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는 가난할 수 없으니까.
어느 도시에 가도 가난한 동네는 있다. IMF로 집안이 망한 흔하디 흔한 사연을 가진 우리 집 역시, 집을 잃고 그 가난한 동네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아직 그 동네에 산다. 대구의 할렘가라는 자조 섞인 말을 듣는 동네. 다들 고만고만하게 가난한 뭐, 그런 곳이다. 내게 문제집 아직 안 샀으면 가지고 가라며 머리를 쓰다듬던 담임 선생님의 짠한 눈빛이 불편했을 뿐, 불행하진 않았다.
정작 이거 이상한데?라고 느낀 건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돈을 버니까, 기회라는 게 생겼다. 사고 싶은걸 사고, 하고 싶은 걸 하고, 돕고 싶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아끼고 아껴 모은 푼돈과 알바비를 통째로 넣어야 겨우 갔던 해외여행을 몇 달 절약하면 떠날 수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밥 사 주는 기쁨을 누리게 됐고(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떠는 게 세상 즐겁다.) 매달 나가는 후원금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비싸서 엄두가 안 나던 스플린트(치과-치료 장치)도 맞췄다.
돈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나’와 ‘타인’을 위해 더 많은 걸 해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돈 없었을 때 이런 기회를 싹 다 날려버리고 지낸 거구나. 돈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만 주구장창 들었는데 비록 쥐꼬리 만해도 나는 돈이 있을 때 행복했다.
돈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에 관해 배운 첫 번째였고, 저축의 이유였다.
돈이 이렇게 좋은 거면 우리 부모님은 왜 가난할까. 365일 중에 360일은 일하러 가던 아빠와 집에서 먼 거리에 있는 공장으로 출퇴근해야 했던 엄마. 근무시간이 그 정도로 엄청나면 돈을 많이 받았어야 맞는 건데. 왜 우리는 가난하냐고?!
가난도 등급이 있는지 기초수급도 차상위 계층도 아닌 우리 집은 나라 돈을 못 받았다. 친구 말로는 집이랑 차가 있으면 지원을 못 받는다던데 우리 집은 팔아도 전세금도 안 나올 노후 빌라인데. 킁. 아무튼. 노력하는 만큼 돈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더 열심히 공부했고 쉬지 않고 일했는데. 용돈 받으면서 카페에서 취업준비한다는 친구를 보며, 난 카페 갈 돈이 없어서 밖에 못 나갔는데 싶어 열등감 섞인 씁쓸함을 느꼈다. 걔는 최근에 좋은 회사 취업해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한다. 친구의 취업에 기쁜 마음 반, 에라이, 부럽다! 반이다.
최저시급만큼의 월급으로 하루 절반을 노동으로 쓰는 지금 직장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면? 인생 너무 불쌍한데, 이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싹 다 모아서 나한테 준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을 불행이라고. 노력하면 다 된다는 건 개뻥이야!!!!!라고 외치고 싶었다.
노력은 기본이지만 노력으로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인생, 원래 불공평한 거 아니겠나. 내가 외식 안 해서 아끼는 금액보다 내 연봉 2배인 사람이 펑펑 쓰면서 저축하는 게 나보다 많다는 현타를 여러 번 겪으며 돈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만큼 중요한 게 방법이고 방향이다.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는 부자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을 텐데 그게 뭘까. 배운 거라고는 가계부 쓰는 거랑 적금밖에 몰라서 돈 공부를 했다.
경제/재테크 분야 서적을 읽었고 펀드를 시작했고 시드머니를 모으기 위해 최대한 저축액을 늘렸다. 그렇게 3년 남짓 시간이 지나 시드머니가 모였고 주식투자를 시작했다.(파란불(-)이지만 괜찮아....)
막상 해보니까 완전 재밌고 겁나 어려운 게 돈 공부였다. 부자가 되는 공식은 분명히 존재했으며 부자는 무조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온갖 불법 저지르는 부자가 있는가 하면 어려운 사람 도우면서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착실한 부자도 존재했다.
지금 부자가 됐냐고? 아직 아니다.
내 기준 부자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가족들 노후 걱정 안 해도 되는 상태다. 여전히 부자들의 마인드를 배우려 구독을 누르고, 주식시장에서 애보다 못한 수준으로 투자 중이다. 하지만, 이제는 돈을 눈덩이처럼 데굴데굴 굴리는 법을 알 것 같다.
몇 년이 더 지난 뒤에 이 글을 읽으며 '아, 나 이랬구나?' 하고 웃는 날이 오기 바라며 나는 오늘도 주식 어플을 켜고, 세계 뉴스를 보고, 이 기업에 투자해도 되는가를 수십 번씩 의심하며 나아가고 있다.
느릴지라도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