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찐빵 Sep 21. 2020

사람이 질려

나 하나 감당하기 벅찬 요즘.

‘나 사람이 질려. 진짜, 이제 사람이 질려.’      


그때 누구한테 이 말을 했더라. 첫발을 뗀 아르바이트부터 지금 직장까지 수많은 불특정 다수를 만나왔고 지금도 만나고 있다. 한 사람의 생에서 이토록 많은 말의 상처와 무례함을 마주하는 게 맞는 걸까 싶을 만큼.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 단 하나도 가입하지 않았지만 이미 벅찬 인간관계에 나는 직접 가위를 들고 그 관계를 하나하나 싹둑 잘라버리는 상상을 한다.     


이게 다, 내 마음에 빈틈이 사라져서 그렇다. 예전보다 더 많이.


나에게 고민과 힘듦을 토로하는 이의 불행에 무게를 단다. 너무 가벼운데? 내 것보다 가벼운 불행은 배부른 소리로 들리고, 친구의 좋은 소식에 내 인생은 아직 저 뒤에서 헤매고 있음을 실감한다. 내 곁에 놓인 가까운 연결선이 나를 힘들게 한다. 불특정 다수와 달리 외면할 수도 끊을 수도 없는 가까움은 때로 독이 된다.     




가만히 방에 틀어박혀 글만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해결해나가야 할 수많은 문제 앞에서 천천히 내 안의 힘을 채우고 싶다. 내 안의 힘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들 힘든 일이 있으면 나를 찾는지. 안다, 공감받고 싶은 마음. 그러나 아무도 그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 뒤에 이어질 문장을. 가벼워진 당신의 슬픔 반을 고스란히 받고 서있어야 하는 나의 슬픔 앞에는 쉽게 침묵이 내려앉는다. 당신들이 던진 슬픔과 나의 슬픔이 쌓여 내 안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어렸을 때는 좋았다. 한 사람이라는 우주를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말을 들어주는 것이니까. 타인이라는 행성에 다가가는 들어줌의 시간이 마냥 좋았다. 마음의 여유가 넘치고 내면이 평온한 상태였을 때만 가능한 것임을 왜 몰랐을까.      


나 하나 감당하기도 버거워서 기대고 싶은 좋은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요즘, 잠들기 전 찰나의 순간에 그려본 행복한 미래에 겨우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나는 귀를 닫고 싶다. 그래선지 예전처럼 누군가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슬픔과 아픔을 더 쌓지 않기 위해 감정에 무뎌진다.


인간의 생존본능은 이토록 이기적이다. 부서지는 내 마음을 이어 붙이기 위해 타인 앞에 무감함을 던진다. 언제든 무너져버리라고 불행을 퍼붓는 인생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물으면 말할 수 없다. 사람이 겪는 ‘감정’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데다 나처럼 살아보지 않으면 모를 감정이다. 기쁨이면 모를까 슬픔을 얹어주고 싶진 않다.


그저, 마음이 좀 쉬었으면 좋겠다.


이 순간에도 글을 오해하고 누군가 상처 받으면 어쩌지? 나를 이기적으로 보는 독자들이 많아지겠다는 걱정에 바빠지는 마음이 생존본능을 더 발휘해 완전히 귀를 닫아버렸으면. 그러기엔 내일의 출근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요가를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