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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Dec 12. 2020

우리의 서른

한 달도 안 남았네!

이맘때면 오가는 ‘시간 참 빨리 간다.’와 ‘곧 연말이네.’ 다음에 붙는 말이 하나 더 생겼다. 내년에 서른이 된다는 말. 서른이 뭐라고 이렇게 난리인가 싶다가도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고 생각하니 신선하고 이상하다. 이제 2랑 친해졌는데 갑자기 3이랑 친하게 지내라니.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곧 다가올 3이 어색하다. 동갑인 친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코앞에 서른이 와있어서 짜증과 슬픔과 기대가 뒤섞인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아홉수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다.      



동화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 상담을 하고 싶다는 꿈, 자신이 쓴 작품이 드라마화되면 좋겠다는 꿈, 무난한 직장에 다니며 저녁시간을 자유롭게 보내는 꿈. 다양한 꿈을 가졌던 우리는 똑같은 일상을 살아내는 회사원이 되었다.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회사원인 우리는 이제 돈 많은 백수를 꿈꾼다.      




10대 때는 떡볶이 먹으면서 모의고사 점수에 일희일비하고, 대학생 때는 인간관계와 짜증 나는 시험과 끝없는 과제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는데 이제는 사회생활과 결혼, 재테크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화의 주제는 바뀌어가고, 우리 안의 상상의 폭은 점점 좁아져 간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겠다고 번역기를 주구장창 돌리고 편지 쓰던 열여덟. 여행책자만 들고 유럽으로 갔던 대책 없던 스물셋과,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신나게 퇴사를 외쳤던 스물다섯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글 쓰는 작가, 너는 그림 그리는 작가. 그 한 문장이 스무 살부터 스물아홉인 지금까지 완성되지 못할 줄은 너도, 나도 몰랐지. 그럼에도 너무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우리는 또 한 번 30대에는 반드시! 를 외친다. 20대는 이렇게 흘러가니, 30대에는 꼭 이루자고. 천천히 가면 그때에는 이루어져 있을 거라고 긍정 회로를 연결시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서른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20대의 십 년이 힘들었으면 30대는 덜 힘들 거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갈수록 용기가 줄어들어가는 우리지만 아직 대책 없는 긍정 회로를 연결시킬 힘은 남아있으니. 돈 많은 백수를 꿈꾸며 연금복권 사는 S의 당첨을 기원하고, 거지 같은 직장 말고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길 바라는 K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저작권을 차곡차곡 쌓고 싶다는 J와 번역가가 될 거라는 S의 꿈 또한 이루어지면 좋겠다. 


우리의 서른은 여전히 서툴고 어렵겠지만 고난은 이미 숱하게 겪었으니 가뿐히 이겨내고 나아가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 번역가가 될 거라던 S가 대학원에 합격했다. 너의 서른에 다가올 새시작을 축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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