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자다. 직업을 밝히기가 꺼려지는 시대가 됐지만, 이야기를 하려면 안 밝힐 수가 없다. 약간의 게으름을 극복하고 글을 종종 올리게 된다면, 언젠가 정체도 드러날 수 있겠다.
어쨌든, 종종 질문이란 무엇인가.. 에 관한 생각들을 써볼 생각이다. 묻는 게 직업이다보니 질문에 얽힌 질문이 늘 따라다닌듯하다. 제대로 묻지 않는다고, 반대로 묻지 말라고, 그것도 모르냐고, 반대로 알면서 왜 묻냐고, 언제는 물을듯 마는듯 하냐고 이래저래 타박받는 게 흔한 일이다. 이 업의 디폴트값이라 생각하면 약간은 편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질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국회 취재를 할때다. 당시 야당(민주당) 대표는 원외였다. 현역 국회의원이 아니란 뜻이다. 2007년 대선 참패 이후 재건을 위해 몸부림치던 민주당 입장에선, 그 야당 대표는 나름의 블루칩이었다.
그해 3월 어느날, 그 대표가 4월 보궐선거에서 당시 여당 텃밭에 전격 출마할 거란 첩보가 들렸다.
아차 싶었다. 충분히 해볼만한 승부수인데, 미처 예상을 못한거다. 내가 속한 언론사도 급박해졌다. 방송뉴스에 단독기사는 아니어도 속보한줄(흔히 빨간색으로 화면 하단에 큼지막한 글씨로 투박하게 쓰는) 싣기 위해서다.
당시 2진이던 나는 말진 후배기자와 무작정 회의실 앞으로갔다. 카메라를 복도에 배치하고 대기했다.
여기서 잠깐, 당시만 해도 지금과 취재환경이 좀 달랐다. 뉴스 화면에 자주나오는 장면, 이를테면 복도에서 기자들이 정치인 우르르 따라다니며 질문하고 촬영하는 모습은 흔치않던 시절이다.(이건 2011년 종편 출범이후 일반화된거다. 나중에 따로 얘기해볼 부분이 있겠다)
그런데 회의가 끝난지 한참 됐지만 좀처럼 그는 나오질 않았다. 복도는 조용했지만, 회의실 안은 웅성거렸다. A대변인(현재 정계은퇴) 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지금 밖에 OOO 언론사 카메라가 와 있습니다. 지금 안나가는게 좋겠습니다”
잠시 이런저런 말들 오가는듯 싶더니 결국은 문이 열렸다.
“대표님, 이번 보궐 선거 출마하시는 건가요?”
“…”
“출마하시는 거 맞나요?”
“…”
“혹시 출마설이 잘못된 건가요?”
“…”
내가 옆에 나란히 걸어가며 물었다. 야당 대표는 아무 말도 안했다. 특유의 사람좋은 미소만 지으며 자신을 촬영하는 카메라 불빛만 바라봤다.
국회 건물 밖으로 나갈때까지 50여 미터 쯤 걸어가며 나는 계속 묻고, 그는 줄곧 웃었다. 우리 뒤엔 참모진과 당관계자들이 불안한듯 따랐다.
“그만 카메라 끄고 철수하자.”
결국 내가 먼저 손들었다. 후배와 돌아서는 순간 대표가 갑자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OOO 기자 이리로 와봐!“
화가 난 목소리였다. 이미 사람좋은 미소는 깨끗이 사라진 뒤였다.
“아니 취재를 왜 이런식으로 하나. 내가 거기 방송사 얼마나 좋아하는데 말이야”
야당 대표가 기자더러 취재했다고 혼을 내는 상황. 지금이야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흔치않은 일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곧 항변했다. 좋아하는 방송사인데 왜 아무 말도 안해주냔 말이다.
“대표님, 개인적인 문제도 아닌 가장 현안인 선거 출마 여부를 물은건데요. 그것도 국회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묻는 게 잘못된 일입니까”
“어쨌든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떡해?”
“저는 기자로 질문한것 뿐인데 왜 화를 내십니까?”
“이런 식으로 대답 안 한다고 했잖아!”
“이런 식으로 대답 안 한다는 말씀조차 들어본 적 없는데요.”
사진속 인물은 글의 내용과 상관없는 사람임
결국 우리 신경전은 뒤에 있던 참모진 만류로 일단락됐다.(당시 나를 말렸던 당직자들은 지금은 현역 의원이 됐고 청와대 높은 자리도 가있다) 그들은 미안하지만 참으라고 했다.
질문을 참으라는 건지, 출마여부 결단을 앞두고 민감한 대표의 신경질을 참으라는 건지 약간 헷갈렸다.
결국 출마 사실은 불과 하루이틀도 안돼 기정사실로 밝혀졌다. 다른 언론사의 보도로 말이다.
대답하지 않을 권리! 가끔 정치인들은 그게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질문받는 게 당연한 직업이지만, 그걸 부정하는듯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질문을 취사선택하기도 한다. 하고싶은 대답만 하려는 거다. 그나마 대답은 하니 다행일 수 있겠다. 그 야당 대표처럼 아예 아무말도 안 해버리는 경우보다는.
언론의 질문은 특권이 아니고 공적 인물의 대답은 시혜가 아니다. 이론적으론 말이다.
하지만, 질문이 특권이 되고 대답이 시혜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됐다. 현실에선 말이다.