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달슈가 May 15. 2020

트렌드만큼 중요한 디테일과 스타일

오늘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다.

제목을 적고 보니 트렌드니, 디테일이니, 괜히 무언가 어려운 듯하고 좀 세련된 느낌을 주기도 하는 단어이다. ‘트렌드’ 쉽게 말해 ‘유행’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유행의 흐름’ 같은 것이라고 할까?

나는 '옷장사'이지 패션에 관해서 전문가가 아니다. 디자이너도 아니고 섬유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손님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질문도 한다. 그래서 옷가게 주인이라면 적어도 매 시즌 트렌드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원단에 대해서도 질문을 할 때는 난감할 때가 많다. 경험이거나 상식으로 아는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는 그 정도이며 손님들 중에는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나는 그저 옷의 디자인이나 색상 같은 트렌드 정도 (사실 이런 것도 나보다 더 잘 아는 손님들이 많다.) 그리고 원단이라고 하면 면. 마. 아크릴. 울. 캐시미어. 등등 이것 또한 대부분의 주부들이 알고 있는 정도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손님들보다 트렌드나 디테일함에 있어서는 센스 있고 감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은 옷가게지만 이런 부분에서 손님들을 리드해간다는 자긍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자신 있고 당당하기 위해 노력했다. 손님들보다 먼저 알아야 하고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에 나름 유행에 대해서 발 빠르게 공부? 하기도 한다.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단골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 의류시장은 유행이 급변하는 패션 시장이다. 매 시즌마다 다양하게 나오는 옷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를 알 수가 있다. 9년째 옷들을 엄청나게 보아 오면서 ‘디자인을 이렇게 만들 수가 있다니.’ 하면서 감탄하기도 했다. 다른 일이었으면 진즉에 싫증을 느끼고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몇 번이라도 들었을 텐데 옷은 늘 다르게 다양하게 신상들이 나오니 싫증을 못 느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보이쉬한 멋으로 입었던 청자켓이 요즘은 여성스럽게 다양한 디자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얇고 부드럽게 워싱 과정을 거친 제품들이다.


유행에 가장 민감한 것이 여자들의 옷이다. 요즘은 옷이 낡아서 못 입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행에 뒤져서 입기가 싫다 하고 헌 옷은 손이 안 간다고 한다. 세련돼 보이고 싶고 센스 있게 보이고 싶다면 유행을 따르거나 유행을 앞서가야 한다. 흔히 유행을 앞서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너무 많이 앞서는 사람들은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개성이 없거나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으면서 유행하는 스타일만을 쫓는 것은 패션 테러리스트와 다를 바 없다. 유행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본인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본인의 색깔이 있다’고 표현을 한다. 내가 패션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디자인을 공부했거나 섬유에 대해서 공부를 한 적도 없지만 좋아하다 보면 전문가는 아니어도 안목은 생긴다. 흔히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도 ‘만들 줄은 몰라도 맛은 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코디를 시켜주고 어울리는 색상과 디자인을 골라주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골라가듯이 걸려있는 옷을 손님이 골라서 계산하고 들고 간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우리 가게 단골손님들은 대부분 주인인 내가 봐주길 원한다. 옷가게의 특징이다.


"이거 어때요?"

"이게 더 나아요?"

"이 색깔은 어때요? 다른 색은 없어요?"


수없이 질문하고 대답을 해주고 어떤 날은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귀찮을 만큼 시달릴 때도 있었다. 손님은 한 분 한 분이지만 나는 혼자 릴레이를 하듯이 종일 이어질 때는 진이 빠지는 듯하다. 본인의 색깔을 잘 알고 쉽게 고르는 손님은 얼마나 고마운 손님인가? 그렇다고 다른 손님이 진상이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선택 장애가 정도에 따라서 심하거나 덜하거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누구나 본인이 만족될 때까지 옷을 선택하는 과정이 힘들다.      

어떤 디자인이나 색상을 고르더라도 매번 트렌드가 있기에 그런 트렌드를 가미시켜야 식상하지 않고 적당히 신선하게 보인다. 손님들에게 트렌드를 알려주고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 단골손님들을 유행에 뒤처지는 사람으로는 만들면 안 된다. 우리 가게 단골손님들은 대부분 무난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무난하고 평범한 디자인의 옷은 자칫 그 옷이 그 옷 같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가게에서 산 옷을 입고 나갔을 때 ‘예쁘다’ ‘어디서 샀노?’ 적어도 이런 말 정도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손님들은 기분이 좋을 것이고 자신감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신뢰감과 함께 ‘언니 고마워요.’라는 한마디라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생각해보면 돈을 버는 일보다 이런 트렌드를 입히고 손님들의 개성을 살려주고 스타일을 찾아주면서 느끼는 보람이 더 컸다. 그런 것이 더 힘나게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손님들은 나를 찾아오고 돈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청바지들의 다양한 색상들. 미니 스카프의 약간은 촌스러운 듯한 꽃무늬. 미세한 차이지만 착용하는 사람과 방법에 따라서 표현은 다양하게 나온다.


작지만 미세한 ‘디테일’이란 것이 있다. 어딘가 모르게 달라 보이는 것이 ‘디테일함’ 일 것이다. 각자의 스타일을 잘 파악하고 좋아하는 스타일과 어울리는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것 또한 디테일하게 보도록 노력해볼 일이다. 무언가 거창하고 어려워 보이는데 단골손님들의 취향을 파악하라는 뜻이다. 내 스타일을 강요하고 입히기 전에 손님의 취향을 알고 맞는 스타일을 입히는 것, 손님들이 센스 있고, 세련되어서 나보다 훨씬 코디를 잘해서 입는다면 나는 그저 그분들이 좋아할 만한 옷만 준비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손님들에게 예쁜 옷을 입히면서 그분들의 개성이나 스타일을 지켜주는 일이다. 내가 써놓고도 말만 들어도 무슨 과제를 하는 것 같이 생각된다. 손님들을 자주 상대하다 보면 가게를 들어오는 손님을 나도 모르게 스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새로운 손님이 어떤 스타일인지 대충 파악하려는 것이 본능적으로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그럴 때는 나에게도 디테일함이 필요할 때이다. 재빠르게 손님들의 스타일을 읽어내야 한다.     


유행할 때는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말고 유행하는 스타일을 입어주자.

말 그대로 유행의 흐름이다. 대부분 2년에서 길어야 3년 정도이다. 고가의 옷이 아니기에 (물론 좀 사악한 가격의 옷이 있기도 하지만) 남들 하나쯤 다 입는데 나 혼자만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스타일이 무엇인가? 각자가 다 다른 스타일이기에 그것도 일종의 ‘개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각자의 스타일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아직 스타일을 못 찾고 그냥 이것도 입었다가 저것도 입었다가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나무랄 수는 없다, 그것 또한 그 사람의 스타일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스타일을 다 소화하는 일명 옷발 잘 받는 손님들도 계시다. 웬만큼 친해지기 전에는 섣불리 스타일을 바꿔주거나 권할 수가 없다. 손님의 마음을 움직이기 전에는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시도는 해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손님도 ‘정말 진심이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으니까.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감동’을 주는 일이다. 작은 감동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손님과 나 사이에는 벽이 무너질 수 있으며 믿음도 생기게 된다. 그렇게 손님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일을 손님과 함께 만들어 가다 보면 어느새 단골이 되어있고 스타일도 제법 괜찮게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성인이 된 딸들은 내 모습을 사진으로 잘 남겨준다. "엄마는 아직 젊고 예뻐."라는 말도 아끼지 않는다. 나는 참 예쁜 나이의 두 딸을 마주 보며 사진으로 담는다.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은

"예쁜 옷을 입을 수 있을 때 예쁘게 입어라."

"나이 더 들면 아무리 예쁜 옷을 입어도 얼굴도 쭈글쭈글해서 예쁘지가 않다."라고 말씀하신다.

나이 더 들면 예쁜 옷보다는 무조건 가볍고 편한 옷만 찾는다고 했다. 나 역시 손님들에게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예쁘게 입고 젊게 살고 나를 가꾸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 나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손님들이기에 자신을 가꾸는 일에 아직은 게으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귀찮다. 그럴 때마다 ‘아직은 이러면 안 돼’라고 자신을 재촉한다.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듯이 나는 오늘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다. 오늘 예뻐야 한다. 그래서 오늘 행복해져야 하고 그런 날들이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다고 했다. 우리 가게 오시는 손님들은 누구라도 매일 행복하기를 바란다.     



-달달 슈가-


#글쓰는옷가게사장님 #달달슈가  #옷가게슈가

#트렌드 #디테일 #스타일 #

작가의 이전글 그냥 아줌마로 나이 들어가기 싫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