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보내는 하루.
지하철에서 종이 책을 읽는 파리지엥들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대형 서점보다는 작은 독립서점이 많은 파리에서,
북 쇼핑
북 쇼핑은 언제나 즐겁다. 상품의 측면에서는 만족감이 오래가는 소비이고 작품의 측에서는 잠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경험이다. 작가가 설계한 세계를 여행하며 예상치 못한 감정이 피어나는 기묘한 경험. 호기심을 자극하는 첫 만남의 기대와 설렘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지속되기도 하고, 때론 영원히 끝내고 싶지 않은 운명 같은 책을 만나기도 한다.
파리의 서점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왔다. 서점으로 가는 길, 불쑥 나온 방돔 광장에도 거대한 그림책이 있다. 이처럼 파리는 곳곳에 이야기가 스며있는 재밌는 도시다. 파리는 작은 서점이 골목마다 있고 어디서든 책을 읽은 수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다. 오늘 나의 도서관은 빛이 잘 드는 튈르리 정원이다.
방돔 광장의 그림책
명품 부티크가 둘러싼 방돔 광장은 그 넓이가 압도적이다. 오스만식 건물의 한 가운 데 높은기둥이 우뚝 서있어 이 곳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나 보았더니, 1702년 루이 14세의 명으로 만들어진 광장이다. 방돔 광정의 한가운데 서있는 기둥자리에는 원래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있었지만 프랑스혁명 때 파괴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기둥은 뭘까? 나폴레옹이 아우스테를리츠(Austerlitz)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여 세운 기둥인데 로마의 트라야누스 기념탑을 본떠 만든 것이란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둥의 재료가 전쟁 때 쓰던 대포라는 것이다. 아우스테를리츠에서 획득한 133개의 대포와 유럽 연합군에서 빼앗은 대포를 녹여 주조한 이 기둥에는 전투 장면이 새겨져 있다.
WHSmith서점과 야외 도서관 튈르리 정원
파리엔 영어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이 꽤 있다. 하지만 WHSmith는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아늑한 카페가 있어 흐린 파리의 겨울, 따뜻한 커피와 책을 위해 자주 찾는 서점이다. 카페의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에스프레소 한 잔(약 3유로)을 지불하면, WHSmith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최적의 아지트인 셈이다.
서점은 9시 30분에 카페는 11시 30분에 오픈한다. 영국식 티와 스콘을 판매하고 영국인들이 많이 찾는 이 카페는 런던에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따뜻한 날엔 바로 옆에 위치한 튈르리 정원으로 향한다. 1563년에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튈르리 궁전과 이탈리아식 정원을 만들었다. 튈르리 궁전은 1871년에 혁명군에 의해 소실되었지만 튈르리 정원은 여전히 꽃이 피고 새가 날아드는 장소로 남아있다. 게다가, 곳곳에 녹색 의자가 놓여있는데 이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튈르리 정원은 새들의 쉼터이자 사람들의 야외 도서관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 서점, 갈리아니 서점
튈르리 정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갈리아니 서점도 빼놓을 수 없다. 갈리아니 서점은 1520년에 문을 열었다.
서점에 들어서면 이 공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책장이 양 옆으로 길게 뻗어 있어 기차역 같다. 세로로 긴 건물의 구조의 물결에 흘러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영미권 서점의 방에 놓이게 된다. 갈리아니 서점에는 프랑스어 책과 영어 책을 함께 볼 수 있다.
나는 튈르리 정원에 올 때면 갈리아니 서점에 들러서 그림과 사진이 많은 전문 서적을 본다. 베르사유 궁정, 파리의 역사 등 대표적인 관광지를 그린 그림이나 흑백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이 날 내가 본 것은 1800년대, 베르사유의 야외 정원에서 목욕하는 여인의 그림이었다. 상상화든 풍속화든, 관상용인 줄만 알았던 베르사유 궁의 정원이 목욕탕으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이 상상력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