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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찐빵 Jan 03. 2024

정답고 알뜰한 리더기

나의 첫 이북리더기

 나에겐 구매한 지 5년 넘은 e-book리더기(전자책 읽는 기기)가 있다. 버튼 한 번에 화면이 켜지는 핸드폰에 비해 3~4초는 꾹 누르고 있어야 전원이 켜진다. 화면이 나타나기까지 .... 점.점.점.들의 느린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봐야 한다. 


 사람이라면 어르신에 속할 나의 리더기는 가끔 전자책을 열다 멈추거나, 페이지를 넘기다 버벅거리는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요즘 나오는 가볍고 빠른 리더기에 비하면 거북이지만 나름대로 엉금엉금 작동하려 애쓰는 녀석을 볼 때면 웃음이 난다. 

나의 이북리더기. 크레마 카르타 플러스

 작고 좁은 내 방에 더는 책을 수용할 책꽂이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리더기를 구매했다. 산 지 5년이 넘어서 YES24 구매내역에 조회조차 안 되는 첫 리더기는 나의 일상을 알차게 채워줬다. 


 1시간은 잡아야 하는 출근과 퇴근 시간의 지루함을 재미로 바꿔줬고, 집 안의 고요한 적막을 깨줬고, 일상 속 무료한 빈틈을 흥미진진하게 채웠다. 



 온통 색으로 가득 찬 세상에 흑백화면을 가진 리더기의 검은 글자는 여러 생각거리와 깨달음과 설렘과 흥미를 담았다. 종이책보다 싼 가격에 즐겁게 장바구니에 전자책을 담곤 했다. 이제 전자책을 읽는 게 종이책만큼이나 익숙해졌다. 나는 새로운 리더기를 사려고 몇 번이나 검색하고, 리뷰를 보다가 포기하길 반복했다. 


 애틋했다. 고작 손보다 조금 넓은 검은 기계 하나가.


 소설, 에세이, 자기계발서 등. 리더기에 여러 책을 담고 비웠다. 인생이 술술~풀린다고 느낄 때면 자기계발서나 제법 무거운 주제의 책을 담았고, 사는 것이 버겁고 지치면 에세이와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을 담았다. 20대부터 30대인 지금까지의 내가 리더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내게 전자책의 세계를 알려주고, 손때가 묻고 묻어 더 묻을 곳도 없는 애틋한 나의 리더기. 


 미니멀라이프에 익숙해진 지금은 더더욱 리더기의 오랜 사용감이 반갑다. 사람, 동물뿐만 아니라 기계에도 정이 든다는 걸 알았다. 완전히 작동이 멈추기 전까지 조금 더 오래, 나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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