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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클린 시너 Dec 01. 2021

가장 긴장감 넘치는 질문은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지금부터 열까지 세겠습니다. 만약 내가 틀렸으면 열을 세기 전 전화를 먼저 끊으세요. 하지만 취재가 맞다면 열까지 기다리세요. 아시겠죠?”

-칼 번스타인,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  


미국 워싱턴 DC에는 뉴지엄이란 박물관이 있었다. 뉴스 보도와 신문 취재에 대한 다양한 볼거리를 전시해놓은 곳이다.(’있었다‘는 과거형을 쓴건 2019년 마지막날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기때문)

그곳엔 미국 정치사의 가장 유명한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 실물 자료들이 전시돼있다. 이를테면 워터게이트 빌딩의 도어 같은거. 닉슨 대통령측이 사주한 도둑들이 도청기를 심으려고 몰래 따고 들어갔던 실제 그 문짝이다. 모든 일의 시작이 된 말그대로 게이트의 게이트인 셈.

닉슨 대통령 사임을 다룬 워싱턴포스트 1면과 그 기사를 찍어낸 인쇄판 실물도 전시돼있다. 영원한 주인공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신문사 간부들과 회의하는 모습도.

미국 워싱턴 D.C 뉴지엄에 있던 워터게이트 빌딩 도어, 닉슨 사임 당시 신문과 인쇄판(아래)

기자라면 한번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을 꿈꾸지 않을까. 작가는 마스터피스 한권을 남기는게 꿈이라면, 기자 역시 일생일대의 특종 하나를 꿈꾼다. 나역시 그랬다. 최소한 대통령을 사임에 이르게 할 정도의 특종 말이다. 더도말고 딱 하나면 된다(실제 우리나라에서도 JTBC 특종보도로 박근혜 탄핵사태가 일어나긴 했다)

하지만 모든 기자는 안다. 특종은 앉아서 기다린다고 떨어지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수없이 문을 두드리고 발품을 팔아야 가까스로 닿는 노력의 결과란걸 말이다. 나역시 그렇다. 그런점에서 나는 우드워드보다 번스타인쪽에 끌린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제일 처음 그린 영화다.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번스타인은 수많은 관계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중요한 증언을 이끌어낸다. 영화만 보면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한 우드워드는 거의 취재하는 모습이 안나온다. ‘딥스로트(Deep Throat)’는 우드워드의 공이라면, ‘딥 커버리지(Deep coverage)’는 번스타인의 몫이랄까. 취재의 총량을 나눌수 있다면 번스타인쪽이 더 무거워 보인다.

영화는 둘이 쓴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했고, 두사람이 영화 시나리오도 감수했다니 캐릭터 설정이 아주 틀리진 않았을 것이다(두사람은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책을 여러권 썼는데, 흥미로운건 대부분 밥 우드워드 이름이 먼저 나오지만, 영화의 기초가 된 동명의 원작엔 번스타인이 먼저 나온다는 사실)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번스타인이 전화로 취재 내용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신문사 수뇌부가 딥 스로트 말고도 다른 경로를 통해 크로스체크가 되지않으면 기사를 내기 힘들다고 하자, 번스타인이 검찰 관계자에게 확인하는 장면이다. 계속 말하기 어렵다는 취재원에게 번스타인은 이렇게 제안한다.

“열까지 세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틀렸으면 열을 세기 전 전화를 먼저 끊으세요. 하지만 우리 취재가 맞다면 열까지 기다리세요. 아시겠죠”


그리고 숫자를 센다.

“1, 2, 3, 4, 5, 6, 7, 8, 9, 10”


로켓 발사 카운팅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정도의 속도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번스타인은 전혀 뜸 들이지 않고 빠르게 숫자를 센다. 상대가 제발 전화를 끊지않길 바라는 마음이 속도로 나타난 셈이다. 시간이 줄어들수록 긴장감은 길어진다. 나역시 허리를 세운다. 제발 끊지말길..

그리고 전화는 끊어지지 않는다. 이 몇초간이 영화에서 긴장감이 가장 극대화되는 대목이다. 워터게이트 보도도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건 아닌 모양이다. 기자출신 혼조 마사토의 소설 ‘미드나잇 저널’에서도 이 장면이 등장한다. 베테랑 사회부 기자인 주인공은 이 영화를 보고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후배에게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은 번스타인의 카운팅이라고 말한다.

소설 작가만 그렇게 생각한건 아닌 모양이다. 내가 아는 한 기자는 청와대 출입시절 실제 이 방식을 써먹었다고 한다.


취재원은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때때로 입을 닫거나 입장을 바꾼다. 기자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단독기사(언론계 용어다. 내가 먼저 보도했다는 의미인데, 요즘은 나 혼자만 보도했다는 의미로 변질된 경우도 많다)를 써놓고도 마지막 크로스체크 과정에서 막히는 경우도 있다. 실컷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작 기사로 나가면 부인하겠다는 취재원도 많았다. 출처의 신빙성을 위해선 촬영이나 목소리 녹음이 필요한데, 한사코 그것만은 안된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 마지막 확인만은 피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냥 기사를 내도 문제 없을거 같은데,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될 수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지만 그 불안감마저 떨쳐낸 진실에 대한 집요함, 그래서 번스타인의 전화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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