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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eul Jan 17. 2024

내일 있을 가장 좋은 일 한 가지를 미리 보여준다면?

 밖에 있는 동안 시간이 붕 뜰 때면 휴대폰을 꺼내 전자책을 읽는다. 친구를 기다리거나, (약속 시간에 미리 도착하는 편이라 많은 사람들의 미안함을 사곤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그런 종류의 시간들이다. 짧은 시간이니까 더더욱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생긴 습관이다. 오히려 시간이 풍족할 때, 그 농도는 낮아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오늘따라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장 난 음료 자판기가 지폐를 뱉어내는 것처럼 글자를 집어넣으면 머릿속으로 들어가기도 채 전에 눈에서만 맴돌다 새어나가는 탓에 자꾸 같은 문장만 덧입히길 반복했다. 이럴 바엔 읽지 않는 낫겠다 싶어 네이버 웹툰을 열었다. 연재될 회차를 꾸준히 아니지만, 잠깐의 유희위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과 표지를 찾아 들어가 스크롤을 내려본다. 학교 폭력을 주제로 듯한 액션물이었다.(8화까지 전부다.) 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VR기기를 사용해 보게 되는데, 기기는 주인공에게 내일 일어날 가장 좋은 일, 또는 가장 나쁜 일을 미리 보여주었다. N을 가진 자의 숙명인 것인지, 내가 만약 이 VR을 사용한다면, 나에게는 무엇을 보여줄까? 문득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내일은, 모레는, 한 달 뒤에는, 10년 뒤에는? 나의 하루에 가장 좋은 일은 어떤 걸까. 아니지, 만약 어제 이 기계를 사용했다면 보여줬을 오늘의 가장 좋은 일은 뭘까?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모든 순간이 최악이었던 날들은 또 어떻고? 우연히 내가 타려던 지하철이 딱 맞게 도착한 일 정도겠지. 그래도 고작 그 일 덕분에 엉망진창이었던 하루도 피식하고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지하철만은 내편이었다며 실실거리며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행복이 잔뜩 묻어나는 날에도 그런 사소한 일들이 행복감을 가져다주긴 하겠지만, 우울함이 범벅된 날의 사소함이 주는 그 행복감의 농도는 훨씬 더 짙다. 이렇게 보니 결핍은 무언가 소중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결핍 그 자체, 또는 결핍을 채워주는 그 대상을 대하는 마음을 더 애틋하게 만들어 준다. 시간은 부족할수록 아까워지고 의미 있길 바라며, 사소한 행복은 힘들 때 더욱 빛을 발하고,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속아 끊어낸 인연은 곁에 없을 때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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