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게 취미를 물어볼 때면 나는 주저 없이 '여행'을 제일 먼저 말하곤 했다. 여행 가는 것을 즐겼고 비교적 자주 여행을 하는 편이었으며 적지 않은 곳을 여행했던 추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월급 중 가장 소비가 많은 부분이기도 했다. 갖고 싶은 것이 그다지 없고 스테이크보다는 국밥을 자주 먹으며 얼마 전까지도 CD-ROM이 달린 10년 된 노트북을 개의치 않고 썼던 나는 번번이 꽤 많은 비용이 드는 여행만큼은 그다지 망설이지 않았다.
아마도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가치를 높게 매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에서는 쉬이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명절이나 입학 때마다 친척들에게서 받은 용돈을 꼬박꼬박 내 통장에 넣어주시며 대학생이 되면 배낭여행 갈 때 쓰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뇌리에 강하게 박혔기 때문인지 아님 당시의 내 생각에도 배낭여행은 그럴듯한 로망처럼 비쳤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꿈꾸었다. 하지만 이후 대학생이 된 나는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고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체력과 시간이 있었기에 다양한 기회 속에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느라 여행은 내게 우선순위가 되지 못했다.
반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여행을 자주 갔다. 봄에는 꽃놀이를, 가을에는 단풍구경을 했고 여름휴가 때는 극성수기의 값비싼 요금에도 매년 비행기표를 끊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렇게 나는 매년 여름휴가와 징검다리 연휴, 주말과 연차휴가를 알뜰살뜰히 활용하여 국내외로 여행을 자주 다녔고 때문에 나의 연간 스케줄 역시 그러한 휴가일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수년간 반복되자 주말에 연차를 이어 붙인 삼사일의 여행은 물론이거니와 앞뒤 주말을 포함한 9일간의 여름휴가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날로 높아지는 스트레스와 차곡차곡 축적된 피로감이 이제 더 이상 여름휴가 정도로는 회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며 얻은 좋은 에너지와 잠시 리프레쉬된 심신은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 그 여운이 모두 사라졌다. 때문에 언젠가부터는 장기 여행에 대한 바람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거나 퇴근 후 씻고 침대에 누울 때면 해외 유명 도시에서의 한 달 살기나 남미 투어 같은 장기여행에 대한 로망을 막연히 꿈꾸면서 관련 블로그를 반복적으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내게 한두어 달 정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면 여름휴가 때 짧게 머물렀던 프랑스 남부지방에서의 한 달 살기를 해볼 거라며 아니 그보다 일단 제주도 한 달 살기부터 해 보자며 그렇게 실없고 덧없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이 꿈은 회사에 재직 중인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는 절대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휴직을 하게 되었다.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기에 나 역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퇴사하지 않고서도 오롯이 장기 휴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도 훨씬 빨리 그렇게 꿈꾸던 장기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게다가 학생 때처럼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직장 다닐 때처럼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 시간과 돈을 오롯이 다 가지고 있는 상태, 즉 원하는 만큼 실컷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침내 얻게 되었다. 이는 웬만해서 다시 갖기 힘든 소중한 기회였다.
때문에 나는 마추픽추를 둘러보고 우유니 사막을 걸어보는 남미 일주나 내 평생 갈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아프리카 정도는 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대학생 때 미처 해보지 못한 유럽 100일 배낭여행 같은 것이라도 먼저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휴직 전후로 안부를 전하는 이들마다 당연스레 내게 어디로 여행을 갈 계획인지를 물었다. 아마도 그들 역시 여행을 자주 다니는 내가 여행하기에 최적인 시기를 맞이하여 마음껏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대리 만족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휴직 직전 가진 식사자리에서 본부장님은 내게 피폐해진 심신을 리프레쉬할 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고 오기를 추천해 주시기도 했다. 당시 tvN에서 <스페인 하숙>이 한창 방영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타인의 눈에도 나는 그렇게 익숙한 곳을 벗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장기 여행을 통해 나를 되찾는 일이 필요해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놀랍게도 휴직하는 동안 여행이 그다지 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몸이 아프니 회복하고 나서 생각해보기로 했고,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고 나니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 이어폰을 끼고 공원을 산책하고 한적한 오후 카페에 앉아 차 한잔을 하며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원하는 대로 아무것이나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상이 만족스러웠다. 때문에 비좁은 이코노미석 좌석에서 오랜 비행시간 동안 목과 허리의 통증을 느끼며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서 대중교통을 검색하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여행이 고단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놀랍게도 여행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다시없을 장기 여행을 할 수 있는 이 기회에, 그렇게 고대해 왔던 한 달 살기를 이번 기회에 하지 않으면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었기에 머릿속에서는 여행을 가야 되지 않을까를 수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렇게나 퇴사를 하고 나면 너도나도 떠난다는 장기 해외여행을 통해 나도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머릿속 고민이었다. 하고 싶은 거라기보다는 이마저도 '이 기회에 해야 할 것'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껏 마음이 원해서 여행을 갔었는데 이번에는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마냥 수개월의 휴식에도 아직 몸이 무겁고 피로해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던 나는 동생과 함께한 일주일간의 발리 여행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발리는 내게 한 달 살기를 꼭 해보고 싶었던 최애 장소 중 하나였는데 일주일간의 여행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고 만족스러웠다. 아쉬움이 별로 남지 않았고 여행 일정이 끝나자 집으로 가고 싶어 졌다.
친한 LA 언니가 물었다.
"여행은 안가?"
"응, 지금 삶에 만족하니까 여행 생각이 나지 않네."
그리고 올해에 들어서는 더 이상 고민조차 할 필요 없이 코로나로 발이 묶여버렸다.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지난 십 년간 내 취미가 '여행'이라는 점에 티끌만큼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여행을 늘 갈구했고 여행을 하는 내내 즐거웠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언제든지 내 맘대로 오롯이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보니 나는 그렇게 여행을 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시절 여러 하고픈 활동을 하는 동안 여행이 후순위로 밀려났던 것처럼 휴직 후에도 내게 여행은 기타 다른 활동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되지 못했다. 아마도 여행은 내게 직장을 다니면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탈, 새로운 경험, 리프레쉬 기회였기 때문에 그렇게 우선순위가 되었고 취미가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직장인의 삶에 대한 불만족이, 일상에 대한 불만족이 나를 그렇게 여행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 역시 여느 직장인들과 같이 퇴근 후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휴가를 모아 여행을 가며 월급을 소비하는 재미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휴직기간을 통해 확실해진 것은 직장생활을 하며 내 취미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또는 나에게 잘 맞다고 생각한 것들이, 또는 내 취향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진짜 내가 아니라 억눌리고 강박을 느끼고 위로가 필요한 회사원으로서의 내가 일상을 버티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활동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욱 명확해진 것은 여유 있는 나, 일상에 만족하는 나는 그렇게 잦은 여행, 장기 여행이 필요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