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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민 Dec 15. 2020

공책에 꿈과 별을 적었어

to. 꿈과 별


엄마가 아침부터 입덧을 많이 해서 걱정이야. 입덧이 어떤 건지 듣긴 했었지만 정확히 그 고통에 대해서 알지 못해서 괜히 더 걱정이 되더라. 입덧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너처럼 귀엽고 소중한 존재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의 엄마가 겪는 정말 힘든 시기를 말한다고 생각하면 돼. 너도 엄마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면 좋을까. 이 시기에는 모든 감각이 활짝 열리는 듯한 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한참 멀리서 새어 나오는 음식의 냄새나 소리를 평소보다 쉽게 느낄 수 있더라. 그래서 아빠는 집에서 혼자 밥 먹을 때도 조심해서 조리하고, 다른 방에 가서 먹고, 바로 치우면서 노력했었어. 입덧을 가라앉힐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봤는데 몇몇 정보가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다행이기도 하고, 아빠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그 정도뿐이라 아쉽기도 했어. 새콤하고 매콤한 음식이 생각나는 시기라고 해서 쫄면이나 냉면 같은 음식을 사두고 먹기로 했어. 오늘은 점심에 냉면을 먹었고 저녁엔 콩국수를 먹었는데 소면이 없어서 과일만 넣어 먹었어. 그러다가 생각보다 입에 안 맞았는지 치킨을 시켜서 조금만 먹었어. 엄마도 널 위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하나씩 찾아가면서 끼니를 챙겨 먹으려 노력하고 있어. 앞으로는 더 잘 챙겨 먹게 될 거고 유독 먹고 싶은 음식들도 생기게 될 거니까 괜찮을 거야. 응원해줘 아가야. 나중에 우리 같이 냉면도 치킨도 먹으러 가자. 건강하게 자라줘.


엄마 아빠는 항상 수다스러운데, 주로 저녁 식사 후에 더 진지한 대화를 나누곤 해. 오늘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있는 큰 책상에 앉아서 너의 태명을 정해봤어. 처음에는 들어본 적 있거나 당장 떠오르는 단어를 나열해봤어. 나열된 단어 그 자체로는 참 귀엽고 예쁜 것 같은데 왠지 엄마 아빠랑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태명에는 'ㄲ,ㄸ,ㅃ,ㅆ'과 같은 된소리가 들어가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뱃속에서 네 태명을 부를 때 더 잘 들을 수 있다더라.

일단 우리는 공책을 펼치고 우리가 좋아하는 한 글자짜리 단어를 적어보기로 했어. '꽃, 꿀, 뿜, 꿈, 짝, 별...' 다 적고 보니 한 페이지의 반 정도가 채워졌어. 이것저것 한 글자씩 조합하기 시작했어. 입으로도 뱉어보고 널 부르는 상상도 해보면서. 하나씩 조합하고 소리 내 불러보니 여러 쟁쟁한 후보가 추려졌어. 그중에서도 '꿈별'이라는 태명이 눈에 들어왔고 의미까지 마음에 쏙 들어서 '꿈별'을 태명으로 정하게 됐어. '꿈'이란 단어를 빼놓고는 엄마를 설명할 수 없어서 '꿈'을, 하늘을 좋아하는 아빠가 고갤 들어 바라볼 때마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별'을 합친 '꿈별', 우리 꿈별이도 마음에 들려나. 우리는 꿈별이가 꿈이 많았으면 좋겠고 꿈을 꾸며 살았으면 좋겠고 꿈을 이뤘으면 좋겠어. 별처럼 스스로 빛나는 건강한 사람이었으면 하고 별처럼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면 싶어. 태명 짓는 것도 오래 걸리고 쉽지 않았는데, 꿈별이 인생에 평생 함께 할 이름은 얼마나 많이 고민해야 할까. 그래도 고민의 결과가 무척 마음에 드는 걸 보니 분명히 이름도 잘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무명이지만 애칭을 가지게 된 꿈별아, 널 생각하며 만든 엄마 아빠의 선물이란다. 자주 불러주고 이야기해줄게. 낯설 텐데 매일 조금씩 잘 자라나 줘서 고마워.


from.

2020 08 11/ 6 6 2개월/ 태명에 스스로 만족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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