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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슈가 May 29. 2020

맹귀우목(盲龜遇木)

사십대에 만난 귀한 인연들

11년 전 사십대 초반. 내 인생에 정말 소중한 시기인데 나를 돌보는 것은 뒷전이었다. 경제적인 위기와 함께 힘든 일은 동시에 닥쳤다. 친정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3개월 후에 시어머님의 갑작스런 죽음. 거듭된 충격으로 몸에 탈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다. 몸과 정신이 함께 무너지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마음이 불행해지니 아이들도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스스로 견뎌내기 위해 처방을 내린 것이 독서였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바뀌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道) 닦듯이 법정스님의 책을 읽었다. 23살에 처음으로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었는데 그 때는 법정스님의 존재를 지금만큼 모르고 책을 샀다. 사십 대에 법정스님을 다시 만나듯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다스렸다. 마음은 한결 차분해졌으며 내 방식대로 지혜롭게 이겨내고 있었다. 지금은 내용도 자세히 생각나지 않지만, 그때는 스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내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읽었던 <맑고 향기롭게> 다시 읽고 싶은 부분은 밑줄을 긋고 기억에 남기고 싶은 문장은 다이어리에 옮겨 적기도 하면서 읽었다. 책 속에는 ‘마이클케냐’의 고요하고 잔잔한 사진이 같이 실려 있어서 느린 걸음으로 산책길 걷듯이 읽었다. 두 번 째 읽은 책이 <말과 침묵>, 그리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을 읽었는데 마지막에 스님이 정리해 놓은 글을 블로그에 기록해놓고 가끔 읽는다.    

  

“우리는 무엇을 먼저 깨닫고 무엇을 이웃과 함께 나눌 것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자기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그 깨달음에서 나온 지혜와 자비의 말씀을 나누라는 뜻이다. 이 말을 바꾸어 하면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 우리들 일상의 삶에 용해될 때 깨달음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깨달음이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 모습을 되찾는 일이다. 지혜와 자비에서 벗어난 행위는 자신의 모습과는 10만8천리다. 경전을 읽으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거듭 새롭게 태어나야한다. 그래야 비로소 독경의 공덕을 입게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던 일들을 누군가 탓을 하고 원망하던 마음을 나 자신에게로 돌렸으며 다 지나갈 것이라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스님의 책을 읽었던 40대 초반. 내 생각이지만, 나는 이미 어른이었지만 진짜 어른스러워지고 있었다.

‘그게 뭐라고’ 정말 힘들고 큰일을 당하다 보면 일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 모든 것이 풀리지 않는 엉킨 실타래 같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엉킨 것들도 풀려 나가고 있었다. 열심히 책에서 만났던 ‘법정스님’은 2010년 3월 11일 타계하셨고 큰 별이 졌다고 했다. 올해가 법정스님이 가신지 10주기가 되는 해이다. 스님은 가셨지만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했던 스님의 말씀이 담긴 책이 내 손에 있다는 것은 마음이 따뜻해지고 무언가를 잃지 않았다는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2011년 봄. 오직 나를 위해 DSLR 카메라를 샀다. 내 또래의 주부들이 비슷하듯이 나 역시 직장과 집밖에 몰랐으며 혼자 집에서 다육식물들을 사진 찍고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블로그를 하면서 위로를 삼았다. 블로그이웃들은 대부분 다육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거나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이었는데 다육이 사진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내가 올린 사진과는 달리 고급스러운 사진이었다. 이런 사진들은 크고 비싼 카메라로 찍은 것이었다. 지금이야 휴대폰 카메라도 화질이 좋고 기능도 다양하지만 그 때는 비싼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확실히 달랐다. DSLR카메라를 사고 싶었다. 결혼 후 계속 일을 해 오면서 나를 위해 근사한 선물 하나 해주지 않은 것 같아서 과감하게 구매했다. 홈쇼핑에서 무이자 12개월 할부라는 좋은 조건으로 비싼 카메라를 샀지만  카메라의 기능도 잘 몰라서 자동모드만 사용했다. 다육이만 찍다보니 더 잘 찍고 싶었으며 집안이 아닌 밖에 나가서 찍고 싶어졌다. 그 해 가을부터 평생교육원에 사진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나 자신만을 위해 집과 직장이 아닌 곳을 찾아갔던 것이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랐기에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법정스님의 책 중 4번째 읽은책.  이 책은 현대문명속의 소음을 잠시 멈추고 침묵 속에서 자신을 소생시킬수 있는 기회를 주고있다.

친구에게 지나는 말로 사진을 배우고 싶어서 카메라부터 샀다고 했더니 창원 문성대학교 평생교육원에 ‘김 창섭 교수님’수업을 소개해 주었다. 정작 본인은 수업을 듣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서 들었는데 그 교수님 강의가 괜찮다고 했다. 이미 수강신청이 끝난 상태였지만 낯선 강의실 문을 두드렸고 교수님은 흔쾌히 수업을 듣도록 허락을 해주셨다. 그때부터 교수님의 수업에 빠지기 시작했는데 그동안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듯이 강의가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 듣는 수업은 기다리게 되는 날이었다. 교수님이 준비해온 수업내용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으며 퇴근 후의 피곤함도 잊은 채 듣게 되었다. 그런 공부를 한다는 것이 정말 행복한 일상이었다. 집안일과 직장생활에 찌들어있었으며 늘 불안해하고 마음을 잡지 못하던 나에게 교수님의 수업 내용은 ‘사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마음을 치유 받는 것 같았다. ‘미술심리치료’가 있는 것처럼 그 때의 사진공부는 나에게 가장 큰 치유이며 위로가 되었다. 이듬해 6월 교수님께 ‘산 빛 이야기’라는 책 선물을 받았다. 교수님은 제자들에게 책 선물을 종종 하셨는데 아마 나에게 이 책을 선물 해준 것은 기억도 못하고 계실 것이다. '정목스님'이라는 비구니스님쓰신 책이다. 법정스님의 책과는 또 다른 참 섬세하고 조곤조곤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반부쯤에 맹귀우목(盲龜遇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때 나의 상황과 딱 맞는 이 글귀를 만난 것이 정말로 맹귀우목(盲龜遇木)과 같은 순간이었다.


정목스님의 <산 빛 이야기> 속에 맹귀우목(盲龜遇木)이라는 글은

‘바다에 사는 눈먼 거북이가 물속을 헤엄쳐 다니다가 백 년 만에 수면위로 올라와 숨을 한번 크게 쉬는데, 이때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나기만큼이나 힘든 게 좋은 인연 만나기라고 한다.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널빤지를 만나기도 힘들지만 눈먼 거북이가 그 구멍 사이로 목을 걸치기는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184p 이런 내용의 글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진이라는 것을 배우려고 어딘가로 나서고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던 그때 나는 망망대해에 있던 눈먼 거북이이고 사진공부는 구멍 난 널빤지였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돌파구가 되어주었던 멘토 같았던 ‘김 창섭 교수님’의 사진 수업.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서는 잘 다니지도 못했던 내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2013년 5월에는 첫 전시회도 하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글을 잘 쓴다면서 전시 자들을 대표해서 ‘전시회서문’을 쓰라고 하셨다. 처음으로 내가 쓴 글이 많은 사람들 앞에 걸렸다. 그 때는 전시하는 내 사진들보다 내가 쓴 ‘서문’에 더 설레고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 만난 두 인연. 인문학으로 사진수업을 해 주셨던 멘토 같았던 김 창섭 교수님과 내 인생에 가장 큰 기회이자 터닝 포인트를 주었던 순미. 순미는 내가 옷가게 사장님이 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으며 나의 롤 모델이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어주며, 맹귀우목(盲龜遇木)처럼 눈먼 거북이 같은 누군가에게 그 널빤지 속 구멍 같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멘토가 되어주는 인연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안다. 가장 힘들었던 40대에 책으로 만났던 멘토 법정스님은 가셨지만 내 주변에 가까이에 살아있는 멘토들이 있었다.      

내가 가진 유한한 것들보다 무한한 사람들, 내게 남은 사람들, 때로는 맹귀우목(盲龜遇木)과 같은 인연들. 그리고 지금도 나에게 좋은 역할이 되어주는 인연들이 언제나 소중한 재산이기도 하다. 나에게 기회를 주었고 흔쾌히 멘토 역할을 해준 살아있는 ‘법정스님’ 같은 사람들이다.    


-달달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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