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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샘 Sep 22. 2024

선택



남편은 회사에 이직 통보를 했다. 그가 품어온 사표는 오래된 것이라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그를 살폈다면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아, 박과장 이직하려는가 보다.' 친한 회사 선후배들은 몇달 전부터 그의 마음이 떠난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갑자기 밝아진 그의 얼굴빛을 보면서 축하할 일이 생겼구나하고 생각했다. 모두가 아는 것을 대부분의 상사들은 잘 모른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더 잘 내려다 보일것 같은데 말이다. 많이 고민하고 책임지기 위해 오른 자리라서 아래를 보기보단 자꾸만 앞을 보는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남편의 말을 들은 팀장은 반사적으로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탕! 팀장의 당황한 손바닥과 에어컨의 냉기가 표현을 감도는 반질반질한 책상의 나무면이 만나 아주 큰 파열음을 냈다. 그 소리에 문 바깥쪽에서 안의 일을 살피던 사람들은 모두 긴장했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일이 터진 것은 분명했다. 



팀장과 코가 삐뚫어질만큼 술을 마시고 귀가한 남편은 그날부터 며칠 째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을 했다. 현 회사에 남을 것인가, 떠나갈 것인가. 그의 정수리에는 작은 피딱지가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정수리의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긁어대는 그의 이상한 버릇때문이었다. 지난 며칠 그의 정수리는 새살이 돋아날 틈이 없이 무차별적인 손가락의 공격을 받았다. 이직문제를 두고 나와 그의 친구들은 각자의 의견을 더했다. 모두가 새로운 곳으로의 이직을 권했다. 더 많은 페이를 받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돈을 떠나서 무엇보다 지금의 회사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명확했다. 남편처럼 하드워커에 하이퍼포머도 혼자서만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를 도와줄, 함께 의지할 능력있는 일꾼들이 부족했다. 일은 잘하니까 계속 중책을 따내지만 혼자서 많은 일을 처리하려니 몸과 마음이 축났다. 지치고 낡은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회사와 집을 오가던 그가 아내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쓰럽고 미안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장 짐을 싸서 미련없이 이별을 하면 되는, 이미 답이 분명한 문제였다. 



팀장이 두어번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사람을 남기고,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싶어져서 남편은 고민중이다. 커리어와 신의, 둘 중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뭐가 더 나은 선택지일까. 무엇을 선택하든 잃고 또 얻을 것이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의 뒤를 보면 늘 후회가 남는다. 삶의 매 순간에 선택의 기로에서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지만, 돌아보면 그 결정들이 다 옳았던 것도 역시나 다 틀린 것도 아니었다. 이쯤 살아보니 중요한 결정일수록  마음가는대로 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후회도 자랑도 내 것이 될테니까 말이다. 그가 우리집의 유일한 일꾼이기에 그의 마음건강이 우리집의 행복을 좌우할 것이다.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일의 기쁨과 즐거움을 나도 잘 안다. 가족이 주는 사랑과는 또 다른 차원의 충만한 행복이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만큼 하면서도 부족하지 않은 재화를 버는 낭만적인 현실은 없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지, 그의 결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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