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에게 발송된 문자 한 통
"관리실입니다. 쓰레기 다시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내놓으세요. 다시 적발되면 무단투기로 신고할 예정입니다."
경고 문자를 받았다. 내가 쓰레기를 무단 투기했단다. 사진도 한 장 보내셨다. 쓰레기가 잔뜩 든 택배 상자다. 그 안에는 빵빵하게 찬 검정 비닐 봉지와 약상자, 양파 껍질로 추정되는 음식물 쓰레기, 꾸깃한 쇼핑백 따위가 들어 있었다.
서둘러 기억을 되짚어 보았지만 잡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버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저런 쓰레기는 어느 집에서나 나올 수 있는 보편적인 것들이다. 알쏭달쏭해하고 있는데 사진에서 수취인 주소를 발견했다. '충북 음성군 대소면 ㅇㅇ빌라'라고 쓰여 있다. 내 혐의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다. 충북엔 놀러 간 적도 없다. 친인척 중에도 그쪽에 사는 사람은 없다. 이보다 확실한 알리바이가 또 있을까. 즉시 답문을 보냈다. "저는 서울 사람입니다. 문자를 잘못 보내신 것 같네요"라고. 관리실 분이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쓰레기 무단 투기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쓰레기와의 인연은 그날 부로 시작됐다. 분리수거란 놈이 내 의식의 영역 안으로 성큼 들어와 버린 것이다. 감기 걸린 사람은 주변에 죄다 감기 걸린 사람만 보이고, 자식을 낳고 키우는 사람은 싱글일 때 보이지 않았던 동네 꼬마들이 눈에 계속 들어온다. 자기 일로 여겨져야 비로소 지각되는 세상이 있는 것 같다. 어찌 됐든 잘못 온 문자는 분리수거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분리수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제대로 하려니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다. 대부분의 페트병에는 상표명과 원산지, 주의사항 따위를 깨알같이 적어 놓은 띠지가 붙어있는데 이건 비닐이라 떼어서 따로 버려야 한다. 띠지에 그렇게 하라고 쓰여 있다. 우리 집은 정수기 물 대신 쿠팡 탐사수를 배송해 먹어서 띠지를 일삼아서 떼야했다.
개수는 많지 않았지만, 하나하나의 난이도가 높았던 건 플라스틱 빨대가 삽입된 봉지 음료와 고무마개가 달린 참기름병이었다. 빨대와 봉지, 마개와 병 사이에 일자 드라이버를 쑥 밀어 넣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들어 올려야 빠질까 말까 했다. 두어 개를 빼면 겨드랑이에서 땀이 났고 내가 왜 이런데 힘을 빼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나누는 1차 분리 작업이었다. 여기엔 번번이 가치 판단이 개입됐다. 분리수거를 철저히 해 종량제 봉투에 들어가는 쓰레기 양을 줄이면 내 돈을 아끼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절약과 환경보호는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고민할 것도 없이 분리수거 비중을 높이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분리수거에 공을 들이다 보면 시간이 하염없이 지나가 계획에 없었던 기회비용을 만들었다. 분리수거에 들어간 시간은 혼자 골방에서 최신 영화 리뷰 영상을 보거나 딸이 좋아하는 기린 동화책과 환상 체험북을 연달아서 읽어줄 수 있는 시간과 맞먹었다. 오후 늦게 시작한 분리수거가 해를 꼬박 넘긴 후에 끝나기 일쑤였다. 뇌가 일을 해야 하는 일도 그만큼 많아졌다. 퇴근 후 쉬러 들어간 뇌를 다시 불러내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10개면 ‘내 시간이냐, 환경보호냐’란 질문에 10번을 답해야 했다. 시간과 환경보호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였다.
나만 이런 고민을 하며 사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분리수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퇴근 후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분리수거장으로 가 플라스틱과 종이를 모아놓은 마대자루를 들여다봤다. 플라스틱 마대 안에는 생수 페트병과 요구르트병, 간장통 같은 것들이 계보 없이 쌓여있었다. 몇 개를 제외하곤 띄지를 떼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우유팩도 물로 세척한 뒤 잘라서 버려야 하는데, 그냥 구겨서 버린 것이 많았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제대로 버리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했다. 종이 박스 안에 아무거나 처넣고 슬쩍 두고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무책임한 사람은 충북 음성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단지에도 있었다. 어쩌면 나 또한 문자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 충북 음성 사람 같았을지도 모른다. 쓰레기란 것에, 분리수거란 것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왔던 나다. 새로 살 것만 생각하기도 바쁜데 버려진 것이라니. 잘못 온 문자 한 통은 사실 잘못 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앞으로의 삶이 피곤해질 것이란 걸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