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한 마리 입양했다. 그녀(!?)의 이름을 파이라고 새로, 지었다. 그녀는 활동량과 식탐이 말로 이루 다 못한다고 정평이 난 라브라도 리트리버 개린이다. 어디서 버려졌는지조차 모르는 유기견이었던 그녀는 좋은 마음을 가진 어떤 가족에게 입양되었었다. 그러나 그녀의 채워지지 못하는 활동량과 교육 결여는 문제 행동으로 이어졌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그녀는 화장실에 갇혀 지내는 신세였고, 결국 세 달만에 파양 된다. 고맙게도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사교성 좋은 리트리버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강아지다. 그녀는 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오는 내내 침을 질질 흘리며 멀미를 했다. 내 바지 위에 두 번 토를 하고, 엄청난 양의 대소변을 배출하셨다. 무리한 짓을 하는 것 아닌가 스스로 생각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며칠 만에 적응했다. 사나흘 만에 실외 배변 교육에 성공했고, 바뀐 사료에도 잘 적응했다. 무엇보다 내가 잘 적응했다. 아침잠을 포기하고 매일 같이 산책을 두 번씩 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애인과 나의 삶은 거진 파이에게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혹은 교대로 파이를 케어하게 되었다.
내가 조금 놀란 것은 나의 모습 때문이다. 거창할 것도 없어 보이는 반려견 산책을 하면서 나는 조금 놀란 거다. 내가 이렇게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나 생각했다. 고작 하루 산책 두 번 시키는 걸로 무슨 책임감 운운하냐고 말하면 사실 할 말은 없지만, 나로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어떤 것을 책임지고 맡아서 해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인간 부류다. 포기가 쉬운 인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귀찮고 번거로운 것은 빨리빨리 바꾸고 제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그러니 내가 진심을 다해서 반려견을 케어하는 모습이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낯설 만도 하다.
동시에 여름휴가 준비를 하고 있다. 한 달쯤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 가려고 준비 중이다. 처음 계획은 베를린이었다. 예산은 300만 원이 조금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변수가 생겼다. 여러 가지 돈이 나갈 곳이 생기기도 했고, 예정에 없던 무옵션 전세로 이사도 했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파이가 우리에게 오기도 했다. 그래서 베를린 경비를 맞추는 게 빠듯해졌다. 다녀오면 카드 할부금과 소정의 적금으로 빠져나갈 돈을 빼놓고는 여윳돈이 없을 수도 있다. 물론 여유의 돈이 필요한 지위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쓸 수 있는 현금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두려운 일이 될 줄 몰랐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고사하고, 나는 입에 풀칠만 하고 살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여윳돈이 없다는 것을 신경 쓴다는 것이 조금 슬프고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일말의 책임감이 있는 인간이 된 것이 아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행동은 곧 책임이라는 방정식 위에서 살면서 얼마간 사회화되고 현실 논리를 내면화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나. 나는 그 단순한 방정식을 외면하기 위해서 새로운 방정식을 세우고, 그 방정식을 위해 또 새로운 방정식을 세움으로써 책임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었다. 오래된 애인의 많은 부분을 신경 쓰고 염려하는 것, 강아지를 입양하고 강아지를 성실히 케어하는 것, 여행을 떠나 20대 초반처럼 큰돈을 무리 없이 마구마구 쓰는 것. 이런 것으로부터 내가 의무나 가책을 느끼는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행동이나 행동의 결여가 가지고 올 결과에 대해 나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일진보 한 것이 아니라, 겁 많은 인간으로 일퇴보 했다.
세부에서 캐녀닝을 했다. 코스가 잘 짜여 있었는다. 처음에는 3-4미터에서 다이빙을 한다. 그다음은 8미터, 10미터, 15미터로 늘어나는 식이다. 현지 가이드는 처음에 잘 뛰어내리면 뒤로 갈수록 무섭지 않게 재밌을 거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뒤로갈 수록 재미가 있었다. 15미터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특별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두렵지 않다는데 방점이 있다. 두렵지 않은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높이를 더할수록 당연히 더 무서웠다. 사람들은 더 작게 보였고, 바위들은 더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15미터에서 느낀 그 두려움을 이겨냈을 때 오는 즐거움은 4미터에서 뛰어내렸을 때 오는 그것보다 확실히 더 컸다는 게 중요하다.
인생이 캐녀닝이라면, 나는 안전교육을 마치고 이제 다이빙 몇 번을 해본 것이리라. 큰 마찰 없이 깔끔히 물속으로 들어간 적도 있을 거고, 중심이 흐트러져서 살가죽이 시뻘겋게 찰과상이 난 것처럼 상흔이 남았을 수도 있을 거다. 점점 높아져가는 높이에 나는 여전히 두렵고, 어제보다 오늘 더 두렵다. 앞으로 더 두려운 높이들이 많이 남았을 거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무릅써 도움닫기를 끝내고 중력에 몸을 맡기면 비로소 이 두려움 뒤에 감춰진 삶의 진정한 즐거움을 일면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아래를 바라보면 떨고 있다.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시선을 정면에 두고 땅에서 발을 떼는 거다. 그렇게 하면 수면에 닿기 전에 이미 나는 의무와 결여의 두려움의 족쇄가 아닌 주도적 실천의 즐거움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