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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추나무집손녀 Jan 11. 2023

까만 얼굴의 소녀

 #1. 나를 짝꿍으로 선택했던 그 아이

우리는 12살이었다.

1년만 더 있으면 교복을 입고, 나름 어엿한 '언니'가 될 준비로 똘똘 뭉쳐있는.

그때 나는 6학년 7반.


담임 선생님은 체육 특기생들을 담당하시던 체육 담당 선생님이셔서, 말씀은 크게 없으셔도 카리스마가 있었고, 때문에 체육특기생들(인기가 많았던 남학생들)이 우리 반에 몰려있었다.

그와 동시에 일진 비슷한 느낌의 그의 친구들과 그들을 이미 이성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꾸미는 걸 좋아하고, 몰려다니는 걸 좋아하는 전형적인 여학생 무리도 뒤섞여 있었다.


그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뭐랄까. 남자와 여자를 의식하게 된

 꼬마들의 집합소.

거기다 누가 예쁘고, 멋지고, 옷을 잘 입는지 판단하고, 스스로도 돌아보게 하는

그런 분위기의 집합체라고나 할까...


나름의 질서로 평화롭던

그 6학년 7반의 작은 교실에서

유일하게 겉도는 한 사람.


그 아이가 있었다. H.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굳이 친해지고 싶지는 않고

친해져야 할 필요성도 느낄 수 없던...

짧은 커트머리에 원숭이상에 가까운 그 여자아이는 다른 여자애들처럼 옷이 말끔하지도 않았고, 가방도 낡고 오래된 듯 보였다.


때문에 소위 말하는 왕따는 아니였지만

아이들이 먼저 말을 걸지도,

딱히 말을 스스로 걸어오지도 않는

H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공간을 떠다니는 공기처럼 그렇게 6학년 7반 속에 고요히 자리했다.


나는 그 아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게는 단짝 친구가 있었고,

풍선껌을 좋아했던 나의 단짝친구는 내 앞에 앉

부분의 시간들을 그녀와 내 짝꿍(남자)들과 함께 잡담을 하며 서로를 놀리고 웃으며 지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짝을 정하는 날이었다.

여학생들이 앉아있으면, 남자아이들이 한 자리씩 가서 자리를 채우는 형식이었다.

하나둘씩, 선생님이 배정해주신 자리로 향하고

 나도 새로운 남자 짝꿍을 만났다.

새로운 짝은 꽤 신나 보였고, 나는 낯설었지만 나쁘지 않았던 매칭이었다.


그런데 H가 선생님이 계신 단상으로

벌떡 일어나 걸어나갔다.


웅성웅성 설렘과 낯섦에 아이들이 정신을 빼앗긴 틈을 타,  H는 담임선생님과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화를 얼마쯤 한 걸까.

선생님의 얼굴은 당황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고, 얼마쯤은 굳어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H의 새로운 짝은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에이씨'라는 말도 했었던 것 같고.

그래서였을까...


침묵을 지키던 선생님이 새로 내 짝이 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 친구를 H의 새로운 짝,

옆자리로 가게 했다.


'헐...........'

잠시 동안 내 짝이었던 남학생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보다가,

씩씩거리며 남자 짝을 향해 걸어갔다.

눈을 아래로 깔고, 웅성거리는 아이들을 무시한 채 H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때 내 감정이란?!

'... 왜 나야? 왜 하필 나야?!?!?!

 남들은 다 남자짝꿍인데 왜 내가 얘랑?!'



나는 그 아이가 미웠다.

 다른 친구들과 다른 형태의 짝을 가진 게 싫었고, 잠깐이었지만 정을 붙인

새로운 짝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던 것이겠지..

(그냥 남자 짝꿍을 가지고 싶었을 지도..ㅎ)


단짝 친구도 그 아이가 미운 듯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옆 자리를, 친하지도 않은 H가 빼앗았다는 질투랄까..


우리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고.

며칠을... 몇 주를 서먹하게 지냈다.

말을 걸 일이 설사 있다 해도, 단짝 친구와 다른 친구들이 나를 끌고 이곳저곳 놀러 가자고 하기 바빴다.


H와 짝이 된 후, 나는 여자 친구들에게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쟤는 왜 니 짝꿍이 된 거라니?"

"쟤가 선생님한테 너랑 앉고 싶다고 했다던데?!"

"너 쟤랑 친해? 원래 알았어?"

"어이없다. 뭔데?"

.... 등등의 다양한 이야기와 추측들이 난무했다.


그러면서도 너, 쟤랑 놀지 말라는 뉘앙스의 메시지들이 오고 갔다.

나는 친구들에 동의했다.

H는 호감 가는 외모와 차림새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많고 많은 여학생 중에서 날 자신의 짝꿍으로 선택했다면,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나는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쏟아냈었을 테지.

쿨한 우리 엄마는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니 짝꿍이 되고 싶어서 선생님한테 부탁까지 드린 거면, 네가 잘해줘야지~ 친하게 지내보렴"


하지만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그 비슷하게 말씀하셨으리라.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학교에서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내가 H의 집에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이유도 계기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하굣길에 집으로 가는 길이 같아,

함께 걸어가다가 우리 집이 먼저 나왔고.

나는 책가방을 던져두고 좀 더 멀리 있는 그 친구의 집으로 따라갔다는 것... 밖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용기이자 배짱이었을까.

우리 둘에겐 무슨 사건이 있었던 걸까.

처음 가보는 동네였다. 꽤 오래오래 걸어 내려갔었던 기억.

하천이 보이고 지금 생각하면 판자촌이었는데, 나에게는 생소하고 신기했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티브이에서만 보던 그런 동네.


H가 담담히 열쇠를 넣어 돌리던 묵직한 자물쇠, 그리고 열리던 허름한 문.

신발을 벗고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방 두 개.

추운 계절이었던가.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낡은 부엌에서

연탄을 갈던 H의 어른스러운 모습.

연탄이라는 것을 본 것도, 그것을 실제로 가는 것을 본 것도 처음이었던 순간.


작은 방에서 라면을 먹었고. 그 라면은 너무 맛있었는데....


나는 그 곳에서 그 집에 사는 어른이 돌아올 때까지 H와 함께 있었다.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꽤 그 공간이 좋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눈 때문에

 H를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다면,

H의 집에서의 나는 그녀와 꽤 즐거웠던 것 같다.


H는 엄마와 언니와 함께 산다고 했었는데,

집에 가장 먼저 돌아온 어른은 왠 아저씨였다.


학교로 다시 돌아와, 나는 다시 H와 대면대면해졌다.

질투하는 내 단짝을 위해서라는

변명도 할 수 있겠지만

시끄러운 반 여자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바빴던 나였고.

그때 나는 H를 친구들 사이에 끼워 넣을 정도의 뻔뻔함도, 리더십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마음 속 싶은 곳에서는 H에 대한

정이랄까...그런 것이 분명 생겨났다.

단짝 친구와의 대화나 놀이에 그녀를 끼우기도 랬고, 남학생과 싸우는 그녀의.편을 간간이 들어주기도 했으니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H의 존재감도 학기 초반보다는 많이 두드러졌지만,

H는 여전히 반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진 않았다.

렇게 나와 H의 사이 크게 친하지도 멀지도 않았던 것 같다.


가끔 내 색볼펜을 빌려가, 쓰고 돌려주지 않아서 단짝친구와 함께 씩씩대던 날들.

그 시절 유행했던 철제 토트백

(철가방은 아니지만 여하튼 추억의 가방)을

 가지고 온 나를 부럽게 보면서

한 번만 만져봐도 되냐고 청하던 H.


나는 H의 온전한 편이 되어주진 못했지만

그저 은근하게. 정이 들었지만 정이 들었다고 표현하기가 싫어서.

애써 못되게. 하지만 다른 애들처럼 굴었더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H에게 다른 친구들보다 더 큰 상처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


둘이 있을 땐 그렇게 즐거웠는데.

학교에선 대면대면한 나 때문에 더 외롭진 않았을까.



대구 집에 내려갔을 때 정말 우연히 그 친구가 살던 집 근처를 갈 기회가 있었다.

판자촌을 밀어버리고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선 그 자리엔 더 이상 그때의 풍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 친구가 생각났다.

담담하게 자신의 집 자물쇠를 열고 문을 열고, 나를 초대하던 그 아이의 당당함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학교에서는 쉽게 보여주지 않던 윗니를 환히 드러내고 웃던 그 아이의 미소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단단하고 대단했었던 아이.

그런데 그 아이는 왜 나를... 자신의 짝꿍으로 선택한 것이었을까.

아무런 접점도 이야기도 나눠본 적이 없던 내 무엇이 그 아이에겐 보였던 걸까.

나는 그저 유치하고 어리숙한 꼬마였을 뿐이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H와 나는 다른 학교로 배정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그래도 졸업하고서라도 소식을 들었는데

H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조용하게 잘 지냈으려나. 혹은 다른 일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왜 나는 그 아이가 갑자기 떠올랐을까.


그러고 보니...

H와 내가 짝이 된 이후로,

우리 반은 다시는 짝을 바꾸지 않았다.


나의 6학년 시절, 마지막 짝꿍은 그 아이 H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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