠지만 비행 내내 편해 보였다. 그들이 제일 마지막으로 내려야 하기에 모든 승객이 다 내린 뒤 일본 에스코트들과 그 페루 승객에게 잘 가라고 인사했다. 그가 강제추방된 이유를 알려 준 그 일본인 승객이 나에게 말했다. "He said you're Kawaii". 카와이?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그 일본 단어, 카와이?


그 강제추방자가 내가 귀엽다고, 그 에스코트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그 페루 승객이 일본어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고, 강제추방자와 추방집행 공무원들이 저런 시답잖은 말도 주고받을 정도라면 추방 분위기가 제법 훈훈하다고까지 느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웃으며 'Gracias(고마워), Pásalo bien(잘 지내)'이라고 했다.

체념을 했건 라티노들 특유의 긍정마인드 덕분이건 그는 편해 보였지만, 해외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불법체류하며 돈을 벌다가 적발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그 일련의 과정이, 어쩌면 아름답진 않았았을 텐데, 그래도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내가 '카와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괜찮은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페루에 돌아가서도 잘 지내기를 바랐다. 이런 DEPA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작가의 이전글  Are you a Dic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