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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쓰는 기자 Jun 18. 2023

소설을 써야 소설이 보인다

쇼미더머니 같은 랩경연 대회를 즐겨본다. 우리나라에 랩을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볼 때마다 놀란다. 벌써 11회째를 진행했는데, 래퍼 꿈나무들은 여전히 많다. 녹색창 지식인을 보니 쇼미12 언제 하냐는 질문 서너 개가 올라와있다. 원래 래퍼 지망생이었던 게 아니라 이 방송이 미친 영향으로 랩에 관심이 생긴 학생들이 많아진 것이리라. 호날두를 동경했던 킬리안 음바페가 명성을 위협하는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 것처럼 말이다. 랩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랩을 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물론 요즘엔 대세가 트롯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트롯 너무 지겹다..)


모든 경연이 그렇지만, 이 방송은 두 가지 재미를 줬다. 랩 자체와 랩을 보는 다른 래퍼의 리액션이다. 사실 내 귀엔 이 랩이나 저 랩이나 비슷하다. 뭐가 좋은 랩인지 알 수 없다. 랩알못이니깐. 이게 잘하는 건가? 싶을 때는 심사위원들의 리액션 본다. 그럼 대충 감을 잡힌다. 쌈디 원래도 큰 입을 더 크게 벌리고 춤을 추거나 제이팍 안 그래도 시한 눈을 동그랗게 뜨면 아 저 래퍼는 실력자구나 하고 넘겨짚을 수 있다. 신기한 건 그런 리액션을 보면 실제로 그 랩이 더 잘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음원이나 VOD를 뒤늦게 보기보다 본방을 꼭꼭 사수하려고 한다. 래퍼의 랩과 심사위원의 감동 어린 표정이 더해지면 카타르시스도 커진다.    


아주 가끔 그들의 평가와 내 생각이 안 맞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어떤 랩은 너무 형편없다. 내가 해도 저거보다 잘하겠다는 생각 든다. 그런데 그걸 본 다른 래퍼들은 목을 절레절레 흔들며 찢었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손을 기억자로 꺾어서 목을 탁탁 친다. 그들만이 공유하는 오묘한 세계가 있나 보다. 래퍼들만 아는 래퍼의 매력일까. 랩을 손으로 쓰고 입으로 뱉어 봐야 아는 그런 영역이 있을 것만 같다. 그 세계가 무척 궁금하다.


따지고 보면 배워야 하는 모은 일들이 그렇다. 해 봐야 보이는 세계가 있다. 경험담이다. 소설을 쓰면서 소설에 감동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떻게 이런 묘사를, 이런 세계관을, 반전을 생각해 냈을까 경의롭기까지 하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공현진님의 <녹>은 여섯 번 정도 읽었다. 이주 여성의 아픔과 시간 강사의 곤궁함이 어우러진 수작이었다. 문장도 좋고 주제 의식도 한국의 현 상황과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언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감동 뒤에 씁쓸한 자조가 뒤따랐다. 비교는 학생 때나 성인인 지금이나 정신 건강에 해로운데, 막을 길이 없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세계 들어가려고 글을 쓰는 것 같다. 소설가가 되면 소설을 보는 눈이 더 열린다. 감동을 더 쉽게 받는다. 소설가가 되든 말든 소설을 쓰면 쓸수록, 소설을 더 즐길 수 있다. 이래나 저래나 나에게 이득이다. 


래퍼 지망생만큼 소설가 지망생도 많은 것 같다. 웹 소설까지 포함하면 웬만큼 글을 쓴다는 사람들은 마음 한편에 등단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등단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소설을 쓰는 건 의미가 있다. 더 쉽게 감동받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며 한글 창을 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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