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나와 잘 맞으면 장사하기가 정말 수월하고 즐거울 것이다. 나와 극히 맞지 않다면 그는 ‘진상 손님’이 된다. 대체로 내가 ‘진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결국 본인의 자리는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진상 손님'이라고 구분되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중에서 옷 값 흥정에 관한 몇 가지 경우가 있다.
“다른 손님들도 다 이 가격에 가져가셨어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저는 더 깎아주세요.”
“그러면 제 값을 치르고 사간 손님들은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내가 말할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요. 자주 오는데 더 깎아주세요.”
옷을 살 때마다 집요하게 같은 멘트로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때는 인내심에 한계가 다다르기도 한다.
“제가 알잖아요. 제가 다른 손님들에게 미안해져서 안 됩니다. 대부분이 단골손님이 오시는데 가격이 정해져 있고 규칙을 지키는 거예요. 떼쓰면 더 깎아주고 얌전한 손님에게는 덜 깎아주고 그러면 안 됩니다. 제가 그렇게 못해요.”
이 정도 이야기가 나왔으면 그만 할 법 도한데 집요한 손님은 포기할 줄을 모른다. 옷은 마음에 들기 때문에 이렇게 집요한 것이다.
"누구나 다 싸게 사고 싶은 마음은 같은데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굳이 가격을 정할 의미가 없잖아요. 원칙은 지켜야 해요. 가격이 안 맞으면 사지 않으셔도 됩니다.”
결국은 안 사도 된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은 곧 ‘안 팔고 싶어요.’라는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본인이 주고 싶은 금액으로 끝까지 고집하고 옷을 사는 사람이 있다. 계속 봐오던 사이에 너무 단호하게 끊지를 못하는 자신이 속상한데 단호하게 끊으면 마음 상할 것 같아서 또 신경이 쓰이고.. 차라리 물건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사듯이 금액도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면 되는데 자꾸 힘들게 하는 손님. 이쯤 되면 나에게는 '진상 손님'이다.
남는 게 내 수입인데 간혹 가격을 터무니없이 깎아버리고 ‘이래도 남잖아요.’라고 하면서 돈을 던지다시피 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흥정이 끝나기 전에 옷을 담아둔 것이 실수였다. 붙잡아서 옷 봉투를 뺏어야 하나? 심란했던 적이 있었다. 손님 말처럼 그래도 이윤이 남기는 남는다. 그렇지만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다. 왜 좋은 물건을 자기 마음대로 본인만 그렇게 싸게 가져가려고 할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을 간혹 만난다. 정말 몇 안 되는 경우이지만 에너지를 뺏기고 마음이 상한 기억은 오래 남는다.
그리고 이런 ‘진상 손님’ 때문에 제값을 주고 사가는 손님들은 본의 아니게 손해를 보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정가'가 있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요즘은 손님들도 수준이 올라가서 이런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이가 많은 옛날 사람도 아니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을 한다. 그렇다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아니다. 내가 진상 손님이라고 하면 아마도 이런 변명을 할 것 같다.
‘많이 사는데 깎는 재미가 있어야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본인 입장에서 많이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쫌 깎았다고 나를 진상 손님이라고 해요?’라면서 기분 나빠하며 오히려 화를 낼 사람인지도 모른다.
오래전 서울에 물건 하러 가는 길 기차 안에서 찍은 사진
장사는 원래 푼돈이 모여서 목돈이 된다고들 한다. 그리고 손님들이 쉽게 천 원. 이천 원 깎아 달라고 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가 없는 것은 장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옷가게에서 심하게 마음대로 입어보거나 마음대로 깎는다. 본인이 원하는 금액에 해주면 살 것이고 아니면 안 살 것이라고 허세를 부리는 손님에게
"그럼 사지 마세요. 그 금액에는 못 드립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단호했던 내 말에 결국 그 옷을 사지 못한 한 손님의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 손님은 원래 그렇게 질긴 사람이 아닐 것인데 너무 매정하게 거절한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 당한? 이후 다른 곳에서는 섣불리 그런 행동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나를 보고 못됐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배가 불렀네.’ 혹은 ‘이렇게라도 팔아야 조금이라도 남지.’ 등등 본인들의 기준으로 온갖 뒷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동네 옷가게이다 보니 오랜 세월 단골로 지낸 손님들은 내가 알아서 해준다고 믿고 있다. 계산기를 두드릴 때 마음속으로 여러 번 갈등이 생긴다. 내가 정해놓은 원칙대로 할인을 했지만 마음이 안 편해서 뒷자리 몇 천 원이라도 더 깎아주려고 고민을 하게 된다. 손님들이 이런 나의 내적 갈등을 잘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계산할 때 계산기를 들여다보면서 머뭇거릴 때는 천 원이라도 더 받으려고 고민 중인 것이 아니라 천 원이라도 더 할인해주기 위해 고민 중이다. 아마 단골손님들은 이런 주인장의 내적 갈등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이 된다. 작은 도시에 동네 옷가게라는 특성상 깎아주는 맛이 있어야 정이 있게 느껴진다.
지난 9년을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마음 약해서 더 깎아주지 않았다면 부를 더 많이 축적했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내가 건물을 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 봤자 통장잔고가 조금 더 늘었거나 그래서 조금 더 넉넉하게 살았을까? 그것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조금씩 더 할인해주면서 서운하지 않게 하려 했던 마음을 알아주시고 꾸준히 우리 가게를 오기에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일수록 손님들은 작은 가게에서 좋은 물건을 무조건 싸게 사려는 이기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네 작은 점포들이 살아남지 못하면 내가 사는 동네가 생기가 없어지고 활기를 찾을 수가 없게 된다. 이왕이면 동네 구멍가게를 이용해주고 동네 식당에서 밥 먹고 동네 찻집에서 차도 마시면 좋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동네 작은 가게들도 손님들이 꾸준히 찾을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노력은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철도 지났는데 파는 게 낫지 않아요?”
“그 금액으로 드리는 것은 파는 것이 아니 예요. 그냥 드리는 거나 다름없어요.”
“어쨌든 이렇게라도 팔아서 현금화시키는 게 낫지 않아요?”
참 거슬리는 말이다. 나의 현금사정까지 걱정하는 사람이 원가 이하로 내게 손해 보면서 달라는 것이다. 실제로 악순환을 겪는 작은 가게들은 이런 식으로라도 팔아서 단돈 얼마라도 현금을 만들어야 된다. 그래야 그 돈으로 새 물건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일하는 상품은 거의 원가로 판매하는 옷도 있다. 그럼에도 그 옷을 아예 거저 가져가려는 심보를 가진 사람이 있다. 나도 고집이 있어서 아무리 재고라고 해도 끝까지 팔지 않는다. 세일을 할 때 원가라는 것이 도매로 구매해온 가격이 아니다. 가게 세, 전기세, 화물비, 전화요금 정도는 포함된 것이 원가이다. 밤에 잠 안 자고 물건 고르고 주문하는 옷가게 주인장의 인건비까지는 못 받더라도 원가는 그렇게 계산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말 어려울 때는 ‘원가 이하’라는 말을 붙이고서 세일을 한다. 그런 어려움을 악용해서 더 싸게 가져가려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알뜰하게 쇼핑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나에게는 안 통하는 사람들이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손해보고는 못 드립니다. 차라리 기부하는 게 나아요.”
실제로 나는 수년째 기부를 해오고 있다.
어떤 손님은 농담으로 “저한테 기부하세요.”라고도 한다.
성향이 다르다 보니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상대방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것인 줄 모르고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를 해본다. 익숙하고 편해진 손님들과의 관계만 생각하다 보니 새롭게 만나는 손님들의 남다른 성향에 당황하고 피곤했던 것이다. 이런 일로 흔들려서 다음 손님이 오셨을 때까지도 얼굴이 굳어있을 때가 있다. 프로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마추어 같을 때가 간혹 있다. 새로운 손님들과의 옷값 흥정. 이것은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손님은 그냥 손님이지 내가 먼저 ‘진상 손님’이라는 단어로 구분 짓지 않도록 마음을 넓혀야 한다. 그런 손님과 더욱더 친밀해지면서 나의 원칙에 들어오도록 만들어 가는 것도 능력일 것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보는 안목으로 손님을 대하고 물건도 정성껏 골라주는 습관. 옷가게 주인의 입장에서 보는 손님들의 나쁜 습관만 생각하지 말고 옷가게 사장님으로서 나쁜 습관은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에게도 몇 가지 나쁜 습관이 있음을 안다. 노력하고 있지만 잘 안 고쳐지는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