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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eul Apr 08. 2024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제목을 곰곰이 곱씹어 보다 내려야 할 정류장의 스크린 도어가 닫히는 걸 보지도 못했다. 편지 형식으로 글을 써야 할 것만 같은 ‘에게’라는 단어가 내내 거슬렸다. 사랑하는 것에게 편지라,, 아니 사랑하는 것’들’에게?

사랑하는 무언가에게 편지를 쓴다면 자연스레 그 대상은 사람이 되는데, ‘들’이라니. 마치 양다리를 걸쳐 놓고서는 편지 2장을 쓰기 귀찮아서 하나로 엮어 동시에 보내려는 속셈 같다. 괘씸한 마음이 들어 그만뒀다.


그냥 사랑에 대해 쓰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내가 나를 사랑하게끔 한다.

활자, 사진, 기록, 독서, 알맹이 대화, 운동.

찰나동안 주위를 일렁이게 하는 조그마한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려 전체를 옅게 물들이며 속절없이 퍼져 나간다. 시나브로 농도가 짙어져 채도는 높아지지만 그들끼리 섞이지 않고 조화롭게 색을 이룬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가 사랑하는 것들로 구성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를 더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이라는 프리즘을 투과해 각양각색, 본인만이 가질 수 있는 빛을 품게 된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나를 명징하게 비춰주는 거울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힘껏 끌어안아주는 사람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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