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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저희 부부는 연애 2년차까지 큰 갈등 없이 정말 합이 좋은 연애를 했어요. 아, 오해하시면 안되요! 제가 지금 이 말을 꺼내는 건 부부 사이의 치명적 문제와 계기를 설명하려고 분위기 잡는게 아니에요. 누구보다 합이 좋았기 때문에 단순히 우린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기만 하고 다른 점이 거의 없는 완벽한 인연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함께 사랑할 더 긴 미래를 상상해보니 이러한 생각은 연인 관계에 있어서 결코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비슷하다고 해서 찰떡궁합이고, 다르다고 해서 구제불능이 아니라는 말이죠.
얼마나 다른지 알아가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다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부분에서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이참에 틈틈히 생각나는 저희 부부의 다른 점들을 기록해보려 해요.
1. 저는 과일을 먹을 때면 흐르는 물에 씻어 먹어요. 껍질 까서 먹는 과일까지도 씻어내고 먹어요. 아내는 헹궈 먹기도 하지만 껍질 까서 먹는 거의 모든 과일은 바로 까서 먹어요.
2. 수박이나 포도씨까지 같이 먹는 저와 달리 아내는 다 발라먹죠.
3. 저는 새우의 머리와 꼬리부분까지 그냥 먹는데 아내는 다 벗기고 떼어내고 먹어요.
4. 하지 말아야겠다 싶어도 하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라 애초에 어떤 관련된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려하는 저와 달리 아내는 한 번 안해야겠다 싶으면 코 앞에 있어도 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다는데 진짜 신기해요. 고집과는 다른 뭔가 확고한 다짐 같아요. 물론 확고한 다짐을 하기까지의 시간이 생각보다 길긴 해요.
5. 아내는 꿈과 자기자신에 대한 고민이 언제나 함께 하는 삶이고, 저는 꿈과 자기자신에 대해 거의 생각해본 적 없었던 사람인데 함께 지내면서 정말 관심이 많아졌고 이런 고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원동력을 몸소 느끼고 있어요.
6. 문제가 생기면 감정을 싹 배제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아내와 달리 저는 감정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해결보다 표현에 초점을 두는 편이에요.
7. 저는 아무대서나 잘 자는 편이 아니고 늦게 잠들었다고 해서 늦게까지 자는 것도 아니에요. 열시에 눕든 새벽 두시에 눕든 다음 날 해가 뜨는 7시, 8시쯤 거의 무조건 잠에서 깨요. 아내는 머리만 대면 자요. 아니다. 머리를 안 대도 자요. 침대에 누워서 잠이 안온다고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와 다시 생각해봐도 축복 받은 몸이에요. 예전에는 회사 점심 시간에 잠깐 15분만 휴개실에서 눈 좀 붙이겠다는 거에요. 글쎄 꿀잠자고 완벽하게 체력을 회복해서 다시 근무했다는 거 있죠. 부러우면서도 참 다행인 특징이에요.
8. 저는 치우는 걸 그나마 더 좋아하고 잘 하는데 아내는 준비하고 실행하는 걸 더 좋아해요. 어쩌면 부부에겐 더 멋진 합을 맞출 수 있는 서로 다른 특징이 될 수 있겠죠.
9. 최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을 모두 고려하는 저와 달리 아내는 일단 해보자 라는 마인드에요. 이건 정말 다행이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운 서로 다른 점이에요. 저의 조심스러운 면모가 더 신중한 선택을 도와줘서 다행일 때도, 언젠가는 아내의 도전이나 제안에 사정 없이 브레이크를 걸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미안할 때도, 그럼에도 확신을 가지고 좋은 결과를 내려 노력하는 아내에게 고마울 때도 있죠.
10. 저는 한 번 본 영화나 드라마는 다시 보고 싶단 생각이 안드는데 아내는 좋아하고 인상 깊은 컨텐츠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봐요.
수도 없이 많은데 이쯤에서 일단 마무리하고 다음 글에서 쭉 이어가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