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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롱올립 Jun 06. 2024

마더후드와 파더후드의 일터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온지 6개월 남짓 되었다. 네 살, 다섯 살 연년생 아들 두 녀석의 육아에 매진하다보니 하루가 가고 한달이 가고 상기해보니 벌써 시간이 꽤 흘렀다. 떠나와 보니 더욱 분명해 지는 사실 하나, 세상살이 다 똑같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상경하여 이 동네는 뭔가 더 세련되고 낭만이 흐를 줄 알았더랬지만 나띵 쏘 스페셜. 잔잔한 일상에 육아라는 작은 파도가 치고, 누군가는 노동을 하고, 저녁에 무얼 먹을지 고민하며 장을 보는 행위는 어디에서나 그대로였다. 저녁이면 피곤해 지쳐 귀가한 남편의 발을 주물러 주었고,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집안일에는 소질이 없다. 우리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지만 내게 시간을 내어 음식 맛 내는 법을 알려준 적이 없으셨다. 시력이 좋지 않은 탓에 분명 청소기로 한 번 밀고 지나간 자리에 어김없이 머리카락이 남아있다. 화장실은 아무리 청소를 해도 물건들이 제 자리로 들어가지 못하고 물만 흉건하다. 내가 끓인 김치찌개는 맑다 못해 투명한 김치국물정도였고, 책육아한답시고 방치한 동화책은 정돈되지 않은 집안을 더 꼴사납게 보이게 했다. 핑계가 많은데 심플하게 나는 집안일을 못한다. 이제 결혼생활한지 4년이 지났는데도 이 지경이라면 고집부리지 말고 인정해야 하는 거다.


  이사 온 후 남편의 불만이 늘었다. 이제는 양가 부모님의 가사 도움과 육아전담을 받지 못하게 되니 내 1인의 역할이 크게 두드러졌다. 말은 하지 않지만 내게 품은 불만이 상당한 듯 했다. 저 남자가 저리 삐뚤어진 데에는 세시간 이상 걸리는 출퇴근 거리와 업무 강도, 부족한 수입, 그리고 결정적으로 손이 야무지지 못한 육아휴직자의 태만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태만한 육아휴직자는 바로 나다. 육아란 당연히 쉽지 않아서 육아의 고단함을 핑계로 나의 태만을 감추지는 않겠다. 내 일상은 나른하고, 목표없이 공중으로 부유하고, 덩달아 중심을 잡지 못한 마음은 몸을 지배했다. 부끄러운 군살과 스마트폰 중독, 책 한 줄 읽지 않은 탓에 때가 낀 것처럼 뿌연 전두엽, 육아라는 좋은 핑계, 육퇴 후 넘기는 시원한 맥주의 감각 그리고 다시 반복 반복 반복. 이것이 나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잠이 부족해 아침밥을 포기한 새벽출근과 넥타이 삐뚫어진 열정퇴근으로 점점 망가져 가는 남편의 상황은 심각하다. 제일 시급한 문제는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운동으로 몸을 돌보는 것도 독서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것도 남편은 사치라고 했다. 자신은 지금 당장 잠이 고프고 쉼이 필요하고 처자식과 잘 살고픈 욕심으로 머리가 너무 복잡하단다. 남편은 어디에서든 눈을 감고 그 즉시 코를 곯았다. 그는 잠자리가 무척 예민해서 잠은 무조건 침대 위에서, 애착이불과 함께, 옆사람은 뒤척이지 말 것, 휴대폰 불빛도 조심할 것 등의 주의사항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랬던 남편은 꿈과 희망이 가득찬 어린이도서관에서도, 경찰 특공대가 쉴새없이 출동명령을 내리는 키즈카페에서도, 한 낮의 까끌거리는 햇살아래 공원벤치에서도 쿨쿨거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이건 분명한 위험신호였다. 남자의 자존심때문인지 뭔지 영양제는 입에도 안대던 그가 매일 새벽 칼같이 지키는 출근 루틴은 간에 좋은 보양제 한첩을 들이키는 것이 되었다.


   나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들어 주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했다. 그의 노동을 대신 해 줄 수 없고 창창한 미래의 가시적인 청사진도 떠오르질 않았다. 지금은 그저 견디는 수밖에 우리가 지루하고 고단한 이 젊은날의  시절을 통과할 수 있는 묘수는 없다는 걸 남편도 나도 잘 안다. 그도 이제 40줄의 동앗줄을 잡고 커리어와 건강, 백세시대의 경제적 기반을 다져놓기 위한 치열한 경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나 또한 조약돌같은 아들 두 녀석과 지루하고 정신없고 도무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행복한 난장판 육아의 소용돌이를 해집는 중이다. 박가네의 오늘은 아이를 건강하게 기르고, 열심히 돈을 벌고, 살림을 손에 익히고, 다가올 커리어 갱신을 위해 뭔지모를 노력을 기울이며 어쨌거나 어쨌거나 바쁘고 정신없고 열심히 살았던 날들로 기억이 되리라.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고 한다.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행위, 결코 가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꿈의 지평선을 넘고 또 넘고 또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느날은 육아가 쉬웠다가, 어느날은 글쓰기가 술술 풀렸다가, 어느날은 남편이 회사에서 특급 칭찬을 받고 돌아왔다던가 하는 성취를 맛보는 과정말이다. 박가네 아들들은 갓난아기 손빨던 시절을 지나 어느덧 보조바퀴를 달고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만큼 컸고, 박씨 남편은 물론 배가 좀 나왔지만 일의 성취감과 확장하는 사회적 자아의 기쁨을 누리고 있으며, 나는 육아든 집안일이든 커리어 개발이든 무엇하나에도 열정만큼은 용광로처럼 불타오르는 사람이니 우리집은 이만하면 제법 안전한 항해중이라고 믿는다. 성장을 하고 성취를 이루고 일의 기쁨을 맛보면서 우리의 일터가 붉은 노을처럼 익어 가리라. 눈부시게 빛나는 우리의 인생을 위해서 조용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 브라보, 브라비, 브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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