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노동 계급은 재택근무자냐 아니냐로 나뉜다
"OO사는 전 직원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지난 2월, 순식간에 바이러스 감염자가 폭증하자 일부 기업들은 신속히 재택근무 체제로 업무방식을 전환했다. 그동안 몇몇 다국적 기업과 조직문화가 유연한 IT, 외국계 기업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던 재택근무가 어느덧 사회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대면 접촉을 절대적으로 줄여야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 특성이 그간 미온적이었던 재택근무제 도입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재택근무제의 장점은 흔히들 노동자에게 치우쳐 있는 것으로 여겼다.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과 체력을 절약하고 집에서 가사를 병행하며 자유로이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장점으로 손꼽혔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에 의존한 업무 진행은 관리감독이 힘들 뿐만 아니라 결국 생산성 저하를 초래할 것으로 염려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로 어쩔 수 없이 시행된 재택근무제가 예상과는 달리 생산성을 오히려 향상시켰다는 보고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산만한 사무실과는 달리 본인의 업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업무처리 효율성이 높아진 데다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과 체력을 아껴 운동이나 취미 생활 등에 투자하면서 오히려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갖추게 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직원들이 병가와 연차를 내는 횟수를 감소시키는 등 부수적인 효과도 가져왔다.
그래서인지 금번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재택근무제와 유연근무제를 계속 유지, 확장시켜 나가겠다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로 갑작스럽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미래에는 재택근무제가 '뉴 노멀(New Normal)'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개월간의 실험 결과 염려했던 생산성 감소 효과는 미미한데 반해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으며 회사로서도 장기적으로는 사무실 임대료 및 각종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여전히 일부 기업에서만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업/직종 특성상 재택근무가 용이치 않다거나 당장 시스템 구축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조직은 직원 관리와 업무 진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염려하고 있다.
지난 3월, '사람인' 국내 1089개사를 대상으로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한 재택근무 실시 의향'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과반수 이상이 실시계획이 없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 업/직종 특성상 현장 근무가 필수여서(56.9%),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아서(28.7%), 재택근무 시스템을 준비할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해서(25%), 재택 시 직원 통제 및 관리가 어려울 것 같아서(15.7%), 재택근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9.7%),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7.9%)라고 답했다.
미래의 노동계급은 재택근무자냐 아니냐로 나뉜다
미국 노동부 장관 출신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코로나가 미국 노동자들을 새로운 4개 계급으로 재편성하고 있으며 그중 제1계급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원격근무자들이라고 말한다. 전체의 35%인 전문직, 관리직, 기술직이 여기에 해당하며 이들은 가상회의 등의 디지털 도구 덕분에 굳이 사무실에 갈 필요가 없어 코로나에도 임금이 감소하지 않은 유일하게 잘 나가는 계급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로버트 라이시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재택근무자와 아닌 자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예를 들어 재택근무로 하루 8시간을 근무하는 근로자와 매일 출퇴근에 두세 시간을 추가로 사용하는 근로자의 노동 가치가 같을 리 없다. 게다가 가사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일하는 형태에 따른 소득 격차는 더욱 커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택근무자는 현재와 같은 전 세계적인 전염병의 위험에서도 비교적 안전하게 일상과 생업을 모두 영위할 수 있다.
한편 재택근무제의 도입은 기업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사원의 자율성을 신뢰하고 투입 시간 대비 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으로 자연스레 인재가 모여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앞으로는 재택근무의 가능 여부가 곧 일터를 선택하는 주요 기준이 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방역, 의료 체계와 같은 보건 인프라가 국가의 새로운 경쟁력 지표로 대두되었듯이 앞으로는 재택근무나 유연근무를 하고 있는지가 곧 노동자의 경쟁력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발발하기 전 오프라인 사업을 온라인으로 적절히 디지털 전환했던 기업들은 갑작스러운 위기를 기회로 맞이하여 오히려 급성장한 반면 사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던 기업은 매출과 이익에 큰 타격을 받았다.
비록 재택근무제가 코로나로 갑작스럽게 확산되기는 했지만 바이러스의 종식과 함께 멈추거나 되돌아갈 현상은 아니다. 재택근무제는 단순히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일에 대한 관점과 태도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와 함께 발전해나가야 할 내가 현재 소속된 조직에서도 그러한 환경변화에 늦지 않게 대비하고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될 여러 난제들을 치열하게 고민해주길 바라본다.
얼마 전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코로나 상황 정례브리핑을 마치며 다음과 같이 당부를 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 악순환 고리에 빠진 상태입니다. 환자가 다시 줄어들면 코로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원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