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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eul Jan 14. 2024

답을 쫓아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 거야

잔나비 <슬픔이여안녕> 中

 학창 시절 때도 그랬다. 시험지 문제에 볼드체로 적힌 ‘옳은’, ‘옳지 않은’이 골칫거리였다. 참.. 그것 때문에 틀린 게 문제가 몇 개인지 기억도 안 나네다 합치면 100점쯤 되려나. 분통이 터진다. 그래서 매번 그런 글자들의 잉크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동그라미를 쳐가며 읽었다. 애꿎은 펜만 고생이었다. 알지만 틀리는 문제들은 지치지도 않고 매 시험, 그리고 매 과목마다 등장했다. 이 때문에 여태까지 쏟은 시간과 노력이 고작 활자 몇 개로 인해 물거품이 되기 일쑤였다. 그 당시 나의 가치는 빨간색 크레파스의 경로가 직선인지 곡선인지로 정해진다고 믿었으니까. 실제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왜 자꾸만 틀리는 걸까, 뭐가 문제일까, 시험을 칠 때보다 더 빠르고 정교하게 머리를 굴렸다.


 옳고 그름에 집중하며 답만 쫓기 바빴다. 정작 질문을 까먹어버린 게 그 이유였다. 어떤 질문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었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무섭다. 삶에 대한 물음표들이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것 같다. 내가 고른 게 정답이 맞을까, 정답이 여러 개인 문제인 걸까, 애초에 정답이라는 게 있긴 할까, 세상이 말하는 옳고 그름에만 매몰된 건 아닐까, 그러다 내가 고른 정답이 틀리면 애꿎은 세상 탓만 하는 거 아닐까, 종말에는 나를 미워하다가, 콱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질문에 답이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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