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달슈가 Jun 08. 2020

돈은 언제 모으냐?

'그래도 선(善)한 끝은 있더라.'

지난해 늦가을. 가끔 오시던 손님이 그날은 나이 드신 엄마를 모시고 우리 가게를 오셨다. 늦가을의 쌀쌀한 기운에 엄마의 옷차림이 허술해서 추워 보였다. 친정엄마라고 했는데 첫 이미지를 설명하자면 마른 체형에 머리는 은색이며 피부는 희고 고왔다. 제법 연세는 드셔 보였지만 마른 체형에 허리를 곧게 세우고 가는 목에 힘을 주어서 뒷모습만 본다면 우리가 흔히 보는 노인의 체형으로 보이지 않았다. 금테 안경을 쓴 모습은 지적인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냥 흔한 할머니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멋쟁이라는 말이다.  

    

"엄마, 바지하고 위에 입을 따뜻한 티 하나 골라봐라."     


"그냥 이렇게 입고 가면 된다니깐."    

  

"내일은 더 춥다는 데 옷을 이래 얇게 입고 와가지고.."     


서울에 사시는데 이곳 김해 따님 집에 다니러 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은 부산에 이모님을 만나러 가셔야 되는데 엄마가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오신 것이다. 그전까지 꽤 포근했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뒷날은 때 이른 겨울 추위가 온다고 뉴스에서도 떠들어대고 있던 때였다. 더군다나 서울에서 부산까지 엄마의 자매인 이모를 오랜만에 만나러 가시는데 옷차림이 허술한 것은 자식 입장에서도 자존심이 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날씨가 추운데 얇은 옷차림으로 노인네가 떨고 다니는 것은 더더욱 속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녀는 우리 가게를 방문하셨다.     


라쿤이 달린 울 소재의 벙거지 모자. 깊이 푹 눌러쓸 수 있어서 보온성이 좋다.

엄마는 이런 젊은 사람들 옷을 파는 가게에 들어와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여자는 할머니가 되어도 여자라고 했듯이 어머님은 안경 너머로 커다란 눈을 굴리면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둘러보시면서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어머님에게 한눈에 들어온 물건은 라쿤이 달린 울 소재의 모자였다. 옷보다 모자에 더 관심을 보이며 집어 들더니 머리에 쓰셨다.   

  

"이거 딱 내 스타일인데. 나한테 너무 잘 어울리지 않니?"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어쩜 이렇게 모자가 잘 어울리세요?"    


"제가 원래 모자가 잘 어울려요."     


웃으시면서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어머님은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응 잘 어울리네. 딱 엄마가 좋아할 모자네."   


따님은 이렇게 말하고 엄마의 바지부터 고르자고 했다.

마른 체형의 엄마는 바지가 헐렁해서 더 말라 보였다. 마침 베이지색의 캐시미어 바지가 도톰한 것이 있었는데 하얀 피부의 어머님을 더 돋보이게 했으며 잘 어울렸다. 하지만 가격대가 좀 비싼 바지였다. 어머님은 모자가 마음에 쏙 든다며 계속 벗지 않으셨고 이 모자는 꼭 사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머님의 안목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게 바지를 갈아입으시고 모자를 쓰니 한결 따뜻해 보였다. 그냥 있어 보이는 느낌. 나도 할머니가 된다면 이렇게 나이 들고 싶은 모습이었다. 어머님 연세에 입을 만한 옷이 마땅히 없을 것 같은 우리 가게에서 그나마 고를 수 있었던 바지가 캐시미어 소재라서 따님에게는 부담스러운 듯 보였다. 반면에 한결 럭셔리해진 어머님은 거울 속 본인의 모습에 만족해하시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면서 여전히 모처럼 들어온 젊은 사람들의 공간에서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 가게에 들어온 것 같은 표정으로 매장을 둘러보셨다. 어머님은 벽에 걸려있는 또 어딘가를 흘끔흘끔 보셨다. 딱 나의 레이더망에 걸렸다. 그것은 스카프였다. 어머님의 눈길이 여러 번 머물렀고 만지작거리기도 했는데 따님은 눈치를 못 채는 것 같았다. 어머님이 하고 계셨던 스카프는 사이즈가 작은 가을 스카프로 찬바람에는 큰 보온성이 없어 보이는 스카프였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갈아입은 옷과 모자와 균형이 맞지 않아서 어울리지 않았다. 다른 손님이었으면 스카프도 같이 권했을 텐데 따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나이 드신 엄마를 모시고 오는 손님에게는 약하다. 물론 예외는 언제나 있지만 대부분은 양보를 많이 하는 편이다. 큰 고민 없이 가격을 많이 할인해주었다. 그것은 계산하는 딸과 나 사이에서 어머님이 미안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산을 다 끝내고 스카프를 내려서 어머님 목에 둘러드렸다.   

   

"어머님 이거는 선물로 드릴게요. 내일은 더 춥다는 데 이모님 만나러 가실 때 예쁘게 하고 가세요. 아까부터 이거 보는 거 봤어요. 새로 산 옷이랑 잘 어울리는 스카프라서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 이거 하고 싶었어? 나도 몰랐는데 사장님이 나보다 낫네."

    

"제가 그냥 드리려고 일부러 따님께 말씀 안 드렸어요."

     

"어머나 세상에 고마워요. 내가 이거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아시고.."

    

어머님은 내 손을 잡고 말끝을 흐리면서 눈물이 고였다. 따님 역시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눈이 촉촉해졌다.  


내 마음은 나도 모른다. 따님은 오랜 단골도 아니었으며 손님의 어머님은 그 날 처음 뵙는 분이었다. 친정엄마도 시어머님도 안 계신 나는 엄마가 살아계신다면 철마다 예쁜 옷을 입혀드리고 모자며 스카프며 뭐든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마음에 피부가 희고 고운 손님의 어머님은 꼭 우리 엄마가 나이 들었다면 저 모습일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추위에 약했던 엄마도 겨울이면 늘 모자를 쓰던 생각이 났다. 나는 엄마와 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엄마와 함께 쇼핑을 오는 손님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보기 좋은 모습이다.

시어머님 살아계실 때 나보고 자주 하셨던 말씀. 늘 잘 퍼준다고.. '언제 돈 모으겠냐' 고 하시던 말씀.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늘 '그래도 선(善)한 끝은 있더라.'라고 하셨는데 그 끝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아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간혹 그 선(善)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경계를 하기도 했다.


한 번 보고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손님의 어머님이다. 그냥 내 마음 따뜻하자고 마음을 선뜻 전해드렸다. 매상. 이윤. 그런 계산은 하지 않았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도 아니었다. 살다 보면 계산 없이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내가 풍족하게 살고 부자인 것도 아니다. 손님이 나보다 더 부자일 수도 있고 손님의 어머님이 나보다 훨씬 부자일지도 모른다. 어머님의 마음을 읽고 따님에게 스카프도 사드리라고 했다면 따님은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진심과 상관없이 두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서 이윤을 남긴 영락없는 속물 장사꾼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달달슈가 #글쓰는옷가게사장님 #친정엄마

#엄마 #예쁜옷가게




작가의 이전글 맹귀우목(盲龜遇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