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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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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강아지의 이름은 파이다. 원주율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가장 많고, 케이크류의 파이냐고 묻는 사람이 그다음으로 많다. 와이파이의 파이냐는 다소 신박한 질문도 있었다. 나랑 꽤 관계가 가까운 사람이라면 내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 거다. 우리 집 강아지의 이름은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왔다.
파이의 견종은 ‘아마도’ 라브라도 리트리버이다. ‘아마도’인 이유는 순종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상관없다. 파이가 이 글을 못 읽으니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처음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을 때, 얼마간의 값을 치르고 전문 브리딩 업체에서 데려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국인은 그 이름도 찬란한 ‘백의민족’인 탓인지, 강아지를 볼 때도 견종과 순종 여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한국인이다. 나도 견종의 순수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떤 쇼 프로그램을 본 적 있다. 여러 전문가들이 때로 나와서 토크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중 한 명이 대형견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미묘한 과시욕이 있다는 말을 했다. 강아지를 키우지도 않았었고, 키우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없었던 때인데도 불편하게 들렸다. 전혀 과학적인 뒷받침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논리적 뒷받침이 될 만한 것은 그가 입고 있던 하얀 가운이 전부였다. 근데 막상 대형견을 입양하려 하니,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던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말 인정하게 되었다. 유전병이나 이런저런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기왕이면 순종이 좋지 않겠어? 싶었던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 아이가 순종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래서 리트리버에게 호발 하는 관절성 질환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유전병이기 때문이다. 파이의 부모가 누군지 모르니, 부모세대가 그 병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는 거다. 우리는 추후에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따를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파이를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파이는 생후 2개월 즈음 유기되었고, 3개월 즈음 어떤 화목한 가정에 입양되었다가, 5개월에 파양을 당하고 우리에게로 왔다. 파이는 유기견이고 파양견이다.
내가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펫 샵이나 브리더에게서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을 싸잡아 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누군가를 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뒷산에 강아지를 버리는 나쁜 사람들을 욕할 일이지, 적어도 대책 없이 강아지를 입양하는 사람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그저 파이가 우리에게 온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파이와 지내면서 느끼는 작은 것들을 이렇게 두서없이 써나가보려 한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라이프 오브 파이>, <파이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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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를 데려오기로 결정한 후로, 내 유튜브 피드는 강형욱을 비롯한 반려견 전문가들의 영상으로 가득 찼다. 나는 어떤 대단한 각오와 결의에 찬 확신으로 파이를 입양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파이를 데려오면서 느낀 것은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진원지를 알 수 없는 미안한 감정이었다. 강제 교배 당해 열 번이 넘는 임신과 출산으로 결국 사망한 농장의 강아지, 펫 샵에 입양되었다가 명절만 되면 야산에 대거 버려지는 강아지, 각종 기이한 방법의 학대를 당하는 강아지, 일 평생을 건물 옆에 묶여서 생활하는… 이러한 입에 담고 일들을 매스컴을 통해서 너무 많이 접했던 탓일까. 나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일들에 사죄하는 마음을 갖게 된 거다. 더욱이 앞서 말한 듯 파이는 두 번에 상처를 받은 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출근 전에 일어나서 꼬리를 흔들며 기지개를 켜는 파이에게 지난밤 삶아놓은 계란과 적당히 잘 구운 닭가슴살을 사료에 섞어 준다. 파이는 또래보다 몸무게도 몸의 크기도 작다는 수의사의 말이 맘에 걸려서다. 파이가 정신없이 밥을 먹는 동안 양치를 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옷을 주워 입고 모자를 쓴다. 현관문을 열면 뛰쳐나가는 버릇이 있는 파이를 위해 현관문 앞에서 30분이 넘도록 ‘기다려’ 교육을 한다. 리드 줄을 마구 당기는 파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방향을 바꿔가며 간식을 주고, 위험한 상황일 발생할 때릴 대비 해 ‘콜링’ 연습과 ‘와치’ 연습을 한다. 더 이상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면 몸이 휘둘릴 만큼 새게 꼬리를 흔드는 파이가 나를 반긴다. 나는 파이에게 다시 밥을 주고 하네스를 채우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현관문 앞에서 기다려 교육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와치 교육을 하고 리드줄을 짧게 잡았다 길게 잡았다 반복한다.
파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당시 산책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접종만을 한 상태였다. 그런 파이에게 세 번의 종합 백신과 여타 다른 접종을 해줬다. 산책을 많이 안 해봤던 탓인지 잔디에서 몇 번 구르고 들어온 날부터 배에서 두드러기가 났다. 병원으로 갔고 병원비가 꽤 나왔다. 며칠 지나지 않아 재채기를 하기 시작한 파이는 이내 감기를 앓았고 또 병원에 갔고, 병원비가 꽤 나왔다. 어릴 때는 좋은 사료를 주는 것이 좋다는 말에, 전 주인이 보내준 사료를 놔두고 그것보다 몇 배 비싼 가격의 사료를 샀다. 고구마와 계란과 닭가슴살과 블루베리와 브로콜리와 황태와 강황을 샀다. 장난감을 사고, 하네스와 리드줄을 사고 애견용 우비를 샀다. 애견용 샤워 헤드를 사고 애견용 타월도 샀다. 첫 생리가 시작하기 전 중성화 수술을 하는 것이 유방암 예방에 가장 확실하다는 말에 수술도 서둘렀다. 한 달 만에 백만 원이 나갔다.
이 모든 일들이 한 달 새에 일어났다. 나는 파이가 우리 집에 온 한 달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안에서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는 내가 이렇게 공감능력이 뛰어난 박애주의자인 줄 몰랐다. 단적인 예로,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보신탕에 큰 반감이 없다. 보신탕을 먹는 사람을 야만인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단지 그 ‘식용견’을 도축하는 방법에 대한 비윤리적 행동을 비난을 할 따름이다. 강아지가 돼지나 소나 닭보다 지능이 높다는 이유로 식용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된다는 논리는 뒤를 덜 닦은 느낌이다. 강아지는 집에서 ‘키우'지만 소 돼지는 아니지 않냐고 말하곤 하는데 그것은 완전히 틀렸다. 최근에는 애완 돼지를 키우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저 신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술자리에서 말하면 냉혈한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파이가 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서 거듭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런 생각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동물은 동물이고, 사람은 사람이라는 생각. 이런 논법으로 나는 파이를 대한 나의 애정을 설명할 수 없다. 파이를 대하는 나의 마음의 근저에 깔려있는 ‘죄의식’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기 오류는 여기서 발생한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지만, 실은 동물을 대하는 인간들의 극악한 태도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었나 싶은 점이다. 나는 때려 죽여도 잠은 꼭 충분히 자야 되는 성향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잠은 꼭 잘 자야 된다. 사실 그보다 아침잠이 무진장 많다. 스물여덟 해 살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큼 싫은 것이 없다. 그런데 내가 새벽 어스름이 여전히 남아있는데 파이에게 하네스를 채워 밖을 나선다. 사람도 없는 공원 구석구석을 다니며 냄새를 맡게 해 주고, 잔디 숲을 헤치고 들어가 똥을 치운다. 나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 됐다. 어떤 날은 여섯 시간 어떤 날은 일곱 시간을 넘도록 잘 수가 없다. 이런 지극 정성에 파이는 실내에 배변하지 않는 강아지가 됐다. 강형욱의 지론으로 비추어보면 참 잘 된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녀가 열몇 평 아파트에서 자신의 똥오줌 냄새를 맡으며 사는 것은 괴로운 일이라고 하니.
세 번째는 마음으로 낳고 지갑으로 기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내 얘기인 듯하기 때문이다. 나는 계획적으로 돈을 쓰는 스타일이다. 충동구매를 하는 일은 좀에 없다. 500원짜리 물을 사는 것 마저 입출금 기록 어플에 써넣을 정도다. 한 달 생활비는 얼마, 적금 얼마, 보험금 얼마, 학자금 원금 상황 얼마, 이런 식이다. 그런데 내가 파이에게 들어가는 병원비며 수술비며 식비며 장난감비며 하는 것들을 전혀 계획하지도 않고 쓰는 모습에 놀라는 거다. 좀 없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얼마나 구두쇠인가 하면, 식비를 아끼기 위해 마트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장을 봐서 집에서 밥을 챙겨 먹는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거기서 아낀 돈으로 친구를 만나고 애인의 선물을 사고 적금을 넣는다. 그런데 소파를 뜯어놓고 베개를 갈가리 찢어놓는 파이에게 돈을 쓰며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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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욱은 강아지의 행동을 바꾸는 게 아니라 보호자의 행동을 바꾼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 훈련사의 모든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떤 면에서는 파이가 나의 삶 자체를 바꿔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누군가 삶으로 훅 들어온다는 것. 그것이 사랑하는 애인이 아니라 어떤 다른 존재라는 것이 너무 낯설지만, 훅 들어온 존재가 나와 나의 애인의 삶을 들었다 놨다 흔들었다 멈춰 세웠다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