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이 부러지다니
‘에잇 한 달인데 설마 안경이 부러지겠어?’
여행가방을 챙길 때 한 달 안에 안경을 잃어버리거나 안경이 부러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여분 안경을 넣었다 꺼냈다 한참을 망설이다 거실에 그대로 두고 왔다.
여행 중에는 항상 생각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길고 삶이라고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한 달이지만,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 나의 바람이 이루어진 걸까!
시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안경을 착용하는데 세부에 온 지 겨우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침대 위에 안경을 놓아둔 걸 잊은 채 그대로 그 위에 누웠다.
부러진 안경다리를 붙잡고 되는대로 배달 음식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떼어 일단 붙여봤다. 잠깐이란 시간 동안 안경은 힘없이 간신히 붙어있긴 했는데 얼마지
않아 비틀어지는 안경을 심폐소생술로 고치기는
이미 글렀다.
해결방법
1. 현지에서 안경을 맞춘다.
2. 한국에 있는 여분 안경을 필리핀으로 보낸다.
필리핀에서 안경을 맞춘 후기를 검색하니 시력측정부터 안경의 기술은 우리나라를 더 믿을 수 있다는
글이 많아서, 해결방법 2번으로 집에 있는 남편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우체국 EMS 서비스를 통해서 국제항공운송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남편이 5만 원 비용을 주고 보내주었다. 안경 없이 흐린 세상으로 일주일째..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안경은 오지 않는다.. 하.. 이제 눈이 보이지도 않아!
3일이 더 지나서 우편함을 뒤적하던 나는 무언가 한 장의 종이를 발견했다. 택배가 왔으니 우체국에 와서 찾아가고 30일 안에 오지 않으면 물건은 더 이상 보관하지 않겠다는 종이였다. 이건 또,, 당연히 집 앞에 배달해 주는 서비스만 생각했는데, 한국이 아니라는 걸 잊고 있었다. 두 번째 타격을 받고, 우체국을 검색해 봤는데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가서 또 받아올 생각을 하니 세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햇병아리에게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길로 나는 SM mall로 가서 부러진 안경과 같은 시력으로 맞춰달라고 했다. 휴.. 진작 그냥 맞출걸…
에어앤비 숙소 인터넷이 잘 안 되어서 집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녀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난 그녀를 붙잡고 안경은 어디서 맞췄고, 얼마인지
물어봤다. 자외선과 블루라이트 차단 되는 특수렌즈는 7000페소 (한화로 약 17만 원)라고 해서 우리나라보다 비싼 렌즈에 덥석 새로 맞추기 어려운 이유였다.
우체국 이용 비용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필리핀에서 새로 하면 될 것을.. 필리핀이 후진국이라는 생각은
모든 것이 우리나라가 더 좋을 거라고 느껴지며 선뜻 무언가를 이용하기가 꺼려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 알지 못해서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두려움이 그
정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