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by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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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기가 없는 세찬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내 몸처럼 말라 줏대가 없는 나뭇잎들이 화들짝 뒤집어지며 연한 뒷모습을 보여준다. 바람결에 저항하며 몸을 지탱하는, 아니 역풍을 즐기는 모습이 개울가 물살을 거스르는 물고기들 같다.


연녹색에서 ‘연’을 탈피해 진해진 은행잎이 초등학생 고학년만큼 자라 작지만 기운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인 단풍나무가 진분홍 양 날개 모양의 씨앗을 잔뜩 매달고 날개 돋음 짓을 해댄다. 드디어 등나무 꽃이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해 반가웠는데, 덩치 큰 꿀벌도 그러한지 이 꽃 저 꽃을 찾아가 애무해주고 있다. 반면 원색을 자랑하던 철쭉은 퇴색하다 못해 말라비틀어지고 있다.


이 시절의 햇살은 너무 부족해 갈구하고 그리워하는 햇살이 아니고, 그 뜨거움에 질시의 대상이 되는 햇살도 아니다. 우리 눈의 수정체를 간질이듯 건드리는 상냥한 햇살이다. 이 햇살이 비치고 이 햇살만큼 세기의 바람이 불 때,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잎들은 햇살을 신비롭게 만들어주는 반사체들이 돼준다. 내 얼굴은 햇살을 반기고 내 눈은 이 반사체들의 햇살에 감탄한다. 조금 세게 표현하면 빈혈기에 시달려 세상이 하얗게 돼버릴 때의 빛 색깔이다. 다행히 요즘 고기를 많이 먹어두어서 나뭇잎들에 반사돼 나오는 하얀 햇살은 미소를 머금게 하는 아름다운 햇살로 보인다. 아득하게 보일 수 있는 그 햇살은 부지런한 바람 덕분에 흩뿌려져 나로 하여금 시름에 빠질 틈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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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수원의 만석공원 호숫가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꽃잎 빠진 벚꽃 꽃자루 하나가 책 위로 떨어졌다. 주위를 보니 우수수 그렇게들 떨어지고 있었다. 이때를 맞춰 버찌들이 게눈처럼 여기저기 튀어나오고 있고. 또 네 잎 클로버를 여럿 발견하고 ‘행운’을 짊어지고 가는 아낙네들을 보았는데 밑을 살펴보니 사방에 클로버가 수두룩했다. 반팔 티셔츠는 아직 부담스럽고 긴팔 옷은 약간 덥게 느껴지는 지금, 계절의 전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