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쓰는 일기 #4
21 Août 2024
프랑스에서 쓰는 일기 #4, 파리 하계 올림픽과 에어컨
유럽 여름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올림픽 덕분이다. 물론 거의다 욕이지만.
유럽은 몇 해 전부터 폭염에 시달린다고 익히 들었었다. 또, 에어컨이 없는 것으로도 악명 높다. 프랑스에 오기 전 가장 걱정했던 부분도 에어컨 없는 여름이었다. 실제로 에어컨이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 백화점과 슈퍼, 몇몇 상점들이 전부다. 가정집에는 거의 대부분 에어컨이 없다.
올림픽 얘기를 잠깐 하자면, 프랑스와 올림픽 위원회는 선수들 버스와 숙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 이유는!? 바로 탄소중립.
올림픽이라는 거, 운동으로 지구촌 하나 된다는 제일 목표도 있지만, 사실 개최국의 선진 문물을 보여주는 좋은 자리다. 프랑스는 친환경, 개방성, 화합 같은 메시지에 방점을 찍었다.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게 정말 친환경 때문일까? 침착맨 유튜브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중계 센터는 경량 패딩을 입어야 할 만큼 냉방을 많이 쐤다.
다시 에어컨 얘기로 돌아와서, 파리에서 에어컨 없이 살기에 대해 변론하자면.
우선 이번 해 여름, 파리에서 30도가 넘을 만큼 더운 날은 5일 내외였다. 그러니까 한국만큼 그렇게 덥지도 않다. 몬순 기후도 아니기 때문에 습도도 낮다. 에어컨을 쐬는 것과는 물론 비교할 수 없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금방 서늘해진다. 더워서 잠을 못 잔 날은 적어도 없었다. 일교차가 꽤 큰 편이다.
두 번째, 프랑스인들만 놓고 보자면 그들은 에어컨을 싫어한다. 동료들과 에어컨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여름은 더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름은 더워야 하고, 더운 게 자연스러운 거다. 밖에서 부는 바람을 쐬거나, 선풍기, 부채질을 하는 것과 에어컨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에어컨은 자연스럽지 않은 거다.
유럽의 에어컨과 폭염을 다룬 다큐를 본 적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에어컨을 쐬고 싶어 하는 것을 ‘미국병’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별게 다 미국이다.
(프랑스와 다르게 이탈리아는 습도가 높아서, 몇 해 폭염을 맞고 에어컨 보급률이 굉장히 늘었다는 후문)
세 번째, 실외기 설치가 곤란하다. 도시 경관 관리 기준이 굉장히 엄격한 나라기 때문에, 에어컨을 무조건 건물 옥상까지 올려야 한다. 당연히 그러면 실외기 설치 비용이 높아진다. 이건 한국에서 그렇게 할 경우도 미터당 추가요금이 있다. 그런데 이 나라, 인건비가 어마어마한 나라다. 건물도 오래됐을뿐더러, 자가가 아닌 이상 실외기를 밖으로 빼기 위해 벽에 구멍도 못 낸다. 그러니까 총체적으로 실외기 설치가 곤란하다.
네 번째, 전기료. 이건 정말 의문이다. 독일이 전기료가 비싼 건 이해하겠다. 원전도 안 돌리고, 신재생 에너지에 몰빵 했는데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으로 가스마저 끊긴 상황이니까. 그런데 이 나라, 원전 펑펑 잘 돌리는데 왜 이렇게 전기가 비싼 걸까? (물론 영국, 독일에 비하면 싸다. 그리고 한국이 비정상적으로 싼 거다…)
(1kWh 당 한국 0.1달러, 프랑스 0.21달러, 영국 0.47달러, 독일 0.52달러)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탄소 배출에 큰 영향을 주는 것 맞다. 그러나 올림픽 선수단 숙소에 에어컨이 없고, 선수들 이동 버스에 에어컨이 없는 게 탄소 중립 때문이라는 건 정말 구차하다. 심지어 각 국가별로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는 돈 안써용). 어떤 의미에서 경제력이 좋은 나라는 설치하고, 못 사는 나라는 설치 못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선수들에 대한 얘기고, 파리에 사는데 에어컨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에어컨 없이 창문 열어놓고 선풍기에 의지해서 자던 날, 왜 여기서 이렇게 사서 고생하나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여름과는 확연히 다르다. 습도가 낮으니 그렇게 불쾌하지 않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벌레가 적다. 모기가 잘 없다.
내일은 이거에 관해서도 일기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