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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eul Mar 10. 2024

왜 말이 없어? 재밌는 얘기 좀 해 봐

말이 없다고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한 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였다. 넌 왜 말이 없냐는 무자비한 말을 듣게 된 것도 그 이후부터였다. 사람들은 어색한 분위기를 못 견뎌했던 걸까, 아니 그렇진 않았을 거다. 내가 말이 없어지는 건 3명 이상일 때부터였고, 분위기 자체가 딱딱하게 굴러간 적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럼 말이 없는 나를 대화에 끼워주기 위한 배려였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되려 그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직도 그런 말을 듣는 장면을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


재밌는 얘기 좀 해보라는 말에 재밌는 이야기를 해본 적 없는, 엄밀히 말하면 못하는 사람이다. 가볍게 던지는 그 말은 달궈진 쇠꼬챙이로 가슴을 그대로 관통하여 찌르는 듯했다. 내 딴에 재밌는 이야기는 있다. 그저 당신이 듣기에 지루해할 것들을 탈곡하고 나면 좁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괜히 말하라고 했다며 후회하는 일그러진 표정이 얼굴에 속절없이 드러날 것이 뻔했다.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1대 1 만남을 제외하면, 말수를 줄이고(할 말이 있는데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말해도 의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덮치는 탓에 하고 싶은 말이 그냥 떠오르질 않게 된다.) 가면을 쓴다. 노역이었다. 그래서 질문이 습관이 됐다. 내 얘기에 흥미가 없을 걸 알지만, 적어도 내가 그대들에게 하는 질문만큼은 진심이었고 당신들의 이야기는 얄팍하지만 재밌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있다.

최근까지도 그런 사고의 흐름 속에서 유영하며 꽤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숨구멍을 트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1대 1 만남에서 편안한 수다를 떨다 보면 내 모습에 괴리감이 느껴져 속이 메슥거릴 지경이었다.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내가? 그러다 다시금 다수 속에 섞여있다 보면 오가는 말들이 소화가 되지 않았고, 그럼 그렇지 하며 나는 말이 없는 사람이구나,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하는 걸 못하는 사람이구나, 자책했다. 그렇게 온탕과 냉탕을 반복해 오가다 보니 나의 온도를 잃어갔다. 나라는 사람과 결이 맞아 들어서 원하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보다 다수와의 만남의 비중이 훨씬 컸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를 내리치는 순간들이 더 잦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마음을 다잡게 된 데에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스스로 생각과 마음을 대차게 고쳐먹었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려 노력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고, 상대의 이야기를 다시금 정리하여 이해한 게 맞냐며 물으며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진실하게 느껴지게끔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예리한 질문으로 당신이 모르던 내면을 끌어올려 수면 위로 건져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1대 1에 강한 사람이다. 자부한다. 그렇다고 믿어줬다.

그러니 나와 가장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은 나였다.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질문하는 것도. 그렇게 쌓인 대화들을 1대 1 만남에서 토해내는 편이다. 그럴 때 나는 건강하다고 느끼고 스스로 깊이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복잡하게 얽힌 이어폰 줄을 한 번에 풀어내는 듯한 쾌감과 함께 알게 된다. 당연히 다수와의 만남을 피할 수는 없다. 평생 1대 1로만 만나며 산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으며 여러 사람과 한 번에 만나는 모임을 딱히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만남들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지만 싫지도 않다. 원래라면 볼 수 없을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는 좋지만, 그런 모임에서 오가는 대화들에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 싫기도 하다. 얕은 관계가 가져다주는 연결성의 장점 또한 무척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런 관계의 무의미함 또한 뼈저리게 알고 있다. 다수의 모임이 편안하지는 않지만 필요하다는 것 역시 부정하지 못한다. 그렇게 떨어질 듯 말 듯 줄타기를 하며 마음의 갈피를 잡아보려 노력 중이다.

이제는 적어도 스스로가 말이 없거나 대화를 못한다고 자책하지는 않는다. 왜 말이 없냐는 질문에 의미 없는 핑계와 괜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넘길 수 있고 꽝꽝 웃을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보라는 말에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며 능청스럽게 굴 수 있게 됐다. 그렇게 가볍게 던진 말을 있는 그대로 가볍게 받아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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