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9일
2023년 12월 19일
와이프와 나는 이년 8개월 전, 그러니까 2021년 4월 10일에 공릉동에 카페를 열었다. 우리를 더 가깝게, 심지어는 결혼에 이르게 하는데 크게 기여한 우리의 강아지의 이름을 따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났다. 우리는 다음 스텝을 위해 가게를 정리했다. 오는 25일 크리스마스를 마지막 영업으로, 가게를 넘기게 되었다.
가게를 정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해줬다. 얼마 안 남은 기간에 참으로 여러 번 방문해 주는 손님도 있었다. 와이프에게 손 편지를 써주기도 하고, 진심으로 우리 집 강아지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말해주는 손님도 있었다. 나는 본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와이프가 운영한 것인 이 카페가 그래도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받는 장소였다는 생각에 뜻깊다.
겨울이고, 대학가에 위치한 우리 카페는 시험기간과 방학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원래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 가게는 조용한 편이다. 가게를 정리하기로 한 소식을 전한 탓인지 요번달은 카페가 주중이고 주말이고 붐빈다. 오늘도 저녁시간대에 몇 개 없는 테이블이 다 차, 여러 명이 돌아갔다.
그중 한 어린 커플이 가게를 나서며 우리 강아지를 불렀다. 강아지는 계산대 아래 방석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우리 집 강아지는 그들에게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강아지는 요 근래 피곤한 상태다. 오늘 날씨가 추웠음에도 출근하기 전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했다. 겨울이다 보니 일조량이 줄어든 탓도 있고, 요즈음 손님들과 작별인사를 위해 매일매일 가게에 나와 있는 탓도 있다. 그런데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그다음 손님의 말.
“쳐다라도 봐라. 쇼맨쉽이 없어.”
그들은 문을 닫고 발걸음을 돌렸고, 나는 얻어맞은 기분으로 가만히 허공을 바라봤다.
쇼맨쉽이 없어. 쇼맨쉽이 없어. 쇼맨쉽이 없어.
사람들은 강아지가 자신을 유독 반기면 좋아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독’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그 강아지가 유독 자신을 반기지 않으면 이내 실망한다. 실망의 정도가 큰 사람들도 있다. 쇼맨쉽 발언의 손님도 그런 심정이었을까?
쇼맨쉽이 없다는 말을 강아지가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했을까? 그게 아니라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그러니까 당신, 강아지 앞세워 장사하는데 당신 강아지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아, 이거 너무 쇼맨쉽이 부족한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걸까.
생각은 계속 꼬리를 물고 나쁜 쪽으로만 흘러갔다.
우리 카페가 강아지 덕에 빨리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다. 강아지는 유리창을 통해 계속 밖을 내다봤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찌 됐든 한 번 더 여기에 카페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강아지 앞세워 장사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강아지 있어서 카페 왔는데 디저트나 음료는 영 맛이 없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싶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군분투했다. 시판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거의 모든 재료를 직접 만들었다. 와이프는 하루에 열두 시간 일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나는 한 달에 몇 번 쉬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쇼맨쉽이 없다는 그 말은 나의 이런 정성을 모두 배반하는 말이다. 그는 우리 집 강아지의 쇼맨십을 보러 카페에 온 것이다. 쇼맨쉽이 없다는 말은 나에게 당신들 카페에 ‘볼거리’가 ‘볼거리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힐난으로 들렸다.
자영업자들이 SNS 계정에 이러쿵저러쿵 자신들의 애로사항을 공격적인 어조로 써 올리는 게 같은 자영업자의 입장에서도 늘 불편한 일이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SNS에 긴 글을 적고 있었다. 물론 업로드하지는 않았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마음을 편히 갖기로 했다. 이런데 올린 들 그 사람들이 볼 일도 없고, 그들이 이 글을 본 다한 들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고, 혹은 사과를 한다고 뭐 하나 달라지는 건 없으니 말이다.
이런 비슷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 되뇌던 말이 있다. 저 사람까지 설득할 필요 없다. 그리고 저런 사람들까지 설득할 수는 없다.
MBTI에 과몰입 돼 있다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T고, 이럴 때일수록 더 T가 되려고 노력한다. 생각의 회로를 따라간다.
1. 그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닐 수 있다. ⇨ 그럴 경우, 그는 그저 매우 무례할 뿐 악한 마음이 없는 것이다. ⇨ 그런 무례함을 내가 물고 늘어질 이유가 없다. ⇨ 무례한들은 자신의 무례를 모른다.
2. 그런 의도로 말했으나, 나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고, 저희들끼리 이야기한 것이 목소리가 컸다. ⇨ 그들의 생각까지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다. 그들이 우리 카페를 이용했더라면, 강아지 때문에 왔지만 카페의 분위기나 인테리어, 맛이 전반적으로 좋다는 평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했을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은 우리 카페를 이용하지 않았다. ⇨ 그런 사람들에게 백날천날 우리는 이렇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3. 그런 의도로 말했고, 나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면 ⇨ 그런 사람까지 내가 설득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생각은 자유다. 단지 내 기분이 불쾌할 뿐. ⇨ 그러나 내 기분은 내가 컨트롤해야 하는 영역이다. ⇨ 불필요하게 무뢰한에게 쓸 감정은 없다.
와이프가 돌아왔고, 그냥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야기한다. 며칠 남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좋은 것만 보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보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사실 내 안에서 내가 결정하는 거다. 이 모든 것들, 그러니까 비선택적 불쾌도 나에게는 좋은 것으로 다가올 수 있는 거다. 그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