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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롱올립 Jan 22. 2020

<손때 묻은 나의 부엌>, 히라마쓰 요코

  갓 빨아 말린 리넨의 주름을 좋아한다. 면 주름은 펴 주고 싶지만, 리넨 주름은 그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더 움츠려 보라고, 더 쭈글쭈글 주름지어 보라고 속삭이고 싶어진다. 천이 호흡하면, 그 호흡을 격려하고 싶다. (중략) 나는 리넨의 숨소리를 곁에 두고 듣고 싶어서 여름이고 겨울이고 일년 내내 테이블 위에 내어 놓는다. (중략) 식탁보뿐만 아니라 행주도 리넨으로 된 것을 선택한다. 공기를 가득 머금고 부풀어 오른 강인한 리넨 섬유는 접시 위의 물방울을 순식간에 닦아 준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수분을 닦아 없앤다. 그리고 꼭 이야기하고 싶은 장점이 또 있다. 쓰기 편한 리넨을 더욱 자주 쓰게끔 해주는 장점은 바로 섬유가 잘 풀리지 않고 접시에 보풀이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텐더가 유리잔을 닦을 때 반드시 리넨 행주를 쓰는 이유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마시려고 따라 두었던 찻잔을 엎질렀다. 앗! 하는 동시에 마침 옆에 있던 면 행주로 식탁 위 엎질러진 찻물을 잡아 눌렀다. 집에서 나는 1인용 사이즈의 작은 핸디 타월을 행주삼아 쓰는데, 오늘 닦은 면 행주가 훨씬 행주로서의 기능에 적합한 것 같다. 물이 흉건하게 뭉치지 않고 섬유가 물을 고루 빨아들이면서도 손에 지저분한 물기를 남기지 않아서 좋았다. 리넨행주라면 이 보다 더 좋았겠지? 한국에 돌아가면 꼭 리넨행주를 사용해 볼 요량이다. 참, 위 글을 발췌한 원문의 소제목은 <이런 나, 안되나요>이다. 얼마나 리넨을 좋아하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글 제목을 지을 수 있을까? ‘이런 나 안되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안됩니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과연 누가 있단 말인가. 십중팔구 ‘암, 되고 말고요. 됩니다.’라는 답이 돌아올 것을 저자는 이미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악하고 귀여운 사람이다.


  와, 은행나무 도마를 직접 사용해 보니 정말 놀라웠다. 참으로 훌륭했다. 그가 한 말대로 나무 표면이 지방질을 듬뿍 머금고 있어서 점벙점벙 씻어도 물기가 매우 잘 말랐다. 편백나무였다면 생경하게 받아들였을 부엌칼의 힘을 은행나무는 부드럽게 연착륙시켰다. 그리고 편백나무의 남자다움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순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교정에서 녹색 잎사귀를 바람에 펄럭이며 서 있던 그리운 거목들 모두 은행나무였다. 친구들과 다투고 바로 집에 가기 싫어서 아무도 없는 교정 구석, 은행나무 아래 철봉에 혼자 매달려서 서러워 울기도 했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운동회 높이뛰기 선수로 뽑혀서 억지로 등번호를 달아야 했고, 내 차례가 올 때까지 은행나무 그늘에 숨어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남자 아이와 처음 같은 방향으로 집에 가게 됐을 때, 그 요란했던 가슴떨림도 은행나무는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아, 그랬었네. 꽤 오랫동안 은행나무와 친하게 지내 왔어.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은행나무 도마를 꺼내 부지런히 무와 나물을 서벅서벅 썬다. 유부를 잘게 썬다.


  내가 아는 사람중에 취미로 도마를 만드는 분이 있다. 이름도 다양한 각종 나무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작업실 한쪽에 수북하게 쌓아 두고서는 틈 날때마다 하나씩 골라 도마를 만든다. 물고기 모양, 고래 모양, 끝이 매끈하게 둥근 직사각형 모양, 나무의 갈라진 형태를 그대로 살린 자연그대로의 모양 등 크기도 굵기도 제각각이다. 한 개의 도마를 완성한 날이면 그는 완성품을 소중하게 가방에 품었다가 퇴근 후 마중나오는 아내에게 사랑의 서프라이즈 선물로 준다. 그런데 그는 볼멘소리로 투정하듯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와이프는 집에 도마가 하도 많아서 이제는 별 감흥이 없나봐. 이 좋은 도마를 가져다 줘도 이제는 눈길 한 번 쓱 하고는 끝이야.” 보드라운 살같처럼 기분 좋은 피톤치드 향과 은은한 광택이 맴도는 반질반질 사포질, 뭉친데 하나 없이 세심하게 발린 오일코팅을 보면, 그런 멋진 도마를 매일같이 선물받는 그의 아내가 정말 부러워진다. 남편에게 그 얘기를 해줬더니 도마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며 또 기약없는 하나의 약속을 호기롭게 한다. “나무를 자르는 기계가 비싸서 그렇지, 일단 순서만 알고 나면 만드는 것은 어린 아이도 할 수 있을껄?” 패기만큼은 타고난 사람이다.


  중국 음식점 주방에서는 대나무 찜통을 담당하는 사람의 서열이 두 번째로 높다. 내부를 고온으로 일정하게 유지해 찌는 조리법이라서 절대 중간에 뚜껑을 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요리를 하면서 상황을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숙련된 기술과 직감이 승패를 좌우한다. (중략) 너무 찌면 끝이다. 생선살이 뒤집어지고 은은한 단맛도 날아가 버려서 푸석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탁에 올리기 직전까지 가열해야 하고, 프로는 그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 불에서 내리는 대담한 기술까지 구사한다. “그럼요, 시간을 정확히 가늠하는 게 최대의 요령입니다.” 중식 전문 요리연구가 다카시로 준코 씨 역시 그렇게 말했다. 뚜껑은 한번만 열어야 해요. 여러 번 열었다 닫으면 습도가 내려가서 요리 맛이 점점 떨어지거든요. 그리고 찜통 밑에 있는 뜨거운 물이 마르지 않도록 유지해 줘야 하고요.


  남편은 요리를 사랑한다.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은 퇴근 후 나를 데리고 집 주변의 마트를 돌며 식재료의 값과 상태를 확인하고, 그걸로 만들수 있는 일주일의 식단을 고민하고 계획하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부부는 식자재를 최대한 낭비하지 않기 위해 늘 합리적으로 장을 보려고 노력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그는 돈을 아끼는 문제를 떠나서 장보기와 요리를 그 자체로 즐기는 사람이었다. 마트를 둘러 볼 때 맹렬히 반짝이는 눈동자와 누구 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입, 손, 발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지금 이 장보기를 즐기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내가 받은 말할 수 없이 감사한 생활의 혜택들이 있지만, 그를 보고 있노라면 덩달아 나도 요리라는 것에 흥미가 생기는 것 같아서 요즘은 그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고 배우며 어설픈 요리를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 그렇게 성취감이 클 수가 없다.


  주방의 패권을 누가 장악하느냐는 식의 눈치 싸움으로 적성에도 없는 요리를 억지로 해보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먹고 사는 것에 인간이 정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는 것을 남편을 통해 알아간다. ‘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즐겁게 요리하는 사람의 모습은 이런 거구나’하고 감동을 받는다. 음식은 과학적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조금씩 깨닫는다. 옛 말에 ‘우리 엄마 손 맛’이라는 절대 수치화 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도 있지만, 정말 맛있는 추억속의 그 요리들도 실은 한 사람이 몸으로 터득한 매우 정교하고 과학적이며 탄탄한 요리의 방법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늘에서 어느 날 뚝딱, 요리천재를 우리들의 엄마로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요리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남편의 말을 신뢰하고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익은 김치를 사기엔 너무 아깝다. 배추김치 맛을 알면 알수록 더욱 그렇다. 지금 막 양념에 무친 배추는 익지는 않았어도 그만큼 배추의 아삭한 단맛을 맛볼 수 있다. 부엌에 들어가 ‘오늘은 김치 잘 담가졌나’ 하며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간을 보는 어머니만 먹을 수 있는 맛이기도 하다. 담근 지 사흘 혹은 나흘 된 김치는 생김치 그대로 먹는다. 그러다가 일주일 정도 지나서 신맛이 늘어날 무렵이 되면 새로운 즐거움이 시작된다. 돼지고기랑 같이 볶는다. 김치볶음밥을 한다. 된장국에 넣어 칼칼한 매운 맛을 즐긴다. 깊은 맛을 갖추기 시작한 배추김치는 볶거나 끓이는 등 열을 가하면 놀라울 정도의 감칠맛을 발휘한다. (중략) 중국 옛 시조 중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절물풍광불상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것이 자연이라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라는 움직이지 않는 순간도 있다는 뜻이다. 만물의 은혜에는 바로 ‘지금’이라는 결실의 시기가 있고, 우리는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작게 썬 다음 한 조각 아삭 씹어 본다. 오늘, 바로 지금이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맛이다. 이 순간에만 먹을 수 있는 오늘의 김치, 나는 혀 위에 온 신경을 펼쳐 놓고, ‘음, 이 정도면 일주일 정도 지나서 찌개를 끓이면 맛있게다’며 입맛을 다신다.


  ‘오늘의 김치’라는 표현에 무릎을 탁! 치고 나도 모르게 설레어 책을 덮었다. 작가의 이 기발하고 깊은 통찰에 너무 놀라 잠깐 읽기를 멈추고 숨을 고른다. ‘오늘의 김치’라니...! 여기서 잠깐, 딴 길로 새어야겠다. 나는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보편적이고 지당한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을 좋아한다. 내가 주워 들은 어설픈 지식에 따르면 ‘양자역학’은 우리 삶의 기본 작동원리를 상당부분 설명해 준다. 심오한 이 학문의 세세한 내용 감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양자역학이 갖는 철학성이 좋다. 갑자기 내가 왜 과학얘기를 하냐면, ‘오늘의 김치’라는 개념은 양자역학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생명력 가득한 실체가 아닌가 해서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사물에 이름을 붙여 명명하고, 그것의 개념을 규정하고, 그 사물을 인식하여 부르는 것이 실은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현재’라고 지금 이 시간을 명명하는 순간에도 이미 그 시각은 시간의 뒤안길로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그저 이 알 수 없는 광대한 우주라는 직선 위를 달려 나가는 하나의 ‘점’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이 순간이면 안되는 ‘오늘의 김치’라는 것도 정말 있다. 갓 담갔을 때의 김치의 맛, 약간 시큼하게 맛이 벤 김치, 어제와는 또 다른 오늘의 아삭한 그 김치는 양자역학이라는 우주의 원리로 설명할 수 없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부엌에서 씨름하며 보내는 이 일상적이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요리’의 행위가 실은 엄청나게 멋지고 소중한 것이 아닌가! 요리는 흘러간 시간의 직선 위에서 특별한 ‘순간’의 맛을 딱 골라내어 잡아두는 것이었다. 오늘의 김치가 내일의 김치와 다르다는 이 평범한 사실을 나는 왜 몰랐을까!

  나는 요리를 싫어하지 않는다. 남편은 내가 실은 요리를 좋아할지도 모르니 이것 저것 재료를 사서 무엇이든 만들어 먹고 싶은 것을 시도해 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요리에 사뭇 진지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했다. “싫으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그런데 나는 네가 요리를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아. 잘 생각해봐. 네가 요리를 정말로 싫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 해보고 잘 몰라서 단지 겁이 나는 것인지 말이야.” 잘 생각해 보았다. 나는 요리에 재능이 없고, 내가 만든 음식들은 실제로 그다지 맛이 없으며, 같은 레시피대로 해도 나는 목표로 하는 그 맛을 내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나는 요리를 좋아하고 있었다. 아니지, 요리를 동경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남편을 통해 변화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자꾸만 남의 요리를 곁눈질하고 부러워한다. 나도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맛있는 한 끼 식사를 뚝딱 내어주는 멋진 요리사이고 싶었다. 읽을 책이 산더미같은데도 책장에서 이 책을 먼저 꺼내어 든 것만 보더라도, 나는 확실히 요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만은 굴뚝같은 사람이다.

  요리는 정성으로 하는 것이지 타고난 재능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 육수를 끓이는 데 반나절이 걸리고, 아직은 요리책에 밑줄을 긋고 필기를 하며 책으로 요리를 배우고, 설거지를 하는데도 남보다 곱절의 시간이 걸리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어야 하지 않나. 언젠가는 나도 이 고민과 망설임의 시간을 지나, 정성을 듬뿍 담은 한 그릇의 요리를 내어 놓고야 말 것이다. ‘아니야, 요리는 재능이란 말이지. 어차피 노력해도 똥 손은 똥 손일껄?’하고 누군가가 나의 의지를 꺾는 말을 한다해도, 나는 굴하지 않고 어깨를 들썩이며 장을 보러 갈 것이다. 식재료의 조리법을 외우고, 조리 도구의 올바른 사용법을 익히고, 불의 강도에 따른 적절한 타이밍에 적합한 재료를 투입하는 방법을 익힐 것이다. 그러다가 언젠가 나도 짜잔! 하고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의 멋지고 따뜻한 음식을 누군가에게 대접할 것이다. 나를 고스란히 닮은 나의 손때 뭍은 부엌도 언젠가 꼭 가지게 될 것이다.


  소원아, 이루어져라! 수리수리 마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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