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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추나무집손녀 Jun 26. 2021

6월, 초여름의 시베리아

이런게 냉방병이라고 ?!

요 며칠 자주 피곤했다.


인생은 한번뿐, 지금 이 순간도 한 번뿐.

하루를 살더라도 깔끔하게 느낌 있게 살자며, 10년 동안 사용해온 낡은 무지 서랍과

흔들거리며 불안하게 하던 TV 받침대용 책상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을 자가격리가 풀리자마자 신나게 내다 버리며, 새로운 가구들을 밤늦게까지 서칭 하고, 남들이 예쁘게 자신의 취향에 맞춰 꾸며놓은 공간들을 탐닉(?)하며 몇 주를 보낸 탓일지도 몰랐다.

새로운 가구들이 속속 도착하고, 큰 종이 박스를 해체하고 가구를 조립하는 과정도 어찌나 힘들던지.

아이고아이고 소리를 연발하며 어쨌든 진짜 10년 만에 군더더기 없는 집을 완성했다.


그리고선 자꾸만 피곤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홍삼, 홍삼절편, 프로폴리스를 한 밤에 한꺼번에 털어 넣으며, 집 인테리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신경 쓰고 정리할 부분이 많아서겠거니라고 넘기며 잠이 들었다.


수요일. 수요일은 1시간 일찍 출근해서 1시간 일찍 퇴근하는 날.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인 무언가를 배워보겠다고 바지런을 떠는 날인데, 이상하게 출근해서 에어컨을 틀고 15분쯤 지났을 때부터 느낌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춥고 마치 내가 시베리아 한 복판에 벌거벗은 채 서있는 느낌이랄까.


유난히 이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봄은 봄대로 계속 썰렁해서 5월 초까지는 히터를 살짝 틀었고, 여름엔 여름대로 에어컨 바람이 유난히 차가운가 싶었으나 정도가 심한 느낌이었다.

나만 있는 사무실이 아니다 보니, 끄기도 뭐하고 옆에 앉은 대리님은 유독 더위를 잘 타는 분. 

이번 주는 유난히 긴 팔 셔츠를 입고 와도 추운 기운이 들었는데, 오늘은 반팔에 반바지라 유독 더한가 싶었다.

할 수 없이 내 담요, 대리님 담요를 다 끌어와 온 몸을 휘감았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한기.

담요를 싸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 초여름 햇살을 디렉트로 받았다. 

'아 따뜻해.... 근데도 춥다?!'



나는 왜 하필 잘 입지도 않는 반바지까지 입고 이 난리를 떨고 있는가...

한참을 추워하다 보니 졸렸다. 어제 내가 밤늦게까지 뭘 했던가... 잠을 잘 못 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했다.

졸리고 추운 몸뚱이를 이끌고 편의점에서 에너지 음료를 사서 다시 돌아왔는데도 추위는 가시질 않았고...


이미 확진자 발생으로 전체 자가격리를 겪은 우리 회사 동료들은 하나같이 '일단 집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확진자였던 우리 팀원의 첫 증세랑 매우 비슷했기 때문일까.. 그 친구도 첨엔 춥다며 시작된 증상이니.. 

하지만 그녀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집에서는 말짱했고, 조금의 피곤함은 있었어도 당일 아침에도 신나게 '라면'을 먹고 출근했으며, 온전히 살아있는 내 미각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동료들이 그렇게나 불안하다면!

그래, 내가 조퇴해주겠어!


조금 우려스러운 맘 반, 사실 너무 졸려서 이것저것 잴 생각이 없이 그냥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자고 싶다는 맘뿐이었다. 집으로 가는 중에도 왜 그렇게 춥던지. 나만 가을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지하철의 에어컨 바람은 나에게 한겨울의 강품, 그 자체였다.



집에 돌아와 이불을 덮고 선풍기도 없이 잠이 들었다. 거침없이 몰려드는 피로에 정신없이 자다 핸드폰에서 울리는 대표의 슬렉 메시지에 잠깐 눈을 떴다.


'몸이 안 좋으면 컨디션 좋아지실 때까지 재택을 하세요'


어머.. 이게 웬 횡재냐!


나는 진짜... 너무 피곤하고 추운 것뿐인데... 자가격리의 트라우마가 크긴 큰 모양이다.


동료들이 혹시나 내가 코로나라고 생각할까 그다음 날  병원까지 가서 검사했지만, 냉방병 외에는 뚜렷한 증세가 없다는 판정!

몸이 약해졌나 싶어 수액을 열심히 받고 집으로 돌아와 재택근무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나의 미각은 야무지게 살아있었고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우리 집에서의 나는 건강함 그 자체일 뿐.


냉방병이라는 것이 갑작스러운 온도의 변화로 체내에서 갑자기 온 에너지를 끌어다가 몸의 온도를 높이기 때문에 급속도로 피로가 오는 것이고 그래서 졸음이 온다고...

더 심한 경우는 어지럽거나 구토 증상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살짝 당일 어지러운 것을 제외하고는 큰 이상이 없으니 다행... 또 다행한 일이었다.


재택근무 3일 차, '제발- 건강 잘 챙기세요. 이러다가 전멸하겠어요'라는 대표의 메시지는 나를 잠시 움찔하게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확진 후 1달 내내 재택 하고 있는 우리 팀원과 내 옆의 대리님도 장염에 걸렸다고 하니..

진짜... 전멸을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는 한 주가 아녔겠는가 생각은 해본다.


하지만.. 전멸은 좀 심했어요 대표님. ㅎㅎ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나는 그저 과하지 않은 깔깔이 점퍼를 하나 준비해 작업복으로 입고 일할 수 밖엔...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세상엔 수만가지의 병..혹은 증세가 있고 나는 서른이 훌쩍 넘고나서야 온갖 증상들은 다 한 번씩 겪고 있는 듯 하다. 이런 경험들도.... 훗날 나에게 다 자양분이자 소재, 경험이 되어줄 수 있을까...


다 나은듯 해서 카페에서 1시간 에어콘 바람 아래 앉아있는 것도 괴로워 남아있는 커피를 원샷하고 도망치듯 나왔는데, 재택근무가 끝난 다음주의 나는...과연 괜찮을지... 나를 보호할 두툼한 외투를 챙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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