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예의가 바르고 열정적이었다.
늘 자신의 일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도우려 했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전회사 동료이기도 했던 그 친구는 이해할 수 없는 팀장과 팀원들 사이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굳건하게 인내하고 나름 유쾌하게 생활하는 짠하고도 챙겨주고 싶은 친구였다.
그래서 회사에서 그 친구가 동경했던 에디터라는 자리가 나왔을 때 나는 그 친구와 일하고 싶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줄 것 같기도, 여러모로 재능도 많은 친구였기에 팀장으로서는 탐나는 인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자 친구는 이런 나의 결정을 걱정하고 말렸다.
지인을 추천하는 일은 위험하며, 분명 나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안겨줄 것이라고.
그 회사에 추천한 나를 원망할 날이 무조건 올 것이고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그럴 리 없다고 고집을 부리던 나는 그 친구를 뽑아 함께 회사 생활을 하면서 종종, 아니 꽤 많이 남자 친구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입사 하기 전부터 이말 저말 말이 많았던 대표에게 그 친구는 너무 빨리 찍혀버리고 말았다. 입사 전 퇴사하게 된 회사와의 마무리가 너무 좋지 않았고, 그 행동이 대표의 귀에 까지 들어가 수습 3개월도 되지않아 잘릴 위기에 처했던 것.
정말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그 친구를 믿기로 했고, 중간에서 조용히 하지만 온갖 스트레스는 다 받으며 대표와 갖은 고투끝에 그 친구를 정직원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 이후 대표가 그 친구를 온전히 믿었을까? 아니..차라리 내보내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았겠다고 할만큼 대표가 나에게 주었던 스트레스는 계속 커져만 갔다.
그 친구에게 상처주지 않기위해 숨기고 숨기고.
그리고 6개월도 되지 않아 결과는?
남자 친구의 말처럼 그 친구는 퇴사 전 '더 이상 실장님을 미워하기 싫다'라고 퇴사 의지를 밝혔고,
그때 우리는 서로 언성을 높였다.
그는 모든 게 내 탓이고 자신은 나를 믿었는데, 내가 최선을 다해 그를 방어해주지 않음을 원망했다.
나 역시 회사 생활 처음으로 소리를 버럭 내지르며 화를 냈다.
아 다 소용없구나. 조용하게 막아주는건 소용이 없었어. 그가 상처받던 말던, 있는 그대로 상황을 전달하고 내가 지금 얼마나 너를 위해 애쓰고 있는지 있는 힘껏 말해주어야 했구나 하고 속으로 외치며...
충격을 받았다. 결국 나도 그 아이의 눈에는 어쭙잖은 꼰대였다.
하나하나 그에게 말할 수 없었을 뿐, 입사하기 전부터 말이 많았던 그 친구를 믿음 하나로 실드 친 나였는데...
이런저런 말썽도 말도 많았던 그 친구를 내 온몸으로 지켜온 건 나였는데...
함께 팀장과 팀원으로 일하기 전엔 좋은 어른, 좋은 누나로... 함께 다독이며 응원해주던 사이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변질될 수 있었나.
내가 변해버린 것인지,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것인지 아니면 그 친구도 역시 변한 것인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100% 그 친구를 보호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내 한 몸 주체하기도 힘든 곳에서 내가 지켜주면 얼마만큼 지켜줄 수 있었을까.
나는 결국 나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었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회사는 일단 대표가 말하기를 좋아해 쉽게 이야기가 퍼져나가기에도 좋고,
없는 이야기가 지어져 나오기에도 좋았던 곳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리 평범해 보이지만은 않던 그 친구가 대표의 주목을 끌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고, 자신감과 열정에 스스로를 어필하기를 좋아하던 그 아이의 성향이 대표의 눈엔 '이용가치가 충분한 사람'으로 낙점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1년 반을 대표와 함께 일했던 나도 그렇고 그런 회사 분위기에 알게 모르게 젖어들어,
그냥 대표의 의견이 그러하니 나는 어쩔 수 없다고 고개 돌려버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환경이 참 중요하다고들 하는가 보다. 근묵자흑이라 했던가)
어찌 되었든 대표의 편견으로 시작된 8개월의 시간은 그 친구도 괴로웠지만 나 역시도 참 많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 친구가 날 믿었던 것만큼, 나도 그 친구를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이겨냈어야 했는지..
팀장의 위치가 원래 그런 것이고 내가 준만큼 아랫사람들은 10분의 1도 몰라주는 외로운 자리라는 건
이미 알고 느끼고 있었지만, 그가 퇴사를 알리며 던진 폭격은 꽤나 나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회의감이 들었던 것은 기본, 내가 아무리 아껴주고 지켜준다해도 어짜피 난 아랫사람 혹은 팀원이라 불리는 그들에게 리틀 꼰대나 다름없을테니, 그들을 챙겨줄 의지와 힘을 잃어버린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의 퇴사일이 결정하고 그 아이가 맡은 업무들이 갑자기 나에게 떨어지면서
(어이없게도 대표와 이사가 그 아이와는 말하기 싫다는 유치하고 단순한 이유로 중요하게 세팅해야 하는 그의 업무가 나에게 디렉트로 내려왔다), 그 아이의 입장에서 느끼는 업무적 고통까지 동시에 체험하면서 내 다른 이면이 무너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아이의 입장에서 대표와 이사, 회사를 다시금 보는 기회를 만났다.
대표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흔들거려야 하는 일상, 비정상적이고도 일방적인 업무 방식과 컨펌, 중심 없는 의견 반영과 플레이들이 반복되고 새로 들어온 이사의 말장난들로 그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아이도 참 고되고 힘들었겠구나, 내가 데려왔으니 나를 원망할 수 밖엔 없겠군.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 ,
그리고 이 곳에서는 더 이상의 커리어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 까지...
나를 몰라준 원망과 그 아이에 대한 이해가 공존했다.
하지만 이미 다 지나온 시간,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대표와 조직의 특성을 어떻게 뿌리부터 바꿀 수 있었을까.
우리가 단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의 상처로 '나'를 망가뜨리기 전에 서둘러 짐을 챙겨 떠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처음부터 기계적으로 일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처음부터 말하는 것.. 그것 외에는 그 조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어차피 없었을 것이다.
아마 그 아이와 내가 그 전처럼 연락하고 소통하는 일은 없겠지.
서로를 일부분은 이해하지만, 서로가 준 내상은 잊을 수 없는 것일 테니까.
아쉽지만 밉고, 밉지만 아쉽다.
그래도 그 친구도 자신을 아껴줄 조직을 만나, 열심히 그리고 당차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되길.
언젠가 마주치게 되면 서로를 보고 웃을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만,
고생했다. 너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