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추꽃 Dec 31. 2021

<에이지리스>를 읽고

노화가 없는 세상이 온다

흔히 고령화를 생각하면 사회안전망 문제부터 생각하게 된다. 고령화된 인구의 일자리 창출은 어떻게 할 것이며, 노후는 어떻게 할 것이며, 질병 치료를 위한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등등. 우리 몸의 퇴보를 우리는 주어진 문제로 받아들이며 망가질 몸을 안고 살아가야 할 기간을 위해 보험을 들고, 돈을 모은다. 그런데 이 책은 노화 자체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의학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들리지도 않는다. 노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없앤다면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기간을 확연히 줄일 수 있을 것이고 건강수명도 늘릴 수 있다. 참고로 이 책은 노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노화의 생물학적 정의가 아니라 통계적 정의로 시작할 것이다. 노화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망 위험이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동물, 식물, 기타 생명 형태가 나이 들수록 사망 위험이 높아지는 것을 노화라 말할 수 있다." (페이지 57)


나는 책의 앞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진화가 왜 노화를 구축시키기 않았을까? 여러 이론이 존재하지만 결론은 진화는 번식의 손을 항상 들어준다는 것이다. 진화는 종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번식을 위한 유리한 신체적 환경을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생식가능 연령 후에 생기는 병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나는 진화라는 것이 그냥 종을 무조건 강하게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돌연변이 축적 이론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노화와 돌연변이 축적 이론으로 돌아오자. 동물이 50세가 되면 저절로 죽게 만드는 돌연변이가 생겼다고 상상해보자. 이것은 명백하게 불리한 속성이다. 하지만 아주 살짝 불리할 뿐이다 [...] 그 영향을 경험할 기회가 생기기도 전에 죽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돌연변이는 개체군 안에 그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늙은 나이에는 자연선택의 힘이 그 돌연변이를 쫓아낼 만큼 강하게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으로 동물이 여전히 살아서 자손을 낳을 나이인 2세에 죽게 만드는 돌연변이가 생긴다면 진화는 즉각적으로 그 돌연변이를 제거할 것이다. 이런 돌연변이를 가진 동물은 그런 돌연변이가 없는 행ㅇ운의 개체들과의 전쟁에서 밀려난다." (페이지 64)


진화의 더 충격적인 측면은 그다음이다.


"진화는 생식가능 연력 이후로는 당신의 행복에 무관심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훨씬 더 잔인한 일도 기꺼이 한다. 진화는 당신의 번식을 늘릴 수만 있다면 당신의 미래 건강까지도 기꺼이 희생시킬 수 있다. 진화는 번식 성공률만 높일 수 있다면 말 그대로 무엇이든 희생시키려 들 것이다." (페이지 65)


즉 우리에게 미래에 치명적인 병을 안겨줄 수 있는 유전자라 하더라도 번식 성공률을 높일 수만 있다면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살아남아 계속 존속한다는 뜻이다. 결국엔 노화와 그로 인한 질병과 맞서 싸우려면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것처럼 진화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직접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여담인데 진화에 대해 읽으며 나는 현재의 저출산 사태의 진화론적 결론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요즘 저출산 문제에는 사회문화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이 크게 작용하는데, 그럼 결국에 집 구하는 데 문제없고 엄마가 일자리를 유지하면서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좋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만 번식을 할 수 있게 되어 인간 종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날게 될까? 진화는 약육강식의 지극히 결과론적인 현상이니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과학 과목을 싫어했던 문과생인 나조차도 이해할 수 있게 복잡한 생물학적 현상들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한 것이다. 직관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고 심지어 흥미로웠다. 덕분에 나는 우리 몸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서 노화의 형태로 발현되게 되었는지 훨씬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노화'라는 것이 추상적인 현상이 아니라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집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DNA 손상, 짧아진 말단소체, 세포 자가포식, 노쇠 세포의 축적, 세포 간 신호 실패, 세포 소진, 면연계 고장 등 나이가 들면서 삐걱거리게 되는 기능들에 대한 소상한 설명을 읽으며 '이렇게 안 좋아지는 것이 많단 말이야?'라는 좌절감이 들며 피로를 느끼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노화로 인해 발생되는 수천 가지 질병들과 일일이 맞서 싸우는 것보다 원인을 이렇게 몇 가지로 좁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적이다.


"인간의 몸은 수백 개의 기관, 수백 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세포가 들어 있고, 어떻게 셈을 하느냐에 따라 적어도 수천 가지 노화 관련 질병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노화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당들을 불과 열 가지 범주로 나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화와 결부시키는 대부분의 변화와 질병을 모든 질병을 일일이 표적으로 삼는 현대 의학보다 훨씬 적은 치료법만으로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페이지 162)


원인 추적 후 현재 진행 중인 치료법 개발 등이 소개되는데 내가 몰랐던 것이 이상할 정도로 생각보다 많이 진척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치료법이 여러 원인을 저절로 해결해주는 경우가 많아서 모든 원인에 대한 치료법을 일일이 개발하지 않아도 된다. 노화작용을 막기 위한 백신을 맞는 날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읽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사실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아쉬운 점은 대부분 연구가 수요가 큰 질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노화의 방지에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대중적 관심이 크지 않고 연구 지원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든 눈에 보이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더 노력하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노화가 없는 세상은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읽고 나서 사실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그만큼 노화의 과정이 내겐 자연스러운 순리로 느껴졌나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좋지만 지구의 자원이 어디까지 받쳐줄 수 있을까? 이미 양질의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경제 활동하는 사람들이 두배로 늘어난다면 경쟁만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해지는 것은 아닐까? 신체와 정신적 능력 퇴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굳이 정년을 둘 필요도 없어질텐데 사람들은 언제까지 일을 할까?(물론 돈 많은 사람들은 적당할 때 은퇴하고 건강한 신체로 여행 다니며 노후를 행복하게 즐기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세대 간 갈등이 오히려 심해질 수도 있고, 비교적 젊은 사람들은 더 설 곳이 없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더 다양한 세대를 한 조직 내에 아우르기 위해 인사관리 능력도 알맞게 향상되어야 할 것이다. 부의 재분배가 원활히 되지 않고 기술발전으로 인해 없어질 직업들 목록이 길어지며 사람들의 근심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노화를 겪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물론 치매, 심장질환, 뇌졸중 등 인간의 목숨을 잔인하게 앗아가는 질병에 대한 해결책이 나와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이로 인해 고통받거나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사회 경제적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화 방지에 대한 연구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와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