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많이 걷고 아침부터 유람선 타고 셔틀을 한 일고여덟번쯤 타고 천자산 케이블카에 백룡 엘리베이터에
모노레일까지 타고나니 이건 뭐 일정 자체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라 이 순서가 맞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장가계를 보지 못했다면 백 살이더라도 제대로 나이 먹은 게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절경이지만 솔직히
부모님들이 소화하기에는 후덜덜한 일정이다. 많이 걷는 것도 문제지만 협곡의 아찔한 계단을 보는 순간 나조차도 다리가 발발 떨렸다. 난 계단에서 구른 경험이 있어서(술 먹고, 아닌 맨 정신에도) 까마득한 계단만 보면 오금이 저린다. 그런데 장가계 일정은 계단이 어마어마하다. 계단만 보면 옆으로 게걸음 하시는 시어머님과 엄마를 떠올리자 절로 고개를 가로저어졌다.
아침 모닝콜은 새벽 다섯 시 이십 분에 울렸고 조식 후 로비 집합 시간은 오전 여섯 시 오십 분이었다.
음 여자 둘이서 씻고 준비하고 밥까지 먹으려면 너무 빠듯했지만 그래도 미친 듯이 시간 맞춰 버스를 탔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일정이 눈이 핑핑 돌 지경인지는.
보봉호수는 개인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조성한 개인소유로 유람선을 타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십여분 정도 이동하는 코스였다. 수심은 평균 72미터이고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109미터 정도라고 했는데 유람선으로 이동하는 중간 정도 위치에 조성된 정자에서 토가족 청년과 처녀가 노래를 불러주었다. 보봉호수에는 아기고기라고 하는 이 급 보호수가 있었고 다리가 열여덟 개라는 이 고기는 밤이 되면 바위 위에 올라와서 아기 우는 소리를 내며 운다고 했다. 이 고기를 먹으면 수명이 십오 년이 늘어난다는 속설이 있지만 보호수여서 잡으면 바로 감옥에 간다는 설명도 들었다. 유람선을 타고 가면서 스치는 풍경이 장관이었다. 그저 앉아서 올려다보기만 해도 와~~~ 소리가 나오는 기암괴석과 산세가 멋졌고 평균 수심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호수는 그냥 우리 집 앞의 호수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토가족은 노래를 잘해야 시집, 장가를 잘 간다고 해서 다들 노래를 잘한다고 했다. 토가족은 평균 열여덟 살이 되면 혼인을 하는데 평균 수명은 사십 즈음이며 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토가족이 들려준 노래를 듣고 두꺼비 바위를 지나 선착장으로 돌아올 때 답가를 불러야 한다며 여행객에게 마이크를 넘기는데 거의 대부분의 경우 선글라스를 쓴 중년남성을 택한다고 했다. 이날도 역시 선글라스 쓰신 남성분이 노래를 불렀는데
참 잘 불렀다. 확률적으로 그런 것일까?
보봉호수에서 다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이번에는 협곡으로 향했다. 정상에 유리잔도가 있는 협곡은 아래로 아찔하게 이어진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직선으로 아래를 향해 뚫린 동굴처럼 보이는 까마득한 계단을 걷다가 중간부터는 봅슬레이를 두 번 타고 내려갔다.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보호 속바지를 아래 입고 목장갑을 낀 채 구멍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게 무척이나 재미가 있었고 속도를 제어할 수 있어서 빨리 가고 싶은 사람은 스릴 넘치게 탈 수도 있겠지만 회전 시 속도가 높으면 옆구리가 아작 날 위험도 있어 보였다.
장가계 여행은 풍경이 멋졌지만 작정하고 사진을 찍을 시간은 없었다. 특히 유리잔도는 깨뜨릴 위험 때문에 카메라 반입이 안된다고 해서 리무진에 카메라를 놓고 와야 했고 봅슬레이를 타고 내려와서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리잔도가 있는 정상까지 올라갔다. 이미 유튜브나 매체를 통해 유리잔도를 보기는 했지만 내 생각보다는 유리의 투명도가 약해서인지 그다지 아찔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가 유리잔도 중간에서 대자로 누워서 사진을 찍자 내가 일어서기 무섭게 한 중국 청년이 자신도 그 자리에 드러눕고는 사진을 부탁하더라.. ㅎㅎㅎㅎㅎㅎ
유리잔도를 건너서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누룽지 백숙이었는데 이미 식당 출입구에서 대만에서 맡았던 강한 향신료의 냄새를 맡아버린 나는 그냥 낯선 음식을 포기하고 훌훌 흩어지는 안남미에 김치로 배를 채워야 했다. 아침은 흰 죽에 깍두기, 점심은 안남미에 김치.. ㅜ.ㅡ 저녁은 호텔 뷔페식이라고 했는데 ㅜ.ㅡ
역시 호텔 입구에서 취두부의 냄새를 맡은 나는 다시 흰 죽에 깍두기로 저녁까지 마무리해야 했다.
후다닥 점심을 먹고 우리는 다시 리무진을 타고 십리화랑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세 자매 바위를 봤다.
큰언니는 애를 안고 있고 둘째 언니는 애를 업고 있고 막내는 배속에 애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사진을 후다닥 찍자마자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천자산으로 향했다.
장가계의 관광지들은 거의 대부분 관광지로 들어서는 입구 초입에 가게가 많았다. 관광지 입구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 향신료 냄새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고 그 뒤부터는 버스에서 내리면 일단 코로 숨을 쉬지 않고 입으로 숨을 쉬었다.
천자산부터는 버스가 들어갈 수가 없어서 셔틀을 연이어 두 번 정도 갈아타고 이동해야 했다. 전반적인 중국도로의 특성이 그런지 아니면 관광지만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좁은 이차선 도로에 갓길이 없었고 산 정상을 위해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를 양 옆으로 차들이 지나갈 때도 속도를 줄이는 일이 없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느낌의 승차감 속에서 커브를 감속 없이 돌 때 옆차가 간발의 차로 스쳐 지나가는 스릴 넘치는 광경이 여러 번 연출되었다. 그래도 사고가 나지 않다니 역시 부산에서 운전은 강한 자가 한다더니 이곳도 그런 강자만 사는 곳인가 싶었다.
천자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곳에도 대기 인원이 어마어마했다. 이번에도 가이드님이 능력을 발휘해서 VIP티겟으로 에버랜드 익스프레스 줄처럼 VIP통로로 이동해서 짧은 대기 끝에 케이블카를 탔다. 국내에서도 나름 꽤 길다는 케이블카를 많이 타봤지만 올라가는 편도만 십오 분 정도 되는 곳은 없어서 꽤 빨리 움직이는 케이블카 속에서 스쳐 지나는 산새를 오지게 감상했다.
그렇게 원가계에서 아바타 바위와 천하제일교를 보고 멋진 풍광에 우와 할 틈도 없이 또 막 이동을 했다.
원가계 코스는 사십 분 정도를 도보로 이동해야 했는데 신기하게도 가마꾼이 있어서 다른 팀 연세와 등치가 있으신 남성분이 가마를 이용했다. 요금은 8만 원이라 싸진 않았지만 가마꾼 두 분이 어찌나 체구가 왜소하고 키가 작은지 이용하는 아저씨를 둘로 나누면 딱 그 아저씨들 등치겠다 싶은 생각에 참 먹고살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우리는 바쁘게 이동을 해서 라텍스 가게로 갔다. 어차피 쇼핑이 있다는 걸 선택한 상품이었고 노쇼핑시 20만 원 차지가 있던 터라 그 안에서 물건을 구매하려고 맘을 먹고 있었는데. 웬걸. 예전에 홍콩에서 봤던 라텍스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침향라텍스 베개 세 개를 사서 한 개는 제부 선물하고 두 개는 지금 딸내미랑 내가 잘 쓰고 있다.
라텍스에서 한 시간 넘게 있다가 백룡 엘리베이터를 타러 이동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국경절이라 대기가 기본 삼천 명 이상이라고 했고 평균 대기는 세 시간이 넘는다고 했지만 가이드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VIP로 삼십 분 만에 백룡엘리베이터를 탔다. 총 높이 326미터를 투명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초가량이라 너무 순삭이었고 비용 또한 한화로 4만 원이 넘는데 그걸 VIP 티켓 처리했으나 중국 물가를 생각했을 때 정말 고가였지만 그걸 또 타겠다고 애까지 데리고 줄을 서고 있는 중국사람들을 보니 참 만감이 교차하더라. 신기한 건 줄을 서서든 길에 앉아서든 서서 걸어가면서 든 뭐를 자연스럽게 잘 먹는 중국사람들이었다. 기다릴 때도 그냥 기다리지 조급함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해맑다고 해야 할까 따닥따닥 붙어서 소매치기가 걱정될 법도 한데 공안이 워낙 무섭다 보니 그런 걱정도 없는 것 같았다.
하루에 이만 오천보를 걷고 셔틀을 일곱 번 넘게 갈아타고 봅슬레이에 케이블카에 엘리베이터에 모노레일까지 탄 내 종아리는 딴딴하게 굳어 있었다. 뷔페식을 거의 먹지 못한 채 호텔 3층에 있는 마사지 샵으로 이동했을 때의 시간은 밤 8시 40분이었다. 총 한 시간 삼십 분이라는 마사지는 내 종아리를 부수어서 그 담달부터는 걸을 때마다 곡소리가 나왔고 내 동생은 다리에 할퀸 자국 플러스 푸릇한 멍이 대박 들었다. 시원한 게 아니라 부수는 느낌????
우리는 점심때 식당 아래에서 팔던 망고를 안주삼아 마시고 새벽 한 시 정도에 잠을 잤다.
(망고는 만원에 세 개였는데 어찌나 만만디로 써는지 난 버스가 떠날까 봐 조바심에 속이 타는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