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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M May 15. 2019

더 나은 사회가 무언지  진짜로 모르겠다

#02, 2019, KM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감히 생각하는 20대의 정치 관심도에서 평균 이상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치 시사 프로그램을 몇 개 챙겨보고, 몇몇 라디오/팟캐스트를 챙겨 듣는다. 조중 경한 정도 언론사의 정치 주요 기사를 찾아본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은 스스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정치혐오 또한 깊어져 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 전 대통령의 탄핵에는 대단히 찬성했지만, 현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걸지도 않았다. 정치는 누가 하든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들끼리 술 먹으면서 했던 이야기, 덜 병신 고르는 게 투표다, 라는 말이 정치 바닥에서는 어쩌면 진리라고 봐도 될 거다.

 

 

정치는 누가 하든 도긴개긴인데, 그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다. 괄목할 만큼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해서 국민들의 의식이 민주주의라는 지향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아직 식민 지배로부터의 변곡점 언저리에서 헤매고 있을 수도 있다. 아직도 산업화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데, 결코 틀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무관심이다.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정치인을 '악'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는 나의 정치혐오를 억누르고 말해도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데,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나은 내일, 더 나은 국가, 더 나은 사회가 아니라, 본인들의 재선이라는 것이 바로 그거다. 그러므로 근래 들어 가볍게 볼 수 있는 정치 시사 프로그램은 절대 '악'으로 표상되는 정치인들에게는 자신들의 비행과 태만을 감시하는 불특정 다수의 등장으로 씁쓸한 노릇일 것이다.

 

 

또 생각되는 두 번째 이유는, 언론의 소몰이에 휘둘리는 것이다. 나의 비관주의를 탓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우리 언론이 내일을 위한 소신을 가지고 보도 자료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판을 옮긴 신문사들은, 구독과 광고료의 노예가 아니라, 클릭수의 노예가 되었다. 더 자극적인 제목, 더 악랄한 제목으로 그들은 사람들의 손가락에 구걸을 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신문사를 기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관계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런데 그러한 자극적인 제목들의 자극적인 경쟁은 결국 뜬금 없는 결과들을 뱉어낸다. 본질이 아닌 것들로 사람들을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결국에는 양비론으로 끝난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 이 사회가 더 나아지려면 어떤 것이 필요하다! 결과를 낼 수는 없다. 그러나 똑바로 보는 것은 모두에게 필요할 것이다. 본질을 보는 것. 투기냐 투자냐, 누구의 고등학교 동창이냐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땅값이 300퍼센트 올랐는지 31퍼센트 올랐는지, 31퍼센트 올랐다 금년에 다시 내렸는지,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모든 것을 음모론으로 보게 될 소지가 있지만, 왜 이 시기에 초선의원의 이슈를 이렇게 많이 봐야 하는지, 재판을 청탁했다던, 그게 법사위 관행이라던 여의도 스타들은 모두 어디 갔는지.

 

 

나는 산업 역군들을 참 싫어한다. 우리 아버지도 산업 역군이시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돈을 최고의 가치로 보신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런 인프라도 없었다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위해서 우리가 잊어왔던 수많은 것들 또한 부정하면 안 된다. 이 시점에서도 오직 잘 살아야지, 다른 건 몰라도 경제는 성장해야지 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결정하는 건 오직 나의 아버지들만이 아니다. 나와 나의 친구들이 그것을 결정해야 할 거다. 그런데 진실을 볼 수 없다면, 아버지들의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거다.

 

 

더 나은 사회가 뭔지 진짜로 모르겠다. 그렇지만 더 많은 사람이 진실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회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좋은 사회일 거다. 내 친구들이, 그리고 내가 오늘 미세먼지 같은 거짓들과 진실을 덮으려는 자극적인 이슈들, 현빈과 손예진의 연애 같은 게 아니라, 진실을, 그러니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갖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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