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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쓰는 기자 Feb 27. 2021

왼손잡이 딸에게

이제 두 돌이 갓 지난 딸애와 함께 외할머니 집에 놀러 가 점심밥을 얻어먹을 때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는 새까만 손녀에게 왼손을 쓰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버럭 하셨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니 바른손으로 안 쥐 나!" 할머니에게 오른손은 바른손이고 왼손은 나쁜 손이었다. 장인어른도 옆에서 한 술 더 뜨셨다. "왼손을 쓰면 팔자가 꼬인다"는 것이다.


아이는 신기하게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바꾸어 쥐었다. 두 어른의 뾰족한 눈초리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껴서인지 정말로 그 말을 알아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모습이 왠지 짠해 보였다. 그렇다고 나설 수는 없었다. 아이 앞에서 두 어른의 권위를 깍아내리고 싶지 않았다.  


밥을 다 먹은 아이를 데리고 옆방으로 들어가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너 마음대로 하면돼. 그냥 밥만 잘 먹으면 되는 거야." 말을 하고 보니 꼭 DJ DOC가 부른 노래 가사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범생이 혹은 교회 오빠로 불리던 나는 TV에서 DJ DOC만 나오면 마음이 불편했다. 그들의 삐딱한 태도와 도발적인 눈빛이 내 안의 올곧음을 비웃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나이가 들어 아빠가 되니 DJ DOC가 할법한 말을 딸에게 하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아이가 말 잘 듣는 모범생이 되기보다는 좀 불량해 보이더라도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어찌 보면 참 무책임한 아빠다. 자신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잘못됐다고도 생각했던 길을 걸어가라고 등 떠미는 것과 다름없이 때문이다. DOC처럼 살아보지 않은 나는 그들처럼 사는 법을 모른다. 나보나 나이나 경험이 많은 사람, 학식이 뛰어난 사람 앞에서 좀 닥치고 있으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고 나답게 살아갈 의지도 부족했다.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식을 통해서 성취하려는 부모가 있더 다니, 이제 보니 내가 바로 그런 부모였다.  


아이가 날보고 빙긋 웃었다. 그 모습이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라고 하는 것 같아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그러나 다음 식사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녀석이 숟가락을 어느 손으로 쥐는지 주시했다. 오른손으로 잡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왼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내 바람대로 밥을 푹푹 퍼먹었다. 한동안 혼자만의 기쁨에 젖어서 아이를 가만히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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