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세시 May 06. 2024

은밀하고 조용한 인종차별

영국의 인종차별 이야기

친한 친구가 회사에서 인종 차별을 당했다. 친구가 일하는 회사에는 동양인이 친구 포함 해서 둘 뿐인데 (다른 동양인을 편의상 B라고 지칭하겠다) 타 부서사람이 친구를 B로 착각하고 B의 이름을 부른 사건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미친 거 아니야?'라는 소리가 나왔다. 명백한 인종 차별적인 행동이었다. 친구는 그냥 넘어가는 대신 단호하고 정말 멋진 방법으로 그 사람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짚어냈다.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는 친구는 이 이야기를 영상에 담아 공개했는데, 수많은 격려와 응원의 댓글 사이에서 놀랍게도 일부 댓글들의 화살은 친구에게로 갔다.


Heenda 흰다의 유튜브 영상. 그녀는 영국에 산 지 8년이 된 친구다.

친구가 영상에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다른 회사 동료들은 맞는 말이라며 그녀의 용기에 모두가 박수를 쳤고 해당 부서의 디렉터가 직접 사과까지 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한국 사람들이 오히려 그게 어떻게 인종차별이냐며 되려 친구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인종차별을 제대로 경험하거나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한국에서는 인종 차별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동양인이고 주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국으로 오고 나서 직접 인종 소수자로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굳이 혐오에서 비롯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차별'을 종종 경험한다. 이것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렵다. 요즘의 인종 차별은, 생각보다 고차원적이고 이방인들의 삶 곳곳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다.


대놓고 하는 인종차별

우리나라에서 주로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는 인종차별은 굉장히 자극적이다. 길을 가는데 침을 뱉는다든지, 가만히 있는 인종 소수자에게 폭력을 가한다든지 등 주로 명백하게 혐오에서 기반된 행동들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특정 인종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가지는 것도 사실 '혐오' 범주에 속한다. 흑인은 잠재적 범죄자, 혹은 중동 사람들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생각하는 등의 경우인데 모두 일반화의 오류, 혐오로부터 비롯된 인종 차별이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이런 행위들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다 안다. 상대방의 의도를 판단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은밀한 인종 차별

그러나 문제는 그런 '대놓고 혐오'식 보다는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은밀하고 조용한 차별들이다. 인종 소수자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한 번쯤은 겪게 되는데, 상대방이 악의인지 아닌지 이게 차별인지 아닌지 조차도 굉장히 헷갈리는, 지적하는 사람이 오히려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행위들이다. 내 친구가 경험한 일도 예시 중 하나이다. 주로 상대방의 인종적 특성 하나만 가지고 일반화하고 어떤 사실을 추측하거나 편견을 가지는 것이다. 내가 영국에서 직접 복고 겪은 몇 가지의 일들을 예시를 들어보겠다.


1. 너 '진짜로' 어디서 왔니?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기본 정보에 대해 묻게 되는데, 특히 런던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이주해서 사는 도시에서 살다 보면 출신지에 대한 질문은 사실 당연하다. 그런데 그 질문이 상대방의 특정 인종적 특성만 고려했다면 그것은 인종 차별이다.


남자친구와 함께 스코틀랜드 여행을 하던 때였다. 숙소 체크인을 하는데 리셉션 직원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Where are you from? (너 어디서 왔어?)이라고 물었다. 나는 We're from London (우리 런던에서 왔어)라고 대답했다. 갸우뚱한 표정을 짓던 그는, No, I mean, where are you 'actually' from? (아 내 말은, 너 진짜로 어디 출신이냐는 거였어.)이라고 되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했고 그제야 그는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나 너처럼 생긴 사람 실제로 처음 봤어'라고 했다. 기분이 나빴지만 그냥 멋쩍게 웃었다. 나중에 남자친구는 정말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질문이었다며 대신 사과를 했다.


저 사람이 과연 동양인에 대한 혐오로 저런 질문을 던졌을까? 그건 아마 아닐 것이다. 그는 내가 런던에서 왔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더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이 무례한 이유는, 나의 외적인 특성(동양인)만 보고 내가 당연히 영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국인 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악의 없는 차별을 경험한다. 나야 사실 한국에서 왔다고 해도 별 문제없지만, 이민 n세 들은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 나라의 문화와 정체성을 가진 시민임에도 단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저런 류의 질문을 수도 없이 받는다. 반대의 경우에도 똑같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주변의 고정관념과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은 워낙 '단일 민족'이라는 특성이 강해서 영국과 비교하기엔 아직 이를지 모르지만, 그래도 세상이 점점 바뀌고 있고 그만큼 사회 구성원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으니 우리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2. 마이크로 어그레션 (Micro Aggression)

최근 오스카에서 각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수상을 한 엠마 스톤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태도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나도 친구가 보내줘서 영상을 접하게 되었는데, 보자마자 우리가 인종 소수자로서 일상생활에서 겪는 '마이크로 어그레션'의 예시임을 깨닫고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았다. '마이크로 어그레션'은 아마 실제로 인종 소수자들이 겪는 가장 흔한 형태의 인종차별이 아닐까 싶다. 직역하면 '아주 작은 공격'이라는 뜻인데, 소수 인종 구성원에 대해 간접적이고 미묘하며 의도하지 않은 차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둘 모두 직전 해 수상자인 키 호이 콴과 양자경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쳤다.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같은 동양인들도)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그들을 옹호했는데, 그게 바로 '마이크로 어그레션'의 핵심이다. 악의에서 비롯되거나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에게 모욕감이나 적대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차별 행위. 정말 너무 미묘하고 작아서 지적하는 사람을 예민한 사람으로 만드는 행위들 말이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이 마이크로 어그레션들을 꽤 자주 겪는다. 특히 백인이 주류인 모임을 나가거나 집단에 소속되었을 때 가장 강하게 느낀다. 마이크로 어그레션을 처음 느꼈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남자친구의 절친한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아서 가게 되었는데, 20명 남짓한 사람들 모두 백인이고 나 혼자 동양인이었다. 물론 그 자체로도 어색했지만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든 것은 일부 사람들의 태도였다. 대부분이 같은 학교 출신으로 이미 서로 다 알고 있었고 그날은 나와 다른 친구의 미국인(백인) 여자 친구 2명만 '외부인'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그 미국인 친구에겐 먼저 인사를 하며 살갑게 대하더니, 나는 철저히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내 남자친구와는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 처음에는 이런 백인이 주류인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비슷한 경험들을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회사에서도 겪으면서 점점 불안증세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백인이 많은 자리에 가면 나도 모르게 급격한 스트레스를 받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이다. 한 번은 용기를 내서 심리학으로 박사전공을 하고 있는 영국인 친구에게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겪는 것은 '마이크로 어그레션'의 대표적인 예시로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고 그게 지속되면 결국엔 'Racial Trauma(인종적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때 '마이크로 어그레션'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친구는 심리학에서 실제로 활발하게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 중에 하나라고 했다. '아, 내가 문제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면서도 슬펐다. 그 말은, 내가 영국에 사는 이상 지속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문제라는 뜻이었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말을 먼저 걸어도 되지 않았냐라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여기서 핵심은 소수자들을 위한 주류들의 '노력 여부'를 의미하지 '성격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럴 땐 '굳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생각하면 쉽다. 그들은 나에게 딱히 악의는 없지만 '굳이'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나에게 말을 걸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까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백인이 같은 일을 당했을까?라고 질문해 보면 답이 쉽게 나온다.



이런 대표적인 예시들 이외에도 이름을 잘못 발음한다든지 (이름을 똑바로 발음하는 것은 가장 기본 예의 중에 하나이다.), 백인이 아니면 영어를 당연히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든지 (혹은 그 반대), 동양인들은 다 부끄러움이 많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든 지 등 단순히 인종에서 비롯된 고정관념과 차별들은 바꾸고 싶어도 바꾸기 힘들 정도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게다가 여성이라면, 여기에 더해져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이나 성적인 희롱까지 겪게 될 수 있다. 지나가다 캣콜링을 당하는 확률은 슬프게도 백인 여성들보다 인종 소수자 여성들이 훨씬 더 높다.



인종 차별을 받아들이는 자세

누구나 인종 차별을 당하면 기분이 나쁘다. 심할 땐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한 경우엔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인종 차별을 처음 겪으면 '에이 아닐 거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처음 스쳐 지나간다. 부정하는 편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경험해 보니 인종 차별을 당했을 때 대응하는 가장 건강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 사실을 부정하거나 숨기려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것에 대해 지적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위에서 언급했던 내 친구처럼 말이다.


영국에 와서 초기엔 나도 부정하는 단계를 겪었던 것 같다. 내가 겪는 불안의 원인을 나에게로 돌렸고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나서고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인종 차별은 개인의 노력 문제로 치부하기엔 역사가 너무 깊고 사회 전반에 만연해있는 문제이다. 모두가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사실은 해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된다. 지금은 나와 비슷한 일을 겪는 비 백인 친구들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훌훌 털어낸다든지, 이렇게 글을 쓰거나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성찰하고 고민한다.


주류와 비주류의 사회에서

한국에서는 주류였던 내가 이렇게 영국에 와서 소수자가 되어보니, 그동안 소수자의 입장이 얼마나 무시당해 왔는지, 내가 그동안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닫게 된다. 수많은 인종 차별 이슈에 아무렇지 않게 '난 이게 인종 차별인지 모르겠는데'라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적어도 그 미묘한 차별을 겪을 일이 없다는 뜻이니 말이다.


우리는 쉽게 주류의 편에서 생각하곤 한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거야', '쟤들도 몰라서 그런 거지' 등의 결론으로 평화를 찾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인종 차별의 문제만큼은 주류인 백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기 보다는 그 일을 실제로 겪는 인종 소수자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저게 왜 인종차별이야?'라는 생각 대신, '아 저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나도 조심해야지'라고 포용하고 배우려는 노력 말이다.  


인종 차별 이외에도 이 세상에는 수많은 차별들이 존재한다. 비장애인/장애인, 시스젠더/트랜스젠더, 이성애자/동성애자 등 주류/비주류로 나뉘는 모든 문제에서 말이다. 내가 주류라고 해서 비주류의 입장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주류의 기준에서는 차별에 대해서 맞다, 틀리다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같은 인종 소수자라 하더라도, 나는 동양인으로서 차별은 알아도 흑인으로서 겪는 차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리고 나는 장애가 없기 때문에 장애인으로 겪는 차별이 어떤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함부로 그들의 심정을 판단하거나 어떤 상황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것은 지양하려고 노력한다.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예민하다고 치부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 차이를 함께 줄일 수 있는지 고민하는 편이 훨씬 미래 지향적인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비주류로서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