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아침에 결정한 휴직 이야기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휴직 첫날을 맞이했다. 휴직을 결정한 지 정확히 보름만이다. 그즈음 나는 출근 후 퇴근할 때까지 사무실에서의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의 말과 행동을 제한하고 있었다. 업무상 꼭 필요한 최소한의 요청, 전달, 보고의 언어 외에는 더 이상 뱉어내지 않았으며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주어진 업무를 기계적으로 해내고 있었다. 가끔씩 귓가에 들리는 사무실내 소소한 우스갯소리나 옆사람의 농담에도 마치 센서가 고장난 기계처럼 더 이상 센스 가득한 답변으로 여유 있게 웃으며 응해줄 수가 없었다. 그즈음 나는 회사에 완전히 질려있었다.
나는 전쟁에 나가는 병사가 총구를 점검하듯 매일 출근 후 1회용 눈물약을 건조한 두 눈에 한통 가득 넣고서야 눈부신 블루라이트를 뿜어내는 모니터 속 각종 엑셀과 워드 자료를 훑어볼 수 있었다. 1.5이던 시력이 0.5가 되고 전에 없던 난시가 생겨 버스 번호판이 번져 보였으며 밤 운전을 꺼려하게 되었다. 또한 목과 어깨를 수시로 주물렀고 허리는 신경이 찌릿할 정도로 아파 미간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 팔다리 저림은 낮보다 밤에 더 심해져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고 그렇게 밤새 선잠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기상 알람이 울릴 시간이 되면 극도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출근을 했다.
더욱이 나는 지난 서너 해 동안 생리 양이 점차 적어지다 얼마 전에는 무월경을 수개월 겪게 되었다. 잦은 출장과 빡빡한 업무 스케줄로 병원 방문을 한주 두 주 미루다 무려 3개월의 무월경을 겪은 후에야 겨우 산부인과에 가서 인위적으로 월경을 유도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았다.
"내 몸 구석구석에서 아프다고 힘들다고 끊임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스트레스와 체력적 한계로 몸은 그렇게 꾸준하고 다양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아둔한 나는 이에 공감하고 보듬어주지 못했다. 사무직 직장인 중에 안구건조증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하루 온종일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허리가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며, 그리고 설령 눈이 침침하고 목과 허리가 아프다 한들 검토해야 할 서류가 한가득 쌓여있는데 어쩌겠냐며 고통을 참고 합리화했다. 회사 때문에 병을 얻었다는 생각에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직장인 직업병쯤으로 여기며 나도 그냥 순응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한 해 두 해 점점 더 통증이 심해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서른 중반밖에 되지 않은 나의 나이에 바보같이 그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누적된 심신의 피로감과 통증은 1년 전부터 부쩍 극심해져서 주말이면 하루 종일 잠만 자는 패턴이 수개월 반복되었다. 주말 내내 잠을 자도 몸은 여전히 피곤해 평일에도 퇴근 후 곧바로 귀가했고 생활을 단순화했다. 밤늦게 하는 예능프로그램 시청을 끊고 되도록 10시면 잠자리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게다가 홍삼과 각종 비타민제, 그리고 여성에 좋다는 석류즙까지 두루 섭취하며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온종일 굳어 있던 몸을 스트레칭하고 코어 근육을 키우며 낮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치유하기 위해 요가, 필라테스, 헬스, 수영을 번갈아가며 꾸준히 운동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이 무색하게도 새해가 되자 심신의 피로감은 더욱 심해졌다. 핵심 업무에만 에너지를 쏟아도 부족한 시간에 홍수처럼 떠밀려오는 일을 위한 일과 온갖 잡무를 그간 조직이 해왔던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해내느라 지쳐갔다. 또한 하루 종일 상사가 요청하는 일이나 질의에 대응하고 타 부서의 긴급 자료 요청에 응대하다 보면 정작 "내 일"을 위한 시간이 부족했다. 온종일 전화기를 붙잡으며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이야기하고 각종 회의에 끌려들어가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며 화장실과 점심식사를 제외하고는 종일 책상에 앉아 일했건만 퇴근할 때쯤이면 일에 진척사항이 없었고 늘 "TO DO LIST"가 빼곡했다. 나는 점점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져가고 있었지만 업무 환경이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였다
결국 나는 퇴사와 이직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채용 포털 사이트에서 경력직 공고문을 검색하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다. 몇몇 경력 공고와 헤드헌터로부터의 채용 제안을 검토했지만 마땅히 맘에 드는 곳이 없었다. 연고지가 없는 곳으로 지역을 이동해야 한다는 점과 주거 이전으로 인한 생활비 상승분을 충분히 커버할 정도로 연봉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을 표면적으로 내세우며 제안을 거절했지만 사실 나는 두려움이 컸다. 신입과 달리 경력직은 새 직장에 가서 신속히 적응하고 능력을 증명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기에 당장 이직을 하면 지금보다도 더 힘들 수 있다는 점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실제로 두어 달 전 이직한 동기가 매일 새벽 1,2시에 퇴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오자 좌절감마저 들었다. 심지어 당시의 나는 건강도 좋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도 거의 없는 번아웃 상태였다.
하지만 이직이 두렵다 하여 여기서 더 버틸 자신도 없었다. 아니 더 이상 버티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그때부터는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건강을 회복하고 심리적으로도 치유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사는 리스크가 높은 선택이었다.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채 마냥 그만 두기에는 앞으로의 날들이 너무 불확실했다. 그리고 실제로 주위 지인들의 경우를 보아도 재직 중인 상태에서 이직하는 것과 무직 중인 상태에서 이직을 할 때 제안받는 조건과 협상력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퇴사와 이직, 그리고 조금 더 버티는 것 중 어느 것 하나 용기 있게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신경은 예민해졌고 체력은 바닥을 쳤다.
"어느덧 나는 직장이 전쟁터라면 직장 밖은 지옥이라고 나도 모르게 되뇌며, 그토록 싫어했던 '내가 있는 여기가 제일 안전하다고 믿는 직장 노예'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퇴사와 이직, 버티는 것 중에서 빨리 선택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하고 있는 내 모습에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직장생활로 심신이 쇠약해지고 건강이 악화되었는데 산재보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차악 중 하나를 빨리 선택하라고 스스로를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해를 받은 쪽은 나인데 선택에 따른 리스크와 불확실성까지도 오롯이 혼자 부담해야 하는 구조였다. 불공정했다. 그래서 나는 현재 내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편리하며 가장 신속하고 가장 리스크가 적은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휴직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휴직의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자기 계발 휴직이나 리프레쉬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는 회사라면 애당초 고민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내가 재직하던 회사에는 규정상 오직 병가휴직과 육아휴직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제껏 나는 병가휴직이란 무릇 수술이나 입원으로 출퇴근이 힘든 사람들이 내는 휴직제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심지어 교통사고로 입원을 해도 병가휴가를 받지 못하고 개인 연차를 모두 소진한 후에 휴직을 써야 하는 등 휴직제도를 이용하기가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트레스성 건강악화는 최소한 출퇴근은 가능하기에 병가휴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따라서 처음부터 나는 휴직을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에서 제외했던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트레스성 건강악화만큼 무서운 병이 없었다. 뼈가 부러지고 특정 장기에 병이 발병하면 수술이나 치료 후 어느 정도 회복기간을 거쳐 끝이 나지만 스트레스는 특정 부분이 아닌 정신부터 신체 구석구석까지 병들게 했으며 특정한 치료법이나 약이 없어 회복기간도 명확히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담 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스트레스성 생리불순은 수술처럼 얼마 후에는 회복이 된다고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없기에 오히려 수술보다 회복이 어려운 면이 있다고 했다. 또한 검사 결과 팔다리 저림이 디스크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나오자 정형외과 선생님은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노력하라고 권고했다.
어쨌든 나는 충분히 휴직을 할 자격이 있었다. 그간 조직이 원하는 대로 열심히 일했고 그 과정에서 건강했던 나의 심신이 이렇게 병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회사에서 휴직 승인을 해주지 않는다면 이런 회사는 더 이상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퇴사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다음날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은 후 부장님, 팀장님과 차례로 면담했다. 내 상황을 설명했고 최소 1년의 휴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팀장님은 처음에 이런저런 이유로 3개월의 휴직을 제안했지만 나는 사실 3개월로는 도저히 회복할 자신이 없었다. 3개월 뒤 복귀하면 또다시 똑같은 고민을 그대로 할 것 같았다. 퇴사와 이직과 좀 더 버티는 것 중에서.
그리하여 나는 1년의 휴직이 필요함을 재차 설명하였고 결국 휴직 승인을 받게 되었다.
조직은 나의 휴직 필요성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