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아닌 것이 별처럼 빛난다. 금성이다. 흐린 날씨 탓에 여러 날 새벽녘 구름 너머 자취를 숨기며 내 창을 스쳐가곤 했을 금성을 어제 일요일 다시 만났다. 곧 떠오를 태양빛을 반사해 불그스름해진 구름 실루엣이 동쪽 하늘을 장식하고, 그보다 높은 동북쪽엔 한 뼘 될 만한 구름이 금성을 움켜쥐다 내놓았다. 금성은 새벽의 여신 아우로라가 자기 역할에 방점을 찍는 시간 표지다.
지난 한 주 동안 자의 반 타의 반 칩거에 들어갔다. 하루 종일 집에만 머물렀고 외출이라 해봤자 슈퍼, 시장, 은행에 들렀을 뿐이다. 그 기간 동안 내 마음은 동분서주 오락가락하곤 했는데 반면 다짐을 반복하다 굳히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생활방식을 바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8일 전 일요일 나는 퇴근 후 새벽부터 브런치스토리 글 ‘역주행’을 쓰기 시작했다. 이날따라 노트북 옆에 자리 잡은 레드와인이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정오께 완성하고 올린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뭔가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출근 시간을 지나 근무 시작 무렵에 잠이 깬 것이다. 무단결근이다. 부랴부랴 물류센터에 전화해 사정을 이야기했다. 자발적 신고를 했고 오늘은 푹 쉬라 센터 직원이 말해준 덕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요 며칠 근무하느라 힘들었는데 잘 됐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이 일은 작지 않은 화근이 되었다.
월요일부터 매일매일 일요일 몫까지 근무 신청을 했다. 하루 벌어 사는 일용직은 이렇게 원하는 근무날짜에 근무신청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일주일 내내 내게 전해온 소식은 ‘모집 마감’이라는 문자뿐이었다. 마치 경범죄로 약식 재판에 넘어가 무기한 구류 처분을 받은 기분이다. 센터 쪽에서는 무단결근을 한 사원의 경우 출근신청자 우선순위에서 배제하도록 돼 있다. 누군가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렇게 나를 유폐했을 것이다. 무서웠다.
전화위복
‘역주행’은 새벽 그믐달을 보고 나서 쓰기 시작했다. 달이 점점 가늘어지다가 아예 보이지 않는 ‘삭(朔)’의 달을 며칠 앞둔 상태였다. 글을 쓴 후 칩거 기간은 일터에서의 내 존재가 가시적 존재감을 상실해, 마치 어둠 속에 갇혀 야위어 가는 그믐달 신세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주의 내 생활은 대체로 평온했다고 해야겠다. 조금씩 읽고 있던 책들이 여러 권 있었는데 독서할 시간이 많아졌고 읽어야 할 책도 새로 생겼다. 글 쓸 여유도 주어졌고 밤엔 영화 한 편씩 보고 잘 수 있었다. 그렇게 나에겐 먼 일처럼 여겨졌던 ‘연이은 낮의 삶’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낮에 일하는 직업을 찾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늦게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는 일을 버리고, 아침에 출근해 오후 늦게 퇴근하는 일을. 물류센터 일은 쉬는 날에도 누적된 피로가 쉽사리 풀리지 않고 내 시간도 잘 갖지 못할뿐더러, 경험치가 누적이 안 되는 단순노동이라 일할 때마다 허전함을 느끼곤 하던 차였다. 2년 반이면 오래도 다닌 셈이다.
그래서 직업 관련 사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한 곳을 찜해 두었다. 이곳이 안 되면 또 다른 곳을 찾을 것이다. 유폐 기간이 나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어제 마지막 ‘모집 마감’ 문자를 기다렸다. 왔다.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달의 행보
이것도 기념이라고 뭔가가 정리된 홀가분한 기분에 와인을 사러 밖으로 나왔다. 낮에 내리던 눈과 비는 그쳐 있었고 저녁 하늘이 맑은 구석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슈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이 일주일 내내 한 번도 하지 않은 산책으로 이어졌다. 외출 전 “내가 아는 작가들은 대개 걷거나 돌아다니면서 쓴다”라는 편성준 작가의 경험담 문구(국민일보)를 읽은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경춘선 철길 산책로에 예전에 없던, 예전에 브런치 글에서 내가 명명한 ‘무릎등’이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 그 옆으로 산책 걸음을 하니 기분이 한결 더 좋아졌다.
그런데 느닷없이 발견했다. 지는 해의 끝자락 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초승달을. 구름이라는 베일 속에서 화장한 얼굴을 내보이다 감추다 하는 초승달을. ‘그믐달의 슬픔’을 경험한 내게 달이 자신의 돋아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역주행’ 글을 복사해 내가 속한 네이버 밴드에 올렸더랬다. 그런데 친한 지인이 댓글을 달면서 새벽에 뜨는 그믐달을 뭐라 불렀으면 좋겠는지 물었다. 나는 곧바로 발동이 걸려 사전을 뒤적거렸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그믐달’을 검색하니 의외로 다양한 유사어와 방언이 있었다. ‘눈썹달’을 비롯해 ‘갈고리달’, ‘쪽박달’, ‘손톱달’ 등등. 이 단어들은 초승달에도 적용된다.
그믐달은 자정 너머 새벽에 떠서 해가 뜨면 그 빛 때문에 사라지고, 초승달은 낮에 떠서 ‘초승 낮달’이 되었다가 초저녁에 진다. 결국 우리는 그믐달을 ‘새벽 손톱달’로, 초승달을 ‘초저녁 손톱달’로 부르자고 합의를 보았다.
지기 직전 봉숭아물 들인 ‘초저녁 손톱달’을 보고 뭔가 희망 섞인 조짐을 느꼈다. 초승달은 반달을 거쳐 보름달을 향하는, 마음을 부풀게 만드는 달이지 않은가.
목도리
이런 날 닫힌 집에서의 와인은 포기하고 어느 주점에 들르기로 작심했다. 길을 가다가 음식 맛이 궁금했고 분위기가 좋게 보였던 주점들은 일요일이라 다 문을 닫았다. 그러다 손님들로 가득한 어느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정식 하이볼은 처음 마셔본다. 레몬 조각과 얼음 조각이 가득한 유리컵 속 술이 내 목젖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명란구이, 염통 꼬치 등 자잘한 안주들을 맛보았다. 이곳에 있는 동안, 메뉴를 적어 전달하는 메모지는 연신 나의 수첩이 돼주었다.
사케도 시켰다. 하이볼로 차가워진 내 몸을 덥힐 수 있게 따뜻한 사케를. 서빙 직원이 가져다준 예쁘장한 사케 병 목 부분에 냅킨이 매어 있었다. 갈색 목도리 두른 병. ‘나는 따뜻한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냅킨 목도리.
며칠 전 본 영화 <윤희에게>가 오버랩됐다. 영화 속 밤하늘도 그믐달에서 시작해 초승달, 그리고 만월로 이어졌다. 윤희(김희애 분)는 우울한 삶을 이어가고 있고, 고등학교 때 동성 친구였던 쥰이 일본에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윤희에게 편지를 쓸 무렵 그믐달이 등장한다.
그러다 초승달이 떴을 때 윤희는 뜻밖에 쥰의 편지를 받고 큰 결심을 한다. 의무적으로 해왔던 구내식당 일을 그만두고, 딸과 함께 20년 전 헤어진 쥰을 찾아 일본으로 간 것이다. 삶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 고등학교 때 동성 친구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주변의 괄시를 받고 자신을 벌주며 살던 윤희는 자신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는 깨달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자기 삶을 새로 개척해 나갈 결심을 한다.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연신 한탄하게 만드는 홋카이도 오타루에서 윤희도 내내 푸른색 목도리와 스카프를 두르고 다닌다. 그리고 만월 날 쥰을 만난다.
나도 내 목에 목도리를 두를 참이다. 추위를 많이 타 겹겹이 옷을 껴입고 살지만 그 위에 목도리도 두를 참이다. 나를 더 따뜻하게 해줘야겠기에. 한 주가 그렇게 지났다. 구름이 사라진 15일 월요일 오늘, ‘초저녁 초승달’은 한 겹 더 두터워져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