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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eul Dec 29. 2023

6개월치 눈물

 에따델리우(état des lieux). 프랑스에서 입주하기 전과 퇴실하기 전에 집주인과 함께 집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이다. 입주 당시, 임대로 내어 놓은 집 상태 그대로반납해야 한다. 그러나 '원래 상태 그대로'의 정도가 굉장히 엄격하기 때문에 퇴실 시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입주 시에는 세입자가, 퇴실 시에는 집주인이 공격자가 되어 집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게 된다.


 돈이 걸려있는 중요한 과정이기에 유학센터(유학센터를 통해 집을 구했다.)에서 알려준 내용을 샅샅이 읽었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정보였다. 용돈 천 원 받아놓고 5성급 호텔 식당 메뉴를 살펴본 셈이었다. 내 불어 실력이 딱 천 원치만도 못했으니까.


파리에서의 첫 음식


 에따델리우 예정 시간이었던 15시 30분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는 바람에 배도 채우고 시간도 때울 겸 주변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카페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30분이 걸렸다. 입구 찾는 데 1분, 안에 자리가 있는지 흘겨보는 데 1분, 문을 열고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데 1분, 포기하고 더 작은 카페(들어가기 부담 없어 보이는 카페)를 찾아보길 1분... 그렇게 30분을 꽉 채웠다. 지금 보니 난 1분도 소중하고 알차게 쓰는 사람이다.


 뜨끈 거리는 속을 달래려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쭉쭉 들이키고 덜덜 떨려오는 몸을 달래려 쿠키를 야금야금잘라먹었다. 아까 기숙사에 짐을 맡기러 갈 때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다. 불어는 천 원짜리여도 비상금으로 숨겨둔 만 원짜리 영어 실력 덕에 든든했었는데 그마저도 종이쪼가리가 됐다. 팔랑.


집 앞 풍경 1

 

 입주 시간이 코앞에 다가오니, 등 뒤쪽 척추에 있는 작은 골짜기를 따라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무더운 날씨 덕에 누군가 보더라도 땀인지 식은땀인지 분간하지는 못할 테니 아주 다행이었다. 다만 시원한 건물 안에 들어오니 어둠에서 빛나는 형광옷이 눈에 띄게 잘 보이는 것처럼 식은땀이 어디에서 어느 속도로 흐르고 있는지 한 줄기 한 줄기 세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잠깐 기다리니 사무실 문이 열렸다. 끼익. 공포영화 클리셰에 등장할 것만 같은 섬뜩한 소리였다. 드디어 집주인을 마주하고 급하게 내뱉은 나의 첫마디, "Bonjour, Je ne parle pas français(제 프랑스어는 천 원짜리입니다.)" 돌아온 첫마디, "네가 방금 한 게 프랑스어야!" 네? 그 뒤로 쭉 열정적으로 프랑스어를 구사하셨다. 그때 깨달았다. 뚫린 입이라고 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차라리 목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여름이었다. 


집 앞 풍경 2

 

 포기하지 않았다. 나의 말을 대체해 줄 수 있는 건 많았으니까. '정보화'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기쁜 마음에 번역기를 꺼내 들었지만 현지 언어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동물 소리를 사람의 언어로 바꿔 들려준다는 기계가 더 쓸모 있을 듯했다. 멍멍. 약 40분 간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에따델리우에서 집주인께서 시원시원하게 방 체크를 하시는 걸 구경만 하다 끝났다. 정말 강아지 소리였다면 듣기라도 좋았을 텐데 집주인의 거칠고 강한 불어 스타일 때문인지 끝마치고 나니 온몸에 진이 빠졌다.


 내 몸집만 한 짐들을 옆에 두고 침대에 걸터앉으니 푹신한 침대 속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걸 내가 6개월 동안 들어야 한다고?(이렇게 길게불어를 들을 일은 그 뒤로 없었다.) 이제 첫날인데 이렇게 힘들어도 되는 거야? 그런데 뭘 했다고 힘든 거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매 순간 긴장감을 곤두세워야 했던 게 그 이유였다. 당연했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해야 하다 보니 일어난 사태였다.


정신 차리고 짐 정리

 

 그런 와중에도 귀국할 마음은 일절 들지 않았다. 단순히 힘들다고 귀국하는 건 내가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없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나를 미워하며 지금 이것보다 훨씬 더 심한 고통에 절여질 게 눈에 선했다. 아무튼 당장 나에게 필요한 건 불어도, 강아지 소리도, 식은땀 흐르는 소리도 아닌, 한국어였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친한 S에게 무작정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상대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웬만하면 사전 연락 없이 전화를 걸지 않는 편인데 그 순간에는 그런 걸 신경 쓸 경황이 없었다.


 휴대폰 넘어 들려오는 목소리의 한 음절마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몸에 가시처럼 박혀있던 불어와 함께 뽑아냈다. 시차 때문에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연락을 받아주고 묵묵히 들어주고 위로해 준 S가 고마웠다. 통화를 마치니 한참을 운 것 같은 목소리가 되었지만 언제 울었냐는 듯 정신만큼은 곧바로 또렷해졌다. 그 뒤로는 한 번도 울지 않고 묵묵히 잘 견뎌낸 걸 보니 아마 6개월치 눈물을 한 번에 쏟아냈나 보다. 고작 15분으로 한 학기를 견디다니, 내 눈물은 가성비가 좋다. 6개월 동안 나눠서 울어야 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쩌면 이 날의 통화 한 번이 나의 교환학생 생활 전체를 받쳐준 걸지도 모르겠다. 눈물로 빚어낸,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을 품은 채 짐 정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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