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줌마로 나이 들어가기 싫었다.
나도 작가다 공모전 <새로운 시작, 나의 도전기>
2011년 8월 15일 내 나이 마흔다섯.
여름휴가 기간이어서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단골로 다니던 옷가게 사장인 순미가 7년 넘게 해오던 가게를 내가 해 볼 생각은 없느냐고 제안을 했다. 직장에서 받는 월급보다 나을 것이라면서 걱정하지 말고 시작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딱 이틀만 시간을 주겠다고 했으며 나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옷장사라는 일을 이틀 만에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을 맞았다.
9년 넘게 근무했던 치과의 원장님은 병원 문 닫을 때까지 같이 일하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온 새로운 기회를 잡기로 결심했다. 얼굴 보면서 말할 용기가 없어서 휴가 마지막 날 저녁에 전화로 말씀을 드렸다. 비중이 컸던 내 업무는 밑에 후배에게 인수인계를 잘해줄 테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원장님은 서운함에 말씀도 없이 그냥 사모님을 바꿔주시는 것이었다. 사모님께 차분하게 이런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혹시 결단을 번복할까 봐 계약금 일부를 이미 주었다고 말씀드렸다. 사모님 역시 나에게 걱정이 더 많으셨다. 원장님과 사모님을 알았던 것이 내 나이 22살 때부터였다. 결혼 후 치과 일을 10년 이상 손 놓고 살던 나를 다시 불러 주신 것이었다. 이런 특별한 인연이었던 내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했을 때 많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나의 앞날을 걱정해주신 두 분이셨다.
"그렇게 돈을 투자해서 힘든 옷 장사를 하려고 해요? 그냥 안정적인 병원에서 한 십 년만 더 일하고 편하게 쉬면 되잖아요?"
"사모님 10년 뒤면 제가 지금의 사모님 나이가 되는데 그때도 지금 사모님처럼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만 살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고 안주하며 살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는 치과를 그만두어도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안 생길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에는 아무도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지도 않을 것이고요.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제가 10년 뒤에 새로운 일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지금 변화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자 사모님은 더는 어떤 말도 나에게 할 말이 없으신듯했다. 그때 시작을 해야 혹시 실패하더라도 무언가 재도전할 수 있는 여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이가 오십을 넘어도 집에만 안주하고 있을 성격이 아니란 것을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단 이틀 만에 옷가게 사장님이 되기로 결정했다.
어느 날 문득 기회는 온다. 우리는 기회를 기회인 줄 모르고 놓치기도 한다. 기회가 왔지만 내가 잡지 않는 것은 나에게는 기회가 아니다. 어떤 기회가 온다면 너무 많은 생각으로 놓치지 말고 잡아야 만이 나에게 기회가 된다는 것을 살면서 종종 알게 된다. 아줌마로 살아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각자가 사는 방법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고 이상이 다를 뿐이다. 다만 나는 그냥 아줌마로 나이 들어가기 싫었다. 직장이 있었지만 ‘갑’과 ‘을’의 관계로 일하는 것에 회의가 느껴지던 때에 기회가 온 것이었다. 말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한 가지는 ‘지금 하지 않으면 더는 이런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에서 ‘옷가게 사장님’이라는 힘든 직업을 선택했다. 참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그로부터 어느새 9년째 옷가게를 하고 있다.
동대문시장을 처음 갔을 때 그 화려한 불빛들은 잊을 수가 없다. 도로는 인파로 넘쳐나고 상가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건물 밖으로 흘러나오는데 태어나서 이렇게 심장이 뛰는 일은 처음이었다. 33년도 더 지난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 가을운동회가 생각났다. 요즘도 가을 운동회가 있을까? 나의 어린 시절 가을 운동회는 동네잔치 같은 행사였다. 운동장을 들어섰을 때 가득 울려 퍼지던 음악소리와 하늘에서 날리고 있던 만국기.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술렁임. 이겨야 한다는 다짐이라도 하듯이 생기발랄하던 그때의 설렘. 동대문 상가의 화려한 조명과 음악은 운동장에서 펄럭이던 만국기와 울려 퍼지던 음악 같았으며 건물 주변에 물건을 모아두는 천막들이 쳐지는 모습은 가족들이 좋은 자리에 돗자리를 폈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 가는 날은 이런 어린 시절 운동회 날의 추억의 한편 같은 들뜸과 설렘이 있었다.
밤새 북적대고 술렁이던 동대문의 물결은 잠자고 있던 나의 열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동대문의 많은 사람들은 밤을 낮처럼 살아간다. 나와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몰랐던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하듯이 가슴은 뛰고 있었다.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시간은 좀 걸렸지만 이미 시작된 새로운 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 했다. 살면서 도전이나 모험이라는 단어를 쓸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냥 예쁘고 곱고 무게감이 없으며 참한 말들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장사’라는 도전은 정말 겁나는 것이었다. 직장생활만 했던 내가 마흔다섯이라는 나이에 경험도 없는 장사를 시작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모험의 시작이었다. 비록 나 혼자 사장이고 직원이기도 한 ‘일인 사업장’이지만 내 사업장을 가지게 된 것은 내 인생에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동대문은 마흔다섯 살에 만난 신세계였다.'
-달달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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