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M Jun 17. 2019

그런 인간

초등학교 때 교회 주일학교에서 악기를 가르쳐주는 클래스가 있었다. 나는 중학생 형들 사이에 껴서 토요일에는 드럼을 배우고 주일 저녁에는 기타를 배웠다. 내가 가장 어렸기 때문인지, 언제나 형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더뎠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한 명씩 드럼 앞에 앉을 수 있을 즈음부터 나는 나의 실력 없음이 탄로 나는 것이 두려워 매일 밤 집에서 스틱으로 베개를 두둘겼다. 그 까닭으로 나는 그 클래스에서 곧잘 하는 아이로 칭찬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내가 더 많은 노력을 해서 형들보다 잘하는 게 아니라 재능이 있다고 믿어버렸다. 문제는 그때만 그런 게 아니라, 불과 얼마 전까지 나는 어떤 일에 익숙해져 평범한 능숙함을 보이는 모든 행위를 모조리 재능이라 믿어버리는 심각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있었다는 거다.


나는 그 중학교를 거치며 여러 가지 악기에 손을 댔다. 4분의 4박자 찬송에 맞춰 드럼을 칠 수 있게 될 즈음, 통기타 클래스가 열렸고, 코드 반주 클래스가 열렸고, 바이올린 클래스가 열렸다. 나는 이미 내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믿어버렸으니 그 믿음으로 그것들을 하나씩 주파해 나갔다.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를 갈 즈음 나는 서울에서 울산으로 이사를 갔다.


어머니는 울산으로 이사해 생전 처음으로 나를 종합학원에 보내셨다. 좀 더 빨리 또래들과, 그들의 말투에 친해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현명하신 판단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빠르게 친해졌고, 매일 눅눅하고 어두운 피시방에 처박혀있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새로운 게임을 했다. 컴퓨터 속 세계는 악기 세계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그것에 금세 익숙해졌고, 어느 정도 실력의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나는 또 그것을 어떤 재능으로 여겼다. 한동안 정말 게임에만 빠져 지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는 게임과 깔끔하게 작별을 했다. 공부에 재미를 붙이려 부단히 노력을 했다. 초중생 시절 악기와 게임에 빠져있던 터라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들을 쫓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오르는 성적이 눈에 보이자 나는 또 이것을 어떤 재능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2 말미에 한계에 부딪혔는데, 나는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노력하지 못했다.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나는 내게 또 다른 재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곰곰 생각하니 나는 또래들보다 노래를 잘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모님은 내게 개인 레슨을 붙여주실 수 있는 정도 여력은 있으셨다. 나는 다름 아닌 그런 이유로 음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다시 한계는 찾아왔다.


다음 이야기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다. 나는 또 다른 곳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그것을 재능이라 믿고, 한계에 부딪히고, 포기하고, 다른 것을 찾고 재능이라 믿고…


나는 지금 또 한계에 부딪혀 있다. 이제는 이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므로, 또 다른 길을 찾기 바쁘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떤 지점에서 내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아도 되는 곳은 없을까. 극복해야 하는 한계가 없는 곳. 나를 막아서는 장애물이 없는 곳.


이런 까닭에 나는 아주 어중간한 인간이 되었다. 모든 지점에서 어중간한. 게임 캐릭터로 친다면 나는 모든 어빌리티가 중간인 캐릭터다. 대단히 강하지도 대단히 민첩하지도 대단히 단단하지도 않은. 그저 그렇게 강하고 그저 그렇게 민첩하고 그저 그렇게 단단한. 어디에도 어울릴 수 있지만, 어디에도 필요하지는 않은 인간이 되었다.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그런 인간 말이다. 한계점까지만 사용하기 좋은. 그런 인간.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책임감과 두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