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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딸 Oct 16. 2020

자매

내 안의 어린 본성을 지켜주는, 

        나와 나의 여동생의 개성을 담고 있는 단어들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그녀는 화끈함과 익살스러운 코미디언의 말투를 가졌고 마음은 소담하고 섬세하다. 그림 그리거나 감성적인 드라마를 즐기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날카롭고 현실적이다. 아늑하고 익숙한 것을 사랑하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나는 소탈하고 낙관적이며 호기심이 많으나 무턱대고 덤벼들거나 덤벙대기 일쑤다. 드라마를 보진 않지만 자연을 보면서 감정수업을 듣는다. 그리하여 세상 밖으로 나가 적응력 시험하기를 즐기고, 색다른 환경, 새로운 발견을 동경한다. 신체적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 수 있는 장소에서 극도의 편안함을 느낀다. 


      개성의 간극을 좁힐 순 없지만 다행히 우리가 자매임을 알려줄 수 있는 비슷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길거리에서 동생을 마주친 친구들이 나로 착각하고 인사를 할 만큼. 동네 카페 사장님도, 옆집 아주머니도 '첫째? 둘째?' 이런 질문을 종종 한다. 모든 형제, 자매가 그렇겠지만 '닮았다'는 단어를 흔쾌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건 서로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말을 너무 자주 들어왔다. 

    

        이렇게 '나'와 '그녀'를 비교하면서, 결코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의 그녀다. 다섯 해가 되던 내 어린 시절에 갑자기 찾아와선 한 번 도 빠진 적 없었던 그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내가 초등학생이 될 즈음부터,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은 무겁고 동시에 보람찬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 놀이방, 유치원 등하교를 함께 하고 집에선 기발한 놀이를 개발하면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좁게만 느껴지는 방이, 그 시절 우리에겐 항해 놀이를 생각해낼 만큼 넓은 바다 같았다. 몇 년째 나만 따라다니며 나를 구속하는 듯한 동생이 미울 때도 많았다. 그래도 그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객관적인 귀여운 외모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 친구들은 TV 속 아역배우 만난 펜 마냥 귀여운 동생을 가진 나를 부러워했고 그럴 때면 우쭐한 마음이 들었으니까. 동생이 친구와 싸우고 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화를 주체할 수 없었고 다짜고짜 그 친구를 찾아내 혼내주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서로를 열렬히 응원하는 팀이었고 동시에 서로를 극도로 미워했던 원수였다. 사실, 나와 동생의 싸움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래도, 외집단을 만나면 기막히게 돈독해지는 우리는 전형적인 자매이자 사랑하는 가족이다.    


        시간이 흘러, 나와 그녀의 관계는 나이차가 사라진 교우관계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정신없이 보내고 대학교 진학 후, 어학연수와 교환학생을 갔다 오고 나니 동생은 이제 모든 것을 혼자서 하고 싶어 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비록 그녀는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의 어린 시절을 품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연약했던 따뜻말랑했던 어린 시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나의 가장 익살스럽고 가장 산만하며 가장 시끄러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고 가소롭기 짝이 없는 내 행동에 여전히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야말로 내 안의 어린 본성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런 동생이 어제 극심하게 아팠다. 고통스러운 눈물과 함께 말을 제대로 잊지도 못할 만큼.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그녀는 이내 잠이 들었고, 무사히 하루가 지났다. 수줍은 웃음기가 서린 얼굴을 본 후에, 그제야 안도감이 물밀듯 밀려왔고 동시에 그녀를 보살피던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에게 무수한 감정을 안겨주었던 동생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내 인생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한 번도 글을 쓴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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