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하원하는 오후 세시가 가까워 오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집에서 애만 보는 아줌마가 출근할 때나 입을 법한 하얀 블라우스에 다림질 빳빳한 슬렉스, 비비크림도 조금, 머리도 괜히 한 번 빗질을 하며 비장한 결심을 했다. '내 오늘은 기필코 엄마들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봐야지.' 그 결심은 곧 뒤따른 몇 가지의 망설임때문에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초면에 인사말 몇 차례 건네고 연락처를 물어봐도 되나? 이상한 여자다 생각하려나? 전화번호는 교환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물어보고 받아적는 것이 아니잖아. 그 여자도 날 궁금해 하려나? 무슨 말로 운을 떼야 하지? '안녕하세요, 누구누구 엄마시죠? 저 땡땡이 엄마예요. 우리애가 땡땡이를 참 좋아해요.' 아 너무 어색하다. 어색함은 표면으로 반드시 드러난다. 그럼 이건 어떤가. '꿈동산어린이집 햇님반이죠? 오며 가며 얼굴 뵈었어요. 전 땡떙이 엄마예요!' 좀 나은거 같은데 문제가 하나 있다. 오며 가며 얼굴을 봤으면서 입학한지 6개월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인사를 건네기에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 무도회에 데뷔하는 어느 양반집 딸래미도 아니고, 출사표 던지는 정치인도 아니면서 인사말 하나에 이리 신경을 쓰는 꼴이 우습다.
짐작하셨으려나, 나는 사회관계기술이 미숙한 편이다. 혼자 지내는 편을 선호하고 소수의 사람들과 어울린다. 이제껏 내 삶의 중요한 관계들은 한번도 나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어떤 기회가 닿아 서로에 대해 자연스레 궁금해지고 말이 통하고 뜻이 닿아 자주, 평생을 두고 보아도 좋을 사이가 되었다. 까다로운 기준으로 누군가를 선별해서 사귀는 게 아니라, 내 부족한 사회성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품어 줄 인품좋은 사람을 몇 명 만났기 때문이다. 희노애락을 함께할 가족, 친구 두어명, 마음의 결이 비슷한 동료 몇 명으로 간략히 추려지는 좁디 좁은 인간관계지만 충분히, 충분했다. 나는 그런 내 자신을 존중하는 편이고 그래서 많이 외롭지 않았다. 좋은 인간관계는 노력으로 지속할 수 없는 몇 스푼의 끌림이 있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개똥철학도 있다. 어떤 사람이 좋다, 나쁘다, 나와 맞다, 맞지 않다고 섣불리 판다는게 매우 염세적이고 건방지고,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머리로는 안 된다고 외쳐도 마음이 편한 쪽으로 자꾸만 살아가게 된다.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단지 신축 아파트, 이 물리적 속성이 내 육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생에 처음으로 내 집을 분양받아 산 아파트, 첫 집이 갖는 의미는 모두에게 특별했고 그 특별함은 아파트 입주민들을 고양시켰다. 깨끗하게 잘 정비된 부대시설, 그 새로운 터전으로 각양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주말부부의 삶을 청산하고 이곳 수도권으로 이사했고, 어떤 이는 산 너머, 도로 건너편, 옆 동네, 먼 도시에서 새로 이사를 왔다. 모두가 서로에게 첫 이웃이고 새로운 만남이었다. 아파트 단지는 입주시즌부터 묘한 흥분과 설렘으로 일렁거렸다. 사람들은 각 동마다 단톡방을 개설하고 입주민임을 인증했다. 입주민 단톡방은 각 동별로, 동호회별로, 자녀들의 나이대별로, 어린이집과 유치원별로, 나아가서는 어느 어린이집에 몇 세 반 모임인지까지로 세분화되었다. 잠깐 설거지를 하고 핸드폰을 보면 단톡방에 못 본 메시지가 천개쯤 되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한 패턴을 가지고 일사분란하게 네트워킹을 형성해가는 과정이 생경했지만 나는 괜찮았다. 어차피 나라는 사람은 관계의 주변인일때 마음이 편하니까 이번에도 깊게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알람은 꺼두었고 중요한 알림만 놓치지 않고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였다. 커뮤니티센터에 카페에 들른 나는 깜짝 놀랐다. 열명 남짓한 엄마들이 각 모임별로 둘러앉아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고 반말과 농담을 건네는 그들은 꽤 가까워 보였다. 나는 입구에서부터 심장이 떨리고 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내가 한가로이 채팅방 눈팅이나 하고 아이들 등하원 시키면서 이어폰꼽고 좋아하는 미디어를 청취하느라, 주변을 너무 오프시켰구나. 관계의 친밀도를 마라톤으로 비유한다면 나는 아직 출발점에서 갈까말까 머뭇거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저만치 가버린 것 같았다. 저들은 누구인가, 어떤 모임인가? 대체 언제부터 이리 친밀한 사이들이 되었단 말인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저 관계속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길까? 군중속에서, 틀 속에서 발버둥치는 코끼리 한 마리의 비유처럼 나도 모르는사이 이미 나는 내가 아니라 아들 친구 엄마, 같은 반 엄마, 그 집 엄마가 되버리고 말았는데 이 급격한 변화는 실로 한순간에, 한 낮의 아파트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먹이를 찾아 해매는 하이에나처럼 나는 풀착장을 하고 비장한 결의를 숨긴채 하원 후 놀이터로 향했다. 내 아들들의 친구 엄마들을 찾아야했고 친해져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너무 내키지 않았지만, 온 우주의 에너지가 나를 강한 자석의 힘으로 끌어당기며 '지금은 오직 엄마들과 친해지기 프로젝트, 이거 하나만 집중해!' 하고 외쳤다. 그렇지 않으면 넌 낙오자야, 자식생각은 안하고 너 편할대로만 사는 게 엄마니? 악마의 속삭임이 분명했지만 그 놈의 악마녀석이 내 가장 약한 부분 '자식'을 핑계삼으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꽤 현명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자신을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절대로 현명할 수가 없다.
한동안 이어진 놀이터 원정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처음부터 실패할 것이 자명해보였고 사실 이건 아니지 않나 싶었지만 자식을 위한다면 평생 안해봤던 일도 기꺼이 하게 되는 것이 엄마였다. '너 어린이집 친구들 여기 있어? (어,저기) 쟤는 이름이 뭐야? (땡땡이) 기다려봐, 엄마가 땡떙이엄마하고 인사할게. 너도 인사할래? (아니, 싫어) 왜 그래, 인사하러 가자. (싫어, 부끄러워) 그럼 담에 하지 뭐 (응)' 나는 한달 동안이나 아이들을 괴롭히며 놀이터 기행을 했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말을 내뱉을수록 자녀들보다 한참이나 더 어린 아기가 되는 것만 같았다. 마음이 힘드니 실제로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나는 우울하고 초조했다. 하원 후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던 야외놀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불편했다. 나는 자주 짜증을 냈고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러수록 미디어와 술에 의존했으며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아이들보다 늦게 일어났다. 냉장고를 열어 보이는 재료로 아침밥은 대충 차려주었는데 단백질이니 비타민이니 식단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상이 무너지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날이 이어지니 결단을 내렸다. 이 놀이터 기행을 멈추자. 엄마들과의 친해지기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음을 인정하자. 날씨 탓, 간식 탓, 아이들의 변덕 탓! 실패에 대한 변명거리는 많았지만 사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는 애초에 관계에 미숙한 인간이었고 그건 엄마가 되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내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너네 엄마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편이 괜히 사교적인 척 나서는 꼴보다는 백만번 자연스럽고 옳은 일이었다. 내게 꼭 알맞는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나이 삼십을 넘겨서 아직도 경험해보고 깨달아야 한다니. 인생의 절반도 걷지 못한 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이 중에서 아직 '수신(스스로를 바로 세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당연지사로 제가(가정을 돌봄)를 이루는 것은 아직 꿈 꿀 일이 아니다. 나를 비롯한 이 땅의 많은 은둔자들, 히키코모리들, 관계에 서툰 이들이여, 우리는 이제 막 땅속을 해집고 나온 애벌레마냥 아직 꿈틀거리고 있다. 남들이 기어가고 날아가고 저 만치 멀어지는 것 같아보여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보니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주저하는 엄마들, 수줍어하는 엄마들, 동동거리는 엄마들, 한탄하는 엄마들 어딘가 도와주고 싶은 모양으로 놀이터 어귀를 맴도는 사람들이었다. 나와 닮은 이들이다. 나는 나대로 저들은 또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식을 키우고 나다워지고 점점 더 '자기 자신'이 되어 간다. 자유로운 싱글로 살아갈 때만큼이나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갈 때마저도 '나답게 사는 것'이 좋다.
놀이터 방랑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이어폰을 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혼자하는 운동을 선호하고 혼자 밥을 먹는 것이 편안한다. 한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에게는 전화 한통에 그리움과 애정을 담아본다. 짬이 나면 아주 가끔 편지도 쓴다. 하원한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뛰어 논다. 누군가 인사를 건네면 나도 인사를 건네고, 짤막한 인사를 나눈 우리는 또 헤어진다. 놀이터는 만남과 헤어짐의 공간이 아니다. 그저 아이들과 내가 한낮에 햇살을 받으며 열심히 뛰어 노는 곳이다. 날이 저물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고 새벽이 되면 글을 쓸 것이다. 나의 가장 친애하는 친구, 가장 가까운 친구를 만나는 곳은 우리들의 집이다. 부족한 나대로 괜찮은 곳, 지금 이 모습대로 완벽한 이곳에서, 모두 오래도록 편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