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전시하는 Atelier des lumieres (반 고흐)
파리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유럽에 거주하는 만 26세 이하는 대부분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내 돈 내고 미리 예약을 한 전시회를 소개한다.
Van Gogh (반고흐) / Japon rêvé (일본에 대한 예술) / Verse(우주에 대한 예술) 이렇게 3개의 주제로 영상화 한 그림과 음악을 약 50분 동안 감상하게 된다. 50분이 '우와 우와'하다 지나갔고 Japon rêvé는 두 번 보아도 부족했다.
Atelier des lumieres에서 겨울나기.
영화관 같은 검고 무거운 입구의 문을 열었다. 나를 맞이하러 달려온 듯한 빛은 세상의 색을 비추며 재잘재잘 말을 걸어왔다. 만약 우리가 글보다 색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이 공간은 바로 세상에 읽을 수 있는 색을 모두 담은 대도서관일 것이다.
햇빛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었다. 벽에 부딪힌 빛이 만든 그림 세상이었다. 사방에 달린 거대한 빔 여러 개가 바닥과 사방의 벽을 이용하여 하나의 그림을 그렸고 사람들은 그림 속에 무작위로 던져진 것 같았다. 빛은 결코 살아 움직이는 것을 조명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옹기종기 앉거나 여기저기 걷거나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고, 아이들은 바닥에 쏜 레이저 빛을 쫓는 고양이 마냥 네 발로 폴짝 뛰어다녔지만, 이들 모두 그림자에 불과했다.
형형색색의 그림은 노래에 맞춰 벵글 벵글 춤췄다. 나를 둘러싼 그림 세상은 숲이 되어 나무 사이로 사슴이 뛰어다니는가 하면, 일본 가부키들이 부채를 폈다 접으며 연극을 하기도 했다. 곧 사람들을 휩쓸어 가버릴 것만 같은 거센 파도가 바닥부터 차오르기도 했는데, 파도치는 장면은 나를 움찔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반고흐를 주제로 한 영상이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고흐의 생애를 타고 흐르는 그의 작품들. 남프랑스부터 파리를 거쳐 파리 북쪽의 오베르까지. 눈 앞에 펼쳐진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현대 예술가들이 나를 고흐의 장소로 데려다주었다.
나를 홀려 놓았던 소담스러움
미술과 음악은 쿵짝이 잘 맞았다. 음악이 쿵 할 때, 그림이 짠 하고 나타난다. 가상과 실재, 환상과 현실을 뒤바꿔놓은 이 공간에서 아름다운 악기 소리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피아노, 바이올린, 마림바와 같은 세상의 악기들만이 아직 이곳이 현세임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공기를 가득 메운 음악은 인위적이라기보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때때로 내가 공기의 미묘한 파동 혹은 공기의 대화를 듣는 어느 별의 외계인 된 것 같았다.
--나를 동굴의 세계로, 빛의 세계로 안내한 것은 파리에서 만난 친구 덕분이었다. 특히나 동갑내기를 만나기 힘든 이곳에서의 인연은 동질감을 느끼게 하며 특이하고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한다.
소담하다 : 생김새가 탐스럽다
사과, 배, 바나나, 포도 그리고 복숭아는 속은 수수하지만 겉은 당장 한 잎 베어 물고 싶을 만큼 소담스럽다. 품 안에서 키워온 씨앗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때쯤, 과일의 소담함은 극치에 이른다. 배고픈 인간이 한 입 베어 물어 주어야 정성껏 키워온 씨앗을 세상에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눈길을 끌기 위해 생김새가 탐스러워야 하는 것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혹시 겉모습보다 속이 화려하고 소담한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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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을 걸으면서도 그리 싫지 않았던 것은 듬성듬성 자리 잡은 갤러리 덕분이었다. 빛이 스며들이 않은 오후, 나는 빛을 이용한 전시를 보기 위해 Atelier des lumieres(빛의 아틀리에)로 걸었다. Atelier des lumieres를 가는 길도, 전시를 다 보고 지하철 역을 향하는 길에도 비는 조금씩 내렸으며, 내일도 그다음 날도 비는 Paris에 내려앉을 것이다.
나무들이 한 해의 잎들을 다 털어버리고 나면 파리는 녹음을 잃고 한 층 더 단조로워진다. 연두색 나뭇잎이 있던 자리에 생겨난 크리스마스 빛 조명도, 산타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장식도 어둠을 잃은 도시의 별을 대신할 뿐이다. 한낮에 겉모습이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 사이를 누빌 때면 파리가 흐린 황토 빛 향연처럼 보인다. 비 오는 날이 더 많은 겨울 파리에 다채로움은 없지만 비를 맞아 촉촉해진 건물들은 오래전에 구워낸 진흙 도자기처럼 어딘가 고풍스럽다. 건물 벽에 서 있는 정교한 조각품들 때문이기도 하고 건물 대부분 100년이 넘어서 묵은 때가 묻어있기도 하고 개조에 개조를 거치며 평범한 아파트부터 시청, 법원, 교회까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의 발걸음이 닿기 때문이기도 하다.
종종 비나 추위를 피하고 싶을 때 나는 파리 곳곳의 박물관이나 서점을 찾는다. 그러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갤러리, 박물관 그리고 서점은 외양이 무구하고 수수한데 비해 안은 계절을 잊게 만들 정도로 다채롭다. 책과 그림과 온갖 소품이 바구니 속의 과일처럼 소담하게 또는 명품처럼 화려하게 담겨 있는 곳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S74baqavhI&t=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