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빨아 말린 리넨의 주름을 좋아한다. 면 주름은 펴 주고 싶지만, 리넨 주름은 그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더 움츠려 보라고, 더 쭈글쭈글 주름지어 보라고 속삭이고 싶어진다. 천이 호흡하면, 그 호흡을 격려하고 싶다. (중략) 나는 리넨의 숨소리를 곁에 두고 듣고 싶어서 여름이고 겨울이고 일년 내내 테이블 위에 내어 놓는다. (중략) 식탁보뿐만 아니라 행주도 리넨으로 된 것을 선택한다. 공기를 가득 머금고 부풀어 오른 강인한 리넨 섬유는 접시 위의 물방울을 순식간에 닦아 준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수분을 닦아 없앤다. 그리고 꼭 이야기하고 싶은 장점이 또 있다. 쓰기 편한 리넨을 더욱 자주 쓰게끔 해주는 장점은 바로 섬유가 잘 풀리지 않고 접시에 보풀이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텐더가 유리잔을 닦을 때 반드시 리넨 행주를 쓰는 이유다.
와, 은행나무 도마를 직접 사용해 보니 정말 놀라웠다. 참으로 훌륭했다. 그가 한 말대로 나무 표면이 지방질을 듬뿍 머금고 있어서 점벙점벙 씻어도 물기가 매우 잘 말랐다. 편백나무였다면 생경하게 받아들였을 부엌칼의 힘을 은행나무는 부드럽게 연착륙시켰다. 그리고 편백나무의 남자다움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순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교정에서 녹색 잎사귀를 바람에 펄럭이며 서 있던 그리운 거목들 모두 은행나무였다. 친구들과 다투고 바로 집에 가기 싫어서 아무도 없는 교정 구석, 은행나무 아래 철봉에 혼자 매달려서 서러워 울기도 했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운동회 높이뛰기 선수로 뽑혀서 억지로 등번호를 달아야 했고, 내 차례가 올 때까지 은행나무 그늘에 숨어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남자 아이와 처음 같은 방향으로 집에 가게 됐을 때, 그 요란했던 가슴떨림도 은행나무는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아, 그랬었네. 꽤 오랫동안 은행나무와 친하게 지내 왔어.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은행나무 도마를 꺼내 부지런히 무와 나물을 서벅서벅 썬다. 유부를 잘게 썬다.
중국 음식점 주방에서는 대나무 찜통을 담당하는 사람의 서열이 두 번째로 높다. 내부를 고온으로 일정하게 유지해 찌는 조리법이라서 절대 중간에 뚜껑을 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요리를 하면서 상황을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만큼 숙련된 기술과 직감이 승패를 좌우한다. (중략) 너무 찌면 끝이다. 생선살이 뒤집어지고 은은한 단맛도 날아가 버려서 푸석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탁에 올리기 직전까지 가열해야 하고, 프로는 그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 불에서 내리는 대담한 기술까지 구사한다. “그럼요, 시간을 정확히 가늠하는 게 최대의 요령입니다.” 중식 전문 요리연구가 다카시로 준코 씨 역시 그렇게 말했다. 뚜껑은 한번만 열어야 해요. 여러 번 열었다 닫으면 습도가 내려가서 요리 맛이 점점 떨어지거든요. 그리고 찜통 밑에 있는 뜨거운 물이 마르지 않도록 유지해 줘야 하고요.
익은 김치를 사기엔 너무 아깝다. 배추김치 맛을 알면 알수록 더욱 그렇다. 지금 막 양념에 무친 배추는 익지는 않았어도 그만큼 배추의 아삭한 단맛을 맛볼 수 있다. 부엌에 들어가 ‘오늘은 김치 잘 담가졌나’ 하며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간을 보는 어머니만 먹을 수 있는 맛이기도 하다. 담근 지 사흘 혹은 나흘 된 김치는 생김치 그대로 먹는다. 그러다가 일주일 정도 지나서 신맛이 늘어날 무렵이 되면 새로운 즐거움이 시작된다. 돼지고기랑 같이 볶는다. 김치볶음밥을 한다. 된장국에 넣어 칼칼한 매운 맛을 즐긴다. 깊은 맛을 갖추기 시작한 배추김치는 볶거나 끓이는 등 열을 가하면 놀라울 정도의 감칠맛을 발휘한다. (중략) 중국 옛 시조 중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절물풍광불상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것이 자연이라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라는 움직이지 않는 순간도 있다는 뜻이다. 만물의 은혜에는 바로 ‘지금’이라는 결실의 시기가 있고, 우리는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작게 썬 다음 한 조각 아삭 씹어 본다. 오늘, 바로 지금이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맛이다. 이 순간에만 먹을 수 있는 오늘의 김치, 나는 혀 위에 온 신경을 펼쳐 놓고, ‘음, 이 정도면 일주일 정도 지나서 찌개를 끓이면 맛있게다’며 입맛을 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